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2.07.13 시카고 코스타 2012
  2. 2010.07.20 코스타 2010: 섬기고 섬김받았음 (5)
  3. 2009.09.10 준석 형제의 코스타 09 간증문
  4. 2009.09.02 준석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6)
  5. 2009.07.21 코스타 2009 섬김 (4)
  6. 2009.06.30 코스타를 앞두고
2012.07.13 13:28

시카고 코스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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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의 모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사흘뒤 우리는 시카고를 향해 달렸다. 그날은 주일이였고 코스타 집회가 열리기전 jjKOSTA (조장코스타) 참석을 위해 하루 일찍 가야 하였다. 물론 조장들과 그곳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기에 찬양을 부르며 아내와 막내 영민을 태우고 3시간 반을 운전하여 휘튼대학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도착즉시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거센 바람이 불어 닥쳤다. 성령의 바람인가? 센 바람을 피해 빌리 그래햄 빌등에 들어선 순간 소나기와 천둥이 퍼 부어 졌다. 그뒤 정전이 되어 방이 어두어 졌고. 한시간 뒤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길가에 나무가 쓰러져 길이 막혀 조금 먼길로 돌아오는 이가 있다고 하더니, 홈 디폿으로 임시 발전기를 사러 가야된다는 등의 심상치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의 정상적으로 멘토모임을 갖고, 기도하고, 예배로 돌입했다. 

이렇게 시작된 코스타는 거센 바람과 천둥과 비교 할 수 없는 은혜의 소나기, 우리의 기존 생각을 뒤흔든 진리의 천둥이 예배때마다 발생하였다. 지금까지온 코스타중 이렇게 큰 도전이 없었다. 오전의 주제 강의와 저녁 집회의 간증 및 강의는 말 그대로 도전과 축복이었다. 집회중 눈물도 흘리고 마음다해 찬양 드리고...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금년의 찬양팀은 내 마음을 주께로 바짝 다가 서게 하였다. 찬양팀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고, 또 찬양인도자도 드러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만 드러나는 찬양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러하였다. 

금년의 강의 제목은 "인생의 지독하고 교묘한 시험 앞에서"라는 강의였다. 성경에 번역된 "시험"이란 우리 단어가 가진 pirasmos와 piradzo를 나누어 설명하였다. 즉 우리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하기 위해 치르는 인생의 지독한 시험 (pirasmos)의 한 측면과 그 같은 시험에 미끄러지게 하는 교묘한 유혹 (piradzo)에 대한 강의 였다. 세번 강의 하였는데 기본 틀은 같지만 세번 강의에 사용된 예들이 달랐다. 강의 순간 마다 주의 인도하심을 바랬고 또 민감하려 하였다. 강의중 떠오르는 예화들이나 나의 삶의 나눔은 모두가 계획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강의 듣는 이들은 몰랐지만 나는 내심 당황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였다. 그래도 떠오르는 생각과 감동을 밀어 내지 않고 순응하며 나갔다.

이 밖에도 아내와 나는 "고부갈등"에 대해 강의 하였다. 주로 아내가 인도 하였다. 참 잘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강의실로 모여들어 아내는 참가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더 듣고 기도해주기 보다 말을 더 많이 하였다고 참으로 아쉬워 하였다. 

이외 아내와 나는 강의 코스타 조장들의 멘토로 섬겼다. 멘토는 밤과 낮에 다 사역한다. 매 식사시간 조별모임에 초대되어 삶을 나누고, 저녁 조별모임에 심층대화로 초대 받아 대화를 나누며 함께 기도한다. 새벽에 집에 들어 오면 11살 짜리 영민이는 방에 혼자 자고 있다. 물론 전화로 서로 통화하며 아이에게 우리의 근황과 위치를 계속 설명해 준다. 


