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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9 새벽을 깨우리로다
  2. 2009.01.08 큰 기쁨
2009.05.29 17:08

새벽을 깨우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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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 (약 한달 정도가 된것 같다) 종하 (가명) 형제와 좋은 교제를 나누었다. 종하는 칼빈대학교 2학년으로 아들 상민이와 동갑 나이다. 종하를 처음 만난곳은 칼빈신학교와 칼빈대학 사이에 있는 "Sem Pond"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그때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 호수는 얼어 있었다. 거기서 형제는 혼자 찬양을 연습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워 조용히 시선을 피했던 아이였다.

이 아이를 다시 만난것은 어느 수련회에서 였다. 그 아이가 거기 있으리라 상상은 못했지만 그날 강사로 설교 하러 강단에 섰는데 종하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날 주제는 "Strangers in the World"로서 "Trans-Culture Kids" (일명 TCK로 불리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Missionary Kids, MK 라고 부르기도 하는)를 주요 대상으로 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나느네로 부르신 목적을 함께 묵상하는 내용이었다. 종하의 부모님은 현재 중국에서 선교사로 계시고, 종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부모님을 따라 중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칼빈대학으로 온것이었다.

수련회를 마친이후 며칠이 지났는데 학생들로 부터 종하가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놀라서 헨리 나우웬의 책 한권을 사서 병원으로 병문안 갔었고, 그곳에서 약 5분간 만나 함께 기도하였다. 약 10여일후 퇴원하여 내 사무실로 찾아 왔다. 퇴원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몸이 쇠약하여 종하를 아예 우리 집에 데리고와서 함께 거하며 몇주간 보냈다. 나는 그 아이의 아빠가 되어 주었고, 그 아이는 나의 아들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네명의 자녀를 사랑하고 섬기는 특권을 누린셈이다.

우리는 함께 형제의 아픔을  만지고, 형제는 우리의 아픔을 만져 주었다. 아픈 이들 끼리 서로의 아픔을 주안에서 위로 하고 싸매어 주었다. 그같은 교제에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를 다 같이 만져 주셨다. 형제는 지금 다 회복되어 부모님이 계시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차를 타고 함께 오하이오로 5시간 여행을 함께 한적이 있다. 그때 자기가 쓴 시를 하나 소개 해도 되냐고 하여 허락하였고, 그 시로 인해 감동이 커서 이곳에 적어 본다.

새벽을 깨우리로다

아침이라 함은
태양이 떠올라
모든 만물을 비춤이요
그로 인해 모든것이 보임이며
내 심장이 진동함 이로다

바람은 나를 감쌈이여
지난날 추억의 회고를 가져감으로
지금 이순간을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산소를 공급함 이로다
모든 만물아
바람과 함께 춤출 지어다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고자
달려가는 이 기다림의 순간이
어찌 길게만 느껴지겠느뇨
바람과 함께 들리는 당신의 숨결이
햇살과 함께 보이는 당신의 손길이
내 곁에 있음인데 말이요

*** 바람 = 성령; 사랑하는 이 = 하나님

형제가 그렇게 아릅다웠던것은 그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때문에 기뻐하고, 외로워 하는 형제이었다. 가까운 장래에 팔레스타인에 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곳은 자신의 부르심이 있는 곳이라고 여겨, 차를 타고 여행중이라도 혹 이란 (Iran)음식 파는 곳이 눈에 띄면 조그만 음식을 하나 사서 들고 나오는 종하였다. 그는 후일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그곳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몰라 아파하는 영혼들을 돌고보 있을것이다. 그를 만나게 하시고 우리를 함께 축복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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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8 18:13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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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했을 때에 내가 느꼈던 기쁨은 형언할 수 없다.
나는 세상이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쾌락을 맛보았다.
그러나 한 영혼을 구하는 기쁨은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다.
- 챨스 스터드
* Quoted from "ChurchLeader" by Christian Network


오래전 어느 주립대학의 교수로 있을때의 이야기이다. 한국식품을 사려고 하나밖에 없었던 한인마켓을 갔었다. 아내와 한참 장을 보고 있는데 어느 학생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당시 한인 학생회 간부였고 비교적 한인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학생이었다 (또 골프를 아주 잘쳤던것으로 기억난다). 나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하기에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갑자기 내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해야만 하는 급한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학생, 거기에 서 있는 모습이 해골이 서있는것 같구려!" 문뜩 느끼기에 성령의 인도하심 같았다. 그러나 순종하기 정말 싫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했다가 그 학생에게 깊이 상처 줄것 같았고, 또 그로 인해 내가 받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것 같아서였다. "어느 교수를 한인마켓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나한테 죽은 해골같다고 말하더라. 그런데 그 교수는 예수믿는 사람이더라..." 뭐 이렇게 나가면 교회에도 먹칠하는 일 같기도 해서 였다.

많이 망설였다. 절대 그 말을 할 수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성령께서 시키실때 불순종 할 수 없어 억지로 그 말을 전해야만 했다. 하기 싫었던 말이라 내어 뱉어야 했기에 감정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내 뱉어 버렸다. 그 말을 들은 그 학생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크게 실수 한것이야. 너무 심했어. 정말 분노가 하늘만치 치솟앗구나. 이제 나는 큰일 났다." 우선 상황을 모면 하려 나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오려 했다. 만일 쥐 구멍이 어느곳에 있었고 또 내가 쥐같이 작았더라면 나는 당장 그리로 들어 갔을 거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절제하며 문가로 나가는데 그 학생이 상기된 표정으로 총알같이 내게 달려 왔다. 올것이 왔다 싶어 각오하고 그 학생을 쳐다 보았다.

학생: "교수님, 어디 사십니까?"
: (속으로) "그걸 왜 뭍냐? 그냥 여기서 해 버리지."
: (그러나 실제로) "이곳에서 약 20분 떨어진 ***에 삽니다."
학생: "그럼, 장을 다보고 교수님 집에 가서 뵈어도 되겠습니까?"
: (우물쭈물) "뭐 꼭 와야만 되는 일이면 오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어색하게 헤어졌다. 물론 내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예수님 믿으려면 적당히 믿어야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라고 속으로 한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약 한시간뒤 그 학생은 우리집으로 그의 아내와 함께 나타 났다. 그 학생의 아내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자매였다.

학생: "교수님, 아까 왜 그런말 했습니까?"
: "누가 시켜서 그랬소!"
학생: "그게 누굽니까?"
: "성령님이요!"

그 학생은 정색을 하고 나를 쳐다 보았다 (째려 보는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학생: "교수님, 사실은 사촌형님이 몇해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형이 돌아가시기전 누군가가 교수님이 제게 했던 말을 형한테 똑같이 하면서 교회 나와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을 놓고 같이 웃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형님은 교회를 가지 않았고, 그뒤에 교통사고 난 것입니다. 그리고 형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요."
: "그래요? 교회 다녀도 교통사고는 나는데..."
학생: "교수님, 교회가야 될것 같습니다."
: "교회만가지 말고 예수님 영접하여 구원 받으십시오."

그날 그 학생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날 우리는 너무 기뻐 함께 울었다. 위의 Studd가 고백했던것 처럼 그때의 기쁨은 다른 세상적 기쁨과 비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마치 잃은양 한 마리를 찾아서 어깨에 메고 오는 목자처럼...


                      그림출처: http://www.hansgruener.de/pictures/krippen/strassenkrippe_verloren_hirte_48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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