'회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1.10 신앙생활에서 미끄러짐
  2. 2009.06.10 굿 바이, 채점회피 증후군!
  3. 2009.06.10 브라이언과의 씨름 (2)
2009.11.10 14:38

신앙생활에서 미끄러짐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죄가 관영하는 이 세상에서 미끄러짐 없는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실천하며, 거룩한 신앙인으로 책망할것 없는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숨쉬기를 할때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들이마시고 내어 밷을 수 있듯, 주의 말씀을 그렇게 자연스레 순종해 가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야무진 공상일까?

 위의 질문 뒤에는 나의 미끄러짐으로 인한 아픔이 숨어 있다. 내게 있어 미끄러 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삶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다. 그것은 크게 벗어났던 작게 벗어 났던지간에 내게 있어서는 미끄러짐이다. 특히 같은 상황에서 똑 같이 미끄러 넘어졌을땐 더욱 더 처절하게 느껴져서 나의 한심한 신앙생활로 인해 눈물을 그렁이며 아파하기도 한다. 더우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보는 데서 미끄러졌을 경우 나는 더욱 좌절한다. “그렇게 살아 가면서 어떻게 캠퍼스 사역한다고 하고, 교회에서 설교 하고, 학생들 상담하지?” 라고 묻는것 같다. 아 내게 이같은 미끄러짐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미끄러짐에는 나의 부주의가 많다. 미끄러운곳을 걸어갈때는 긴장도 해야 하는데 그냥 방심하고 진행할때 미끄러진다. 내 발걸을음 잘 점검하지 못하고, 주변의 환경을 기도를 통해, 또 말씀을 통해 분별해 가면서 지혜롭게 가면 미끄러짐을 극소화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영적 부주의는 미끄러짐을 경험하게 한다. 늘 익숙해진 대학 캠퍼스가 내 생활의 주요 무대인 나에게는 영적인 긴장감을 갖기 보다는 늘 가던곳이고 하던 것이니 방심하게 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늘 만나고 얼굴을 대하는 편안한 가족이기에 말에서나 행동에서 실수할때가 있다. 아내에게 무례한다던가, 아이들의 말을 온전히 귀담아 들으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방심하고 있을때가 있다. 

일상생활의 부주의가 미끄러짐의 일차적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장애물은 나의 교만이다. 나의 교만은 하나님을 의지함 보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할때 흔히 나타난다. 나의 경우 교만은 나 혼자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나타난다. 나의 선택과 나의 길이 더 안전해 보이고 더 지혜로와 보이는 것이다. 그같은 교만은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향해 가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이같은 생각이 내게 들어온 순간 나는 이미 미끄러진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교만은 하나님 보다 나를 더 중요시 하게 된다. 일단 그같은 상황에 놓이면 세상것이 주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되고 하나님 나라보다는, 내가 나를 위해 만들고 싶은 그런 세계 및 상황을 바라게 된다. 이쯤되면 또한 내 왕국을 만들어 보려는 동기로 먹고 마시며, 뛰고, 쉬고, 일하게 된다. 나는 이같은 상황을 미끄러져 내동냉이쳐 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빼먹지 말아야할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미끄러짐은 나의 회개의 문제와 아주 깊숙히 맞물려 있다. 입으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기도하기만 하면 그냥 자동적으로 용서 받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는다. 신앙생활 초기 특히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적이 있었다. 이같은 회개는 변화를 동반하지 않기에 똑같은 자리에서 다시 미끄러지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게 된다. 그러나 때론 입술의 고백을 떠나 마음의 고백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아픈 마음으로 주께 용서를 부르짖는다. 입술의 고백보다 좀더 발전된 방법 같아 보이지만 이같은 방법은 도덕적 회개에만 머물 수 있어 또 다시 미끄러지게 한다. 참다운 회개는 가던길에서 거꾸로 되 돌아서야 된다는 결단과, 실제 삶의 현장에서 돌아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던길을 돌어서긴 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며 그 눈을 뒤로 돌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응시한채 걸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고 또 미끄러짐의 가능성을 기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이다.