금년 코스타 사역은 유난히 의미가 깊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두 청년을 예비하셨던것 같다. 이번 집회중 청년 둘이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한 청년은 둘째날있었던 구원초청에 일어났다가 마음을 다시 바꾸어 중간에 그냥 앉아 버려 그 청년을 섬겼던 조장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4대째 원불교를 섬겨오던 가정에서 자라온 형제라 복음을 전하며 많은 방해를 받았다. 복음 제시후 영접기도로 들어가려 할때 갑자지 머리가 아픈 현상이며 또 혼미해 지는 현상이 바로 형제를 공격한 악한 영의 방해였다. "나사렛 예수이름"을 부르며 방해자가 물러가기를 명한뒤 형제의 wife와 더불어 기숙사 지하실에서 함께 소리내어 찬양을 하였다. 찬양을 마치고 형제가 스스로 무릎을 꿇고 "교수님, 저 영접할래요"라고 말하였다. 주저치 않고 인도하였고 우리는 함께 기쁨의 눈물로 서로를 부둥켜 안고 기뻐 하였다.이 형제는 화요일 첫강의를 들었던 형제고 또 강의중 좋은 질문을 한 형제이었다. 할렐루야! 

화요일 두번째 강의에 어느 형제를 만났다. 강의를 듣던 여러 지체중 유난히 내 눈에 들어왔던 형제이다. 왜냐하면 강의를 듣는 형제의 눈이 너무 갈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강의를 마친후 80분 강의를 15분의 휴식을 두고 두번 연속하여 나의 관절이 너무 아팠다. 걸음이 잘 걸리지 않아 아픔을 무릎쓰고 그냥 몸을 끌고 식당을 향하 던중 어느 커플이 눈에 띄였다. 둘이 손잡고 걷는 모습이 너무 보기좋아 시비를 걸어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까지고 고통이 나를 붙잡고 있어서 내 강의중 내 시선을 끌었던 지체였음도 알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하루 잊고 목요일 저녁 내가 섬기는 지역의 어느 조장이 저녁식사때 자기 조원들과 함께 먹자고 초대하여 응하였다. 자기 조원중 한 형제가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는것 같다고 보고 하였다. 
그래서 가 보았더니 조장의 이야기한 형제가 바로 내 강의에서 내 눈을 끌고 또 길에서 내가 시비걸었던 바로 그 형제였다. 일부러 그 옆자리를 선택하여 첫 질문을 던졌다. "예수님이 좋으세요?" 그의 대답을 들으며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형제임을 알았고 식사후 그 형제와 그의 아내되는 자매를 이끌고 강사숙소의 어느 휴계실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가 되었냐고 하자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한다. 중보기도실에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너무 잘못했다는 생각에 "하나님 죄송해요"하는 고백을 조용히 혼자 눈물 뚝뚝 흘리며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성령의 만지심, 그것없이 회개에 이룰 수 없는데 성령께서 이미 형제를 그렇게 만지신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교수님, 준비 되었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형제의 손을 잡고 영접기도를 인도하였고 우리는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그다음날 아침 형제가 속한 조의 조장의 보고가 참으로 귀했다. 과묵하여 말을 하지 않던 그 형제가 그 구원의 순간을 밝은 얼굴로 간증하며 말을 많이 하더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코스타를 섬기는 기쁨의 절정을 바로 이같은 순간들이다. 내가 한것이 아니라 좋은 강의들과 찬양들, 조장의 섬김, 조원들의 기도들, 그리고 나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역사였다! 정말 큰 기쁨이다. 새 생명의 태어남은 정말 기쁘다. 이제 이들이 잘 자라나도록 이제 중보해야 하고 섬겨야 하겠다. 이들과 더불어 상담하였던 여러 지체들을 포함하여. 


사진출처: https://www.facebook.com/kosta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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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0 00:41

코스타 2010: 섬기고 섬김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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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가 지난지 여러날이 지났음에도 이제사 블로그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일이 있어서 가정의 일을 제외 하고는 거의 모든일에 손을 떼고 있었다. 마침 방학이라서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코스타가 있었고, 아픈 마음을 가지고 코스타를 섬기러 갔다. 금년에는 8지역 (미시간과 오하이오주)의 조장들의 멘토로 아내와 함께 섬기었고, 또 "더 낮아짐을 선택하는 유학생활"이라는 강의도 하나 하였다.

