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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2 17:04

모국방문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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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유학생으로 미국왔다가 이곳 미국에 계속 거주하게 되어 이제는 재미교포가 되었다. 인생의 반을 모국에서 살았고, 또 반을 미국에서 산 셈이다. 인생의 반을 두 나라에서 살았지만, 나는 한국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갖는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사람이라는 청체감은 분명하지만 살아가는 모습과 사고의 방법은 한국도 미국도 아닌 두 문화의 중간 어디쯤 있는듯 같다. 음식의 취향은 더 한국적이라 그것은 분명하지만, 사고의 방법이나 토론방법, 글 쓰는것, 사람 대하는것을 보면 두 문화 사이에 서있는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거나 미국에 오래산 사람이 모국을 다녀오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이 잘 산다는 것이다. 미국에 있는것 다 있어서 선물로 사서 가져갈것이 별로 없다. 잘 못 사가면 미국의 촌 구석에 살고 있어서 세련되지 못하다고 패션에 관련된것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전자 제품도 우리나라것이 더 우수한것 같고...

책을 사러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는 가 보았다. 지하철 사용에서 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지하철 승차권이 얼마인지 몰라 헤메었다. 주로 창문 뒤에 점잔케 앉아 있는 직원에게 "광화문이요!"라고 하며 오천원 혹은 만원권을 주면 잔돈을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앉아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해서 헤메었다. 사람대신 기계를 사용해야 했는데 말과 표정이 없는 이 기계는 꽤나 불친절 하였다. 내가 헤메자 뒤서 섰던 사람들의 짜증과 불친절한 표정... 헤메이다가 시간이 더 걸렸지만 결국은 표를 구입하여 지하철을 탓다. 전산화된 입구는 플라스틱 카드를 먹지 않아서 구멍을 찾다가 못 지나가서 남들하는것 보며 간신히 지나 갔다. 식은땀 흘려야 했던 지하철... 안도의 숨을 쉬고 지하철 기다리다가 도착한 차안으로 들어 섰다. 이미 지쳐버린 나는 얼른 의자를 찾아서 의기양양하게 앉았다. 주변을 둘러 보았다. 굳은 표정의 사람들이 기계를 만지작 거린다. iPhone도 보였고, 비슷하게 생긴 터치폰도 보았다. 젋은 여자들은 옷을 아주 잘 입어서 이쁘다. 얼굴도 더 이뻐진것 같다. 주위 사람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 지만 진짜 얼굴이 아니라 성형수술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잘 생긴 얼굴 보며 진짜일까 가짜일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지하철도 세련되었다. 나와서 광화문 지역의 지하 및 지상 상가는 뉴욕의 맨하탄 거리 같이 의리하였다. 

한국이 물질적으로 풍부한것은 사실인것 같다. 눈에 보여지는 것들은 다 고급이고 화려하며 세련된 모습들이다.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늘 입는 오리털 옷을 입은 나는 어느 구석에서 모자를 들고 서 있으면 돈도 제법 받을것 같은 거지의 모습과도 같았다. 사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 미국의 지저분한 공항과 달리 산뜻하고 깨끝한 공항을 보게 된다. 다녀본 공항중 인천공항보다 더 좋은곳은 아직 본적이 없다. 여하간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풍요속에 살아가는것 같다. 

어머니 집의 화장실에서는 일 끝나고 어떤 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와 내 거시기를 씻어 준다. 물의 온도도 아주 좋아 상쾌하다. 방에는 먼지가 좀 나면 자동으로 기계가 돌아가 먼지를 잡아 삼킨다. 문을 열때는 번호를 누르면 열리고 자동적으로 잠긴다. 우리나라는 정말 물질적으로 풍요 로운것 같다. 우리나라 라고 하나로 뭉땅거려 말하기 보다 서울이라고 말하면 더 정확하다. 다른곳은 못 보았으니까. 분명 내 상상을 벗어나는 수준의 다른 물질적 풍요가 있는 곳도 있겠고, 하루 하루 삶이 버겨워 하는 삶의 현장도 있겠다.

어찌하였던 무엇인가 내 마음과 생각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데 정신적으로, 관계적으로 참으로 빈곤한것 같다. 돈과 물질은 많은데, 시간에 다 쫓기어 다닌다. 여유있는 대화를 갖기 어렵다. 몇년만에 만난 여동생도 일산에서 부터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봉천동까지 나를 보러 달려 왔지만 차를 타고 온 시간이 나를 만난 시간 보다 더 길었던것 같다. 약 10여분정도만 대화를 나누었을뿐 곧 나가 버렸다. 후배도 한국에 들리면 꼭 전화해라고 당부하여 주저하다가 전화 하였는데 스키 타러 멀리가 있다고 만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남동생의 가족과 녀석의 아들과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아이지만 방학중 여러가지 학원공부 때문에 큰아빠를 볼 시간이 없었던것 같았다. 안타까웠다.

나는 잠시 미국이 좋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 민족, 내 문화권의 사람이 아닐지라도 미국의 이웃이 더 인간적이고 따사롭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무를 자르다가 나무가 집쪽으로 기우는 바람에 도움을 요청했을때 뛰어 들었을뿐 아니라 자기집에서 필요한 기구를 한숨에 달려가서 가져온 크리스가 그리웠다. 길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환경오염문제를 입에 거품 물고 이야기하는 데이브가 그리웠다. 저녁에 아이스크림 먹으로 오라는 켄과 크리스티네 부부 얼굴이 떠 올랐다. 눈 많이 온 날, 내 집앞까지 눈 치워주는 에릭의 환한 미소도 떠 올랐다. 내 가족은 아니지만 아이들 문제로 상의할것이 있다고 전화 하였을때 얼른 달려와 네시간을 심각히 이야기 들어주고 함께 기도할 수 있었던 글렌이 그리워 졌다. 칼빈대학에서 제일 바쁘다면 바쁠 수 있는 로이라는 친구도 떠 올렸다. 캔디와 과자도 나누어 먹는 친구, 바쁜 가운데도 잠시 찾아와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는 친구를 감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시간이나 인간관계에서 아주 가난하게 사는것 같다. 어떻게 보면 역성장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염려가 생겨 났다. 내가 대학다닐때만 해도 시간이나 관계면에서 아주 풍요로웠다. 당시 물질은 넉넉치 못했지만 나눔도 있었고, 시간을 일부러 내어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담아 들을 넉넉한 마음도 있었다. 어머니가 사시니까 방문하지만, 어머니가 계시지 아니하면 일부러 방문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미국이 더 익숙해져서 그런것일까 라고 물어 보았지만 반드시 그런것 같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같은 때에는 자연히 하나님 나라를 그리게 된다. 그곳은 서울같지도 않고 미국의 내 동네 같지도 않을것이다. 하나님의 완벽한 풍요가 삶의 모든 영역에 있을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유난이 짙었던 모국방문이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1:1)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잠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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