유학생들과 삶을 나누며 대화하다보면 미끄러짐에 대한 이야기를 참으로 자주 듣는다. 코스타나 교회의 수련회등 여러 집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이제부터는 바른 신앙생활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헌신하려 하였지만 삶에 현장에 되돌아 왔을때 바로 미끄러져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좌절해하며 힘을 잃는다. 신앙생활에서 미끄러진채 거기서 그냥 멈출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복음의 힘은 넘어 지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지고 부딛히고 깨지며 살아갈때 우리를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삶이다.나의 아이들과 아내는 내가 미끄러지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 분명히 아는 것 하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아빠를 세워주실 것이다 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넘어 지는 나를 믿기 보다 나를 늘 세워 주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나의 세 아이들은 나의 거룩한 삶 혹은 거룩을 향한 삶을 보고도 살지만, 나같이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사용하시고 세워 가시고 만져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보며 변화해 간다.

과연 영적 미끄러짐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많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과 죄성으로 미끄러지고 깨어지는 많은 체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과 싸우는 대처방법이 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새벽이슬과 같은 믿음의 청년들에게 최소한 다음의 두가지는 반드시 나누고 싶다.

첫채로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유학생활의 목표가 학위취득에 있는것이 아니라 거룩함 추구를 그 우선순위로 놓아야 한다. 이제 구원을 받았기에 천국은 보장되어 있다는 생각에 신앙의 선한 경주를 멈추고 땅에 주저 않아 쉬고 있어서는 안된다. 공부하며 순간 순간 십자가를 바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주님을 나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면전에서의 삶, 즉 코람데오의 삶을 살도록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과 늘 동행한 에녹처럼, 오늘날 유학생들은 성경에 한줄밖에 나오지 않은 평범한 신앙선배인 에녹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거룩한 삶을 소망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학업의 우수성보다 더 귀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목표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나의 죄성을 심각히 자각하는 것이다. 구원은 받았지만 내 안에 남아있는 옛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자 하는 죄성이 있음을 의식해야한다.  이것을 온전히 자각하게 되지 않으면 죄의 속임에 쉽게 미끄러져 버린다. 그러나 그같은 죄성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그냥 미끄러져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삶임을 순간순간, 삶의 모든 상황속에서 인정하는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발전 시킨다. 따라서 캠퍼스에서든, 캠퍼스 밖에서이든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깊숙히 생각해야 한다. 십자가를 젖은 눈으로 바라볼때 우리는 나의 죄악들과 세상에 관영하고 있는 죄악들에 대해 치를 떨며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만 멈추지 말고,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못박으시면서 까지 우리와 화목을 원하셨던, 그리고 그 화목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오르셨던 그리스도를 바라 보며 큰 사랑에 감격해야 한다. 미끄러져 넘어져 있을때 우리가 일어설 수 있는 것도 그 사랑때문이다. 그러나 죄에 대해 소름끼치는 미움이 없이 일어 선다면 또 미끄러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이 두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밖에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고 매일 매일 말씀묵상을 통해, 예배를 통해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미끄러짐 없는 똑 바른 걸음을 걷기 위해 우리는 순간 순간,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이글을 마치며 우리들처럼 미끄러짐의 아픔을 경험한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상기시키고 싶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 1-2)

사진출처: http://farm4.static.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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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4:25

굿 바이, 채점회피 증후군!

교수를 하면서 제일 신나는 일은 긴 여름 방학을 맞이하는 것이다. 학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더 신나는것은 강의이다. 매번 강의를 기쁨과 긴장으로 준비한다. 박사과정부터 미국학생들 가르쳤으니 약 23년정도 강의한 셈인데, 아직도 긴장감이 돈다. 나쁜 긴장감이 아니라 설레이는 마음과 새로운 대화를 기대하는 그런 종류의 긴장이다. 강의는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다.

그러나 교수를 하면서 제일 싫은 일이 있다면 채점하는 일이다. 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표현한적 있지만 나는 채점을 유별나게 싫어 한다. 인디애나에 있던 동료 교수는 "조그만 방에 채점거리를 많이 가져다 놓고 채점하게 하는 곳"을 지옥으로 표현하기도 해서 웃은적이 있다. 