코스타에 멘토로 또 강사로 섬기러 갔지만, 나는 오히려 섬김을 받고 온것 같다. 다른 사역자들로 부터 또 많은 코스탄들로 부터 사랑과 축북을 듬뿍 받고 왔다. 특히 함께 섬기러온 목사님들과 다른 사역자들과의 만남은 늘 기쁘다. 그리고 그같은 만남으로 나의 신앙은 도전받고 힘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청년코스탄들의 뜨거운 열정, 상담과 교제를 요청하는 이들의 진솔함은 나에게 큰 기쁨이다. 밤늦도록 토론하고, 기도하며 우리는 함께 주님깨 바짝 가까이 다가가려로 하였다. 이들과 약 1주일 (조장 코스타 포함) 교제를 통해 지쳐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을것 같은 나의 영혼은 자리를 툭툭 털며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제공하였다. 힘과 능력이 있어 섬김이 아니라 믿음으로 또 은혜로 섬김을 철저히 체험하는 코스타였다.

아내는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제목으로 그룹 상담을 인도 하였다. 상담이후 눈물 콧물 흘리며 함께 기도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바라 보며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다. 나의 경우 여러번의 상담이 있었는데 어느 형제는 아내가 나와
형제를 만나게 함으로 그냥 상담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형제와 만나 이야기 나누며 나는 소름이 끼쳤다. 왜냐하면 그 형제는 나의 과거를 똑 같이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담의 열매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나는 형제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주안에서 회개한 내용들을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섬김은 Two Way통로 같다. 섬김과 동시에 섬김을 받는것 같다. 내게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으며, 또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섬김을 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섬기는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적 (Enemy)은 우리의 잘못, 어려움, 문제를 놓고 끊임 없이 고소 (accuse)한다. "네 문제를 보아라. 네 문제도 못 다루면서 어떻게 남을 섬기느냐? 너는 섬김의 자격이 없다" 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섬김의 본을 보이신것 처럼 우리는 섬겨야 한다. 비록 연약함이 있다해도 우리는 섬겨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섬길때 하나님의 궁휼이 나타난다. 내 아픔은 남의 아픔을 잘 부둥켜 안을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죄로 얼룩진 나의 모습은 남의 죄를 보고 함께 아파하게 되고 그 아픔속에 함께 눈물흘리며 회개할 힘을 준다. 이번 코스타의 섬김이 그랬다. 그래서인지 나와 교제한 강사들, 간사들, 코스탄들과의 교제속에 큰 섬김을 받은것 같다.

아래 사진은 8지역 조장들과 함께한 모습이고, 또 다른 사진은 파송식때 코스탄들과 작별하며 아내와 찍은 것이다. 코스타를 통해 은혜의 단비를 소나기 처럼 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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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0 17:59

준석 형제의 코스타 09 간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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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석 형제가 2009년 KOSTA USA (Chicago)에서 발표한 
담대하고도 진솔한 간증을 eKOSTA에서 녹취하여
2009년 9월 8일 포스팅한것을 이곳에 링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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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2 21:36

준석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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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2시 30분 준석이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 나도 몰래, 말없이... 늘 그러듯 "교수님, 먼저 갈께요!"라는 인사도 없이 떠났다. 괘씸한 녀석! 녀석이 나보다 먼저 천국 갔기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인사도 안하고 가는 녀석이 어디 있어. 천국에서 만나면 혼내준다고 속으로 되뇌이며 한없이 울었다. 천국서 만나면 허그 (Hug) 하기전 굴밤부터 한방 먹여줄거다. 이 버릇없는 준석이를 생각하다가 바로 정란자매에게 전화 했다. 어제도 오늘도 수없이 전화 했지만 첫번째 통화 되었을때는 함께 말없이 울기만 했다. "정란자매, 그냥 같이 울자!" 오열하듯 울어 대는 정란 자매와 전화 통화하면서 나는 길에서 그렇게 울고 있었다. 준석이가 너무 그리웠다. 옆에 손을 잡아 주지 못해 미안하였다. 

준석이를 만난 것이 벌써 2년도 넘었다. 한국에서 내가 아주 잘 아는 어느 교수님의 아들과 함께 인디애나대학으로 유학 온다고 하여 사실 그 교수님 아들을 공항으로 라이드 갔다가 함께 동행하고 있던 준석이를 만난것이었다. 유난이 몸이 커 보였지먄, 인상이 아주 착한 곰 같이 생겼다. 팬더 곰 같이 귀엽기도 하였다. 두 학생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약 이틀 정도를 함께지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던차에 준석이가 예수님을 믿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알려주려고 입을 열자 거의 방어적으로 "내게는 복음 전할 생각초차도 마십시오!"라는 녀석의 허풍에 어깨 두드려 주며 "너는 곧 예수 믿게 될거야!"라고 되 받아 답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 보았고, 하다 못해 유학생 신분의 청화대경호실 출신의 공무원도 만나 복음을 전했지만 준석이처럼 딱딱한 마음으로 대하는 이도 드물었다. 그러나 준석이는 드물게 착했다. 공손하였다. 모든것이 깔끔하였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달리 태도를 취하는 아이였다.

그러던 준석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시작하여 교회도 나가고, 같은 교회의 어느 집사님과, 그리고 나의 미국인 친구 Darwin과 성경공부도 하며 이 아이는 그리스도인으로 되어져 가고 있었다. 보통 열심이 아니면 나가기 어려운 목요모임에도 나왔다. 앞에서 말씀을 전할때면 준석이의 눈에서 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만져가심을 자주 확인하곤 했다. 사무실에서나, 복도에서나, 혹 캠퍼스 어느곳에서 만나든 함께 이야기 할땐 준석이는 예외없이 운다. "준석아, 내가 너 때렸냐?"라고 물으면, "그냥 교수님보면 눈물 나요. 나도 모르겠어요!" 그말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아내가 가게 할때 조그만 도움이 필요하여 부탁하면 두팔 걷어 올리고 굵은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도왔던 준석이다. 가게를 띁어서 모든 가구와 기구들을 미시간에 가져 올때 돈을 주고 일을 시킨적 있다. 돈을 줄 별다른 이유가 없어서 준석이를 고용하였다. 그냥 일을 부탁하면 돈을 안받으니까 고용해 버린것이다. 준석이는 무섭게 일한다. 남의 일도 자기일 같이 한다. 아내와 나, 그리고 나의 큰 아들 상민은 그냥 놀라기만 하였다. 정성껏, 몸을 아끼지 않고, 땀을 흘리며, 즐겁게, 그리고 정열을 가지고 일한다. 