나는 분명 채점회피 증후군 (내가 자가진단으로 만들어 낸 병명)의 환자 였던것 같다. 채점거리가 많은 사무실에는 들어 오기가 싫어서 사무실 주변을 빙빙 돈다. 한참만에 용기내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채점중에는 입맛도 없고, 잠도 편치 못하다. 그때 마시는 커피는 좀 쓰게 느껴지고, 그때 듣는 음악은 소음일때가 많다. 신경도 예민해 지고, 스트레스로 힘들어 한다. 이 블로그를 읽고 있는 지체중 이같은 증세를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채점회피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전 그 증후군을 치료를 받았다. 고질병인줄 알고 괴로워 했는데 그것은 완치가 가능한 병이라 이제는 여겨 진다.

치료법은 은혜이다. 그 증후군으로 괴로워 하던 지난 학기말중 나는 기도하다가 나는 나의 그같은 고질병에대해 회개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왜 너는 그런 나쁜 태도로 임하느냐라는 내적 음성이었다. 혹 채점하는 시간이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할 수 없냐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무엇에 얻어 맞은양 멍하게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같이 부정적인 태도를 아무런 질문과 사고 및 기도가 없이 그냥 "지루하고 괴로운 일"로, 즉 당연히 격는 증후군으로 받아들인 것이고,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인 결과가 나를 그렇게 괴롭게 했던 것이다.

한참을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 사역을 그 같이 부정적이고 억지로 하는 마음으로 드린것이 마음이 아팠다. 교수라는 직분과 사역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것임으로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섬기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올려 드려야 한다. 한참의 회개를 통해 이제 마음을 정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채점도 예배이다. 강의 들어가기전과 후에만 기도하는것이 아니라, 채점 전, 후, 중간에도 기도를 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예배의 자세로 주변을 깨끝하게 하고, 나의 복장도 강의때처럼/예배때 처럼 단정히 하여 임하자고...

결과는? 교수로 섬긴 이후 처음으로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채점을 해보았다. 아이들의 답을 하나 하나 읽으며 웃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며, 또 안타까워 하고... 입에서 찬양도 나왔고, 커피맛도 되돌아 왔고, 잠도 편히 잤다. 사무실이 무섭지도 않았다. 나는 이렇게 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믿는 이들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 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겠다는 것은 내가 진 십자가의 무게로 스스로 질식하여 지쳐서 사는 삶일지 모르겠다. 내 삶을 채점하실 예수님을 뵈올때 까지 바른 걸음으로 매 순간을 예배로 그분께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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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3:26

브라이언과의 씨름

브라이언 (가명)은 지난 봄학기때 내 수업을 듣던 학생이다. 수업이 월요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여 9시 30분에 끝나는 긴 수업이다. 브라이언은 늘 가장 뒷자리 앉아서 혼자 수업 듣던 아이 이다. 강의 초기에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앉았었다. 긴 저녁 강의에 실증을 느꼈던지 조그만 테니스 공을 책상위에 다른 학생에게 굴려 보내며 장난 치다가 나와 "접촉사고"를 이르킨적 있다. 나는 강의를 하며 여러번 눈과 표정으로 브라이언에게 사인을 주었지만 내 눈을 계속 응시 하며 지속적으로 장난을 치기에 수업 마치고 그 주변의 세 아이들을 다 불러 이야기를 나눈적 있다. 그뒤로 주변의 세 아이들은 제안 하지도 않았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토론에도 참석하고 강의에 주시하며 나를 기쁘게 했다.

그 사건 이후 수업중 그 세아이들이 브라이언과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다. 결국 브라이언은 맨 뒷자리를 그냥 홀로 지키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던 브라이언이 무단 결석을 두번 하게 되었고, 나는 두번 다 이멜을 통해 혹 내가 기도해 줄것이 있는지를 물어 보며 이 아이를 섬기고 있었다. 첫 시험은 예상대로 F를 맞았다. 인디애나 대학에 있을때 유명했던 운동 선수들에게 특별 대우 해주지 않고 몇명에게 F준적이 있어서 그들의 팬을 실망 시키적이 많았던 나는 운동선수 이기도 했던 브라이언을 그렇게 공평히 대우했다. 그것이 쇼크 였는지 그 뒤로 이 아이의 수업태도가 달라졌다. 덕분에 두번째 시험에서는 B-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것 같다. 칭찬을 해 주었더니 매우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하며, 자기 스스로도 놀랐다고 고백하였다.