공부도 그렇게 정열적으로 하였다. 참으로 열심히 도서관을 드나 들며 공부하는 성실한 학도였다. 그러나 준석이는 자신의 이기적 성공만을 추구하려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학도가 아니였다. 내 눈에 보인 준석이는 아주 진지한 크리스쳔 학도 였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준석이의 고민은 자신의 학문과 신앙을 통합하는 문제였다. 미시건에 있는 내게 여러번 전화도 하였고, 또 집으로 방문하여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으며 준석이는 크리스쳔 학도의 진지한 면모를 내게 보여주었다. 아래의 글은 지난해 9월 14일 준석이가 내게 보낸 미멜중 하나이다. 
... 앞부분 생략...  대학에서도 관광개발을 전공하였고 이곳 인디애나에서도 역시 Toruism Management 공부하고 있습니다만학업의 관심분야를 이제서야 조금씩 찾아가는듯 합니다관광이라는것이 관광객과 관광자원그리고  둘을 연결해 주는 제반 모든 요소들을 다루고 있지만저의 관심분야는관광자원입니다자원의 경제적문화적사회적 임펙트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그러다 보니자연스레 지속가능한 관광 (sustainable tourism), 대안관광(eco-tourism, green tourism, rural tourism...), 자원의 경제적 가치   문화적사회적 영향 평가관광객의 태도  그에 따른 관광지의 선택자원해설(interpretation) 영향 등이 주된 관심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교수님! 코스타를 전후로 해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 다시 말해 기독교인으로서 저의 학업의 목적과 여정을 어디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구세주로 믿기전에는 미국에서의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좋은 학자가 되는 것이 그저 저의 목적이었는데요, 지금은 제가 살아서 숨쉬는 것도, 또한 이곳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주신 학업의 기회이기에 설사 제가 박사 진학에 다시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저 저의 부족함을 돌아볼 개인적인 자조나 타인에 대한 원망은 없기를 소망합니다.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혹시라도 박사과정에 진학한다면 주님께서 제게 바라시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크리스챤 Scholar로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있는 학문을 하고싶습니다. 요새 Leisure and Aging이란 과목을 들으며 한국인 이민 노인들의 여가 만족도와 social support 대한 페이퍼를 쓰고 있는데요예전에는 전혀 관심밖이었 leisure recreation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minority, ethnicity, and nationality, 사회적 약자 (노인, 장애인, 경제적 소외계층 )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만솔직히 제가 이제껏 가지고 있었던 관심분야들은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관광자원분야와 행복, 다소 쌩뚱맞은 ...어쩌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어떻게 연관지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소그룹에서 뵙게된 노령의 권사님 내외분을 보면서 점점 제가 해야 공부가,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주제의 페이퍼을 쓰면서, 이러한 생각 중에 권사님 내외분을 만나게 되었는지 그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교수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경제학을 위시한 모든 학문이 어떻게 파이를 크게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하는가에 촛점을 맞춘, 오로지 일만을 생각하는 음울한(dismal) 학문이라면, 관광학이라는 학문은 일이 아닌 여가에 바탕을 두고 어떻게 사람들을 놀게, 쉬게 만들어 있는가를 연구하는 행복한 학문이라고 합니다..굳이 leisure recreation 아니더라도, 제가 이제까지 공부했던 관광이라는 학문과 지식을 통하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있지 않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만 정작 배운 지식이란 것이 너무도 얇아 깊은 생각에 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다만, 관광을 통해서 사람들을 성장, 성숙시키고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들 있지않을까 하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만 도달했을 뿐입니다평생의 연구주제를 행복으로 삼고자하는 석사생을 과연 어느 누가 받아 줄지 불안함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행복한 확신도 오래간만인듯 합니다..^^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 뒷부분 생략...
그뒤 준석이의 생각은 많이 발전하여 크리스쳔 학도로 박사과정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막연하나마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듣는 나로서도 그 그림이 많은 생각, 고민 및 기도가 있었음을 눈치챌만치 잘 그려져 가고 있었다. 학자로서 자신의 성공보다 자신의 공부로 이 세상을 섬기고 싶은 그의 뜨거움을 대화때마다 감지 할 수 있었다. 

석사학위를 마쳐가면서 박사과정 진학에 어려움이 정말 많았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박사과정을 추진하는 준석이를 위해 쓴 추천서가 제법 된다. 낙방의 소식이 계속적으로 날라왔지만 우리는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기다렸다. 그리고 돈이 없어 박사과정을 경제적으로 어떻게 버틸까 심각히 고민되어 장학금을 위해 또한 함께 기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미시간에 와 있었기에 우리들은 의례히 전화로 기도 하곤 했다. 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드디어 Texas A & M (준석이가 하던 전공 분야에서는 제일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으로 부터 입학허가서가 왔다고 전화를 받았다. 함께 기뻐하며 전화로 아우성치며 축하한적도 있었다. 그런데 조금후 장학금까지 받았다고 말을 하여 함께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하였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준석이가 바로 엇그제 같다. 

텍사스로 이사 가기전 코스타에도 참석하여 많은 코스탄들 앞에서 자신의 간증을 진솔하게 한적이 있었다. 간증이 있기 하루 전날 저녁, 집회가 있던 휘튼대학의 Alumni Gym에서 함께 손을 붙들고 기도 하였다. "하나님, 준석이가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드러내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는 간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라고.. 많은 간증들이 혹 하나님 보다 자신을 높이는 자기자랑이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 였다. 다음날 준석이는 강단에 섰고,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된채 하나님을 높이는 간증을 하였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 냈다. 얼마나 감사하였던지. 그리고 준석이의 간증은 많은 코스탄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이토록 준석이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일에 용감하다. 그리고 하나님 믿은지 얼마 되지 않는데도 하나님 높이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래서 그 간증을 들으며 녀석 보다 내가 먼저 울었고 기뻤다. 왜냐하면, 나는 준석이가 유별나게 선하고 좋은 아이라서 하나님을 그렇게 높인것이 아님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어려움 뒤에 늘 함께 계셨던 하나님, 그리스도를 주저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준석이로 하여금 하나님을 그토록 높이는 것임을 가까이 있었던 나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기쁨으로 본인이 가고 싶었던 대학으로 얼마되지 않은 짐을 싫은 트럭을 몰고 가며 전화 하였다. "교수님, 저 지금 칼리지 스테이션을 향해 가고 있어요! 가면 또 전화 할께요!"라고 말하던 준석이의 목소리가 바로 어제 그제 같다. 떠나면서도 자신의 아픔 보다 내 관절염의 아픔을 더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던 준석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 이지만 건강보험이 없어서 머리가 아픈데도 꾹 참고 보험 살때 까지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험이 시작되는 그제 병원에를 찾아 갔었고, 준석이는 그 다음날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나 흐르는 피를 막을 수 없었던 의사는 절망을 선언하였고, 가족들이 산소호흡기를 뺄것을 제안하였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준석이는 새벽 2시 반에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 

준석이가 주님의 곁으로 가기전 늦은밤까지 기도 하면서 우리들이 나누었던 지난날의 많은 대화들을 기억하였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손으로 눈물을 훔치던 모습, 울먹거리며 나의 건강을 묻던 그 입술, 웃을때는 유난히 밝았던 눈가의 눈 웃음... 그리고 준석이가 전에 내게 보냈던 이멜도 다시 열어 보며 형제를 그리워해 보았다. 
교수님!  참 보고 싶습니다... 잘지내시는지...안부를 묻는 인사보다 보고싶다는 말이 먼저 나오게 되네요...^^ ... 준형이 형을 통해서 교수님 가정의 평안함을 들으면서 제가 왜그리 기쁜던지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성정에 앞으로 얼마나 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실지 짐작은 합니다만, 건강 유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교수님을 뵈면 주책없이 눈물을 훔치고는 했는데요,,, 요새는 교수님 생각에 짠~~ 하고는 합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던 교수님 손이 참 따뜻했었는데요.. 
텍사스 갈때처럼 "교수님, 나 지금 천국 가요! 가서 전화 할께요!"라고 하면 안되었나? 나쁜 녀석! 네 손을 잡고 밤새 기도 하고 싶구나. 너를 이땅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너무 크지만, 너를 그 누구 보다 더 사랑하는 주님께서 계신 그곳에 갔으니 오히려 네가 부럽다. 준석아, 돌아 보니까 네게 사랑의 빚을 너무 많이 진것 같구나. 준석아, 네게 사랑의 빛을 진 많은 이들가운데 회개의 운동이 일어 나고 있다.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함이다. 네가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갔던것을 알지 못했던 나였고, 또 이웃이었기에 과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진실이었는가를 되묻게 되는구나. 네 아픔을 감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다오. 뿐만 아니다. 우리들은 영혼구원을 뒷전에 쳐박아 둔것을 통회하며 무릎꿇고 있다. 네 삶이 구원의 기쁨으로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산 삶이 었기게 우리에게 더욱 큰 도전이었다. 우리들이 더 영혼을 사랑하며 너 처럼 구원의 기쁨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도록 우리들이 주안에서 애를 쓰마. 준석아, 잘 가거라.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자. See you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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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11:46