이 수업은 장애를 가진 이와 장애가 없는이들을 통합시키는 내용을 다루는 강좌 이었음으로 학생들은 자기 나이 또래의 장애를 가진 (대부분 intellectual disability/mental retardation, autism, cerebral palsy, etc)아이들고 짝을 지워 주고 일 주일에 두시간씩 서로의 삶을 나누는 Service-Learning Project를 도입해서 실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날때 마다 특정 포멧에 맞추어 자신의 체험 뿐 아니라 새로운 발견에 관한 저널을 쓰는 과제를 주었다. 물론 이 과제를 통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장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곤 했다. 

브라이언은 중중 뇌성마미를 가지고 있는 캐빈이라는 아이와 짝을 지워 주었다. 학기말에 내야 하는 저널이 평가에 귀중한 역할을 하지만 혹 중간 중간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수업시간 Service-Learning Project에대해 학생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당시 브라이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수상히 여겨 이 아이와 개인 면담을 해야 했음에도 나는 그냥 믿고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학기말에 제출하는 저널을 읽고 놀라 버렸다. 장애를 가진 캐빈이라는 아이는 1년중 1회만 칼빈대학에서 매일 행해지는 채플에 참여 하는데, 브라이언은 캐빈과 채플을 여러번 갔다고 적고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도 여러번 가서 식사할 뿐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좋은 활동들을 아주 조밀하게 적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멜을 보냈다:
As I was reading your journals related to the service learning with Ready for Life, I realized that you went to Chapel numerous times with Kevin. As far as I know, Kevin only goes to chapel one time a year (He has other activities at Calvin campus). Please explain your time with Kevin to me. Thanks.
내 생각으로는 브라이언이 없었던것을 마치 있었던 것으로 조작한 저널이었을 것이라는 강력한 추론이 있었다. 답장이 오지 않아서 이 아이의 학점을 우선 "I" (Incomplete)로 처리했다. 분명 성적을 온라인을 통해 확인해 보았을텐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몇주가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이미 학사경고를 받고 있던 터이라 학교에서는 왜 브라이언이 Incomplete를 받았는지 물어 오고 있었다. 

저널을 조작했다고 내 나름대로 추측했기에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있는그대로 인정할뿐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 하였다고 스스로 고백할 수 있는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새벽기도때 마다 잊지 않으려고 기도 노우트에 그같은 기도제목을 적어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내게는 딜레마가 있었다. 그냥 F를 성적 처리하거나, 부정행위로 학교에 보고하여 처벌을 받게 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가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자신의 부정행위를 통해 아 아이가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했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주님께 고백함으로 "미쁘시고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혜를 통해 앞으로의 삶에서 속임수 보다는 정직으로 맞서 싸우는 브라이언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바로 엊 그제 브라이언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낮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자신이 저널을 조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범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댓가를 무엇이든 받겠다고 했다.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기뻐서, 큰 감격으로... 내가 나의 죄를 주님께 고백했을때 주님께서는 내가 당시 느꼈던것 같이 기쁘하시고 감격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울먹이는 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잘 고백했다고 말하고, "너의 잘못된 행위를 네 등 뒤로 던져 버리겠다"고 했다. 브라이언은 진심으로 고마워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용서를 하지만 자신이 저질은 잘못에 실제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장애를 가진 다른 이와 더불어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내어 그들을 섬기고, 저널을 다시 쓰라고 했다. 브라이언은 그 댓가를 기쁘게 지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이 기쁜날은 하나님을 더욱 더 생각하게 된다. 나 같이 연약하고 악한 죄성을 가진 자에게 귀한 청년들을 맞겨 주신 하나님이 너무 미쁘셔서 감사를 드리게 된다. 브라이언을 통해, 하나님은 내게 기도를 가르치셨고, 회개의 의미를 가르치셨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귀회를 주셨다. 내가 교수로 청년들을 섬길 수 있고, 이들의 발을 씻길 수 있는 귀한 사역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싶다. 

이 사진은 학기말에 학생들과 장애를 가진 그들 파트너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 
불고기 구어 먹으며 친교를 나눌때 학생 하나와 장애를 가진 파트너가 팔씨름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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