코스타 2009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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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코스타 조장 멘토로 섬길 수 있었다. 부족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충성스럽게 섬길 수 있었다. 8지역을 맡았는데 주로 미시간과 오하이오 지역의 조장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혹 도울일이 없는지 살펴보고, 아침 큐티 시간, 매 식사 시간마다 행해 지는 조별 교제, 저녁 집회이후 조모임 등 이 잘 되어 지는지 보살피는 섬김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시 영혼의 돌봄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맡은 8지역은 모두 12지역중 가장 적은 수인 4개의 조로 구성 되었고 (아래 단체 사진 참조), 5명의 조장 및 부조장이 있는 지역이었다. 적은 숫자를 섬김이 내게는 너무 좋았다. 몸이 불편한 나로서 충분히 감당할 만해서 좋았고, 무었보다 각 조별 한 영혼 영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지난해에는 약 15개조를 맡아서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지 충분한 기도도 못하고, 영혼의 돌봄도 쫏기다 시피하여 마음이 무거웠었다.


코스타를 마치고 잠시 금년의 코스타에서 있었던 섬김 몇가지를 회고해 보려고 한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곳에 다 적을 수는 없고, 단지 하나님께서 지극히 평범한 교수 한사람을 통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몇가지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내가 섬긴 8지역의 4개 조에 한명의 참석자가 구원 받지 못했음을 둘째날 아침 파악할 수 있었다. 믿는 아내의 권유로 참석은 하였지만 손들고 깡총 깡총 뛰며 찬양하는 "광신도"들의 모습을 보며 불편한 마음이 얼굴에 너무 잘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와의 첫 교제에서 진지함이 보여졌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혼임을 확신할 수도 있었다. 첫날의 만남은 나의 간증을 들려 주며 마음을 열어 보라고 권유 하였다. 그날 이후 몇번 마주치며 얼굴이 밝아 지는것을 볼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만져가심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두번의 만남을 제안 했고, 어느 오후 금식으로 점심식사가 없는 그날 조용히 휴계실에서 만나 복음을 전했다. 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셔야 했는지를 구약과 신약을 오가며 간략하게 설명했고, 왜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지를 편안하게 설명했다. 이후 4영리를 가지고 1원리 부터 3원리 까지 갔다. 앞에서의 설명으로 인해 1-3원리를 성명하는데는 무려 몇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드디어 4번째 원리에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나오는데, 영접하겠느냐고 초대하였더니 바로 응했다. 형제의 손을 잡고 영접 기도하고 축복해주며 해어 졌다. 

이외에도 조장들중 개인적인 어려움과 혼돈으로 어려워 하는 지제가 있어서 상담도 하고 식사 교제도 하였다. 내가 담당하는 지역만 섬기는것이 아니고 코스탄 전체중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섬김이 필요한 지체 및 조를 찾아가 섬기기도 하였다. 어느 지역에는 한 형제가 ex-girl friend와 만나기 위해 코스타 3일째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어서 어느 조장으로 부터 만나 달라는 부탁이 왔다. 코스타 집회 끝까지 남아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은혜를 받고 갔으면 좋겠다며 그 형제를 꼭 만나달라는 조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만나 보니 다음날 아침 떠나려고 하는 형제는 혹시나 해서 돌아갈 비행기 표를 2장 사서 가지고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 비행기 표와 집회 마치는 날 오후 비행기표 였다. 형제의 말에 의하면 기도한후 잠을 잤는데 꿈에서 누군가 "가라"고 하는것 같아서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 비행기 타고 되 돌아 가야만 된다는 지체와 그 조원들과 약 30분 교제 하였다. 교제중 하나님 음성을 분별하는 것에 관해 몇가지 원칙을 나누었다. 교제를 마치자 형제 왈: "교수님 말씀 들으니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못 들은것 같습니다. 코스타를 마치고 떠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이래서 좋다. 나이가 많이 들면 복잡하고 고집도 세다. 청년기는 그래도 말랑 말랑하며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을때이라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씨름하고 함께 기도하고 싶어 진다. 위에 몇 케이스만 적었지만, 여러 지체들을 만나며 대화 하였다. 실의에 빠진이와 밤 늦게 벤취에 앉아서 함께 눈물흘리며 기도하고, 삶, 학업, 취업 및 데이트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새벽까지 대화를 나눈 미혼자 그룹과의 만남, 전에 수양회 인도 했을때 만났던 지체들과의 follow-up만남등은 참으로 귀했다. 그리고 교수의 신분을 가지고 코스타에 참석한 지체를 몇명 만났다. 그들과의 교제를 통해 캠퍼스를 향한 비젼도 나누고 섬김의 기쁨도 간증 할 수 있었다. 

코스타는 내게 있어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시간이다. 그리고 청년들과의 교제의 시간이다. 나는 3-4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청년들을 만났다. 코스타는 다른 사역자들과의 만남의 시간이다. 청년들과도 나의 아픔을 드러 내고 교제 하지만, 다른 사역자들과 삶을 나누는 일은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늘 그러하듯, 코스타에서 만나는 몇 평신도 사역자들이 있다.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들을 멀찌기서 보고만 있어도 많은 시간 교제한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그들의 모습과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발견하고 나를 바라 보는 귀한 시간이다.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그렇게 사용하시고 만져가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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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15:09

코스타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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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혼을 구원했던, 믿음의 선배들을 자서전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은밀히 몇 시간동안 기도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그들처럼 하지 않고도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음을 세상에 증명하자.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믿음과 인내로 약속을 얻어 냈던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따르기로 하자. 그들은 죄인들이 구원을 얻도록 주님 앞에서 울었고 기도했고 몸부림쳤다. 주님의 말씀의 검(劍)에 완전히 압도되기 전까지는 쉬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의 능력의 비결이었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때면, 그들은 주님께서 성령을 부으셔서 죄인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도로 씨름했던 것이다.- 오스왈드 스미스 (Oswald J. Smith)
다음주면 시카고에서 코스타 (KOSTA)가 열린다. 많은 청년들이 믿음의 선배들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동안 코스타에서 조장들을 섬기는 조장 멘토로 많은 청년들을 만났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어떤 청년들은 신앙생활중 "더 나은 방법" 없을까, 유명한 목사님들 및 잘 알려진 혹 세상에서 성공한 신앙인들의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 등을 궁금해 하며 예배를 들어가고, 세미나를 선택하며, 상담을 하곤 한다. 

혹 빗나간 기대를 가지고 코스타로 달려올 청년들이 금년에도 있지 않을까 염려하며 기도 하던중 위의 글을 대하게 되었다.  짦은 집회 동안 청년들이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잘 알려진 강사님들과 목사님들의 모습과 그들의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놓치기 쉬운것은 어쩌면 주님 앞에 말씀을 붙들고 밤새 울며, 기도하고 몸부림 치는 것, 말씀앞에 자신이 온전히 굴복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쉬지 않고 주님을 붙들었던 선배들의 씨름일런지 모른다. 

나는 이번 코스타가 잘 알려진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과 그들의 설교를 관객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듣는 코스탄 (KOSTAN)이 아니라 자신도 그같은 씨름을 실제 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그런 집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해 본다.
출처: KOSTA Photo 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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