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7.20 코스타 2010: 섬기고 섬김받았음 (5)
  2. 2009.01.20 영어로 고생하는 흩어진 나그네들이여
  3. 2009.01.06 칼빈대학 총장과 그의 집
  4. 2008.12.02 포악했던 갱(Gang)이 섬기는자로
  5. 2008.11.14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2010.07.20 00:41

코스타 2010: 섬기고 섬김받았음

코스타가 지난지 여러날이 지났음에도 이제사 블로그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일이 있어서 가정의 일을 제외 하고는 거의 모든일에 손을 떼고 있었다. 마침 방학이라서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코스타가 있었고, 아픈 마음을 가지고 코스타를 섬기러 갔다. 금년에는 8지역 (미시간과 오하이오주)의 조장들의 멘토로 아내와 함께 섬기었고, 또 "더 낮아짐을 선택하는 유학생활"이라는 강의도 하나 하였다.

코스타에 멘토로 또 강사로 섬기러 갔지만, 나는 오히려 섬김을 받고 온것 같다. 다른 사역자들로 부터 또 많은 코스탄들로 부터 사랑과 축북을 듬뿍 받고 왔다. 특히 함께 섬기러온 목사님들과 다른 사역자들과의 만남은 늘 기쁘다. 그리고 그같은 만남으로 나의 신앙은 도전받고 힘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청년코스탄들의 뜨거운 열정, 상담과 교제를 요청하는 이들의 진솔함은 나에게 큰 기쁨이다. 밤늦도록 토론하고, 기도하며 우리는 함께 주님깨 바짝 가까이 다가가려로 하였다. 이들과 약 1주일 (조장 코스타 포함) 교제를 통해 지쳐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을것 같은 나의 영혼은 자리를 툭툭 털며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제공하였다. 힘과 능력이 있어 섬김이 아니라 믿음으로 또 은혜로 섬김을 철저히 체험하는 코스타였다.

아내는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제목으로 그룹 상담을 인도 하였다. 상담이후 눈물 콧물 흘리며 함께 기도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바라 보며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다. 나의 경우 여러번의 상담이 있었는데 어느 형제는 아내가 나와
형제를 만나게 함으로 그냥 상담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형제와 만나 이야기 나누며 나는 소름이 끼쳤다. 왜냐하면 그 형제는 나의 과거를 똑 같이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담의 열매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나는 형제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주안에서 회개한 내용들을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섬김은 Two Way통로 같다. 섬김과 동시에 섬김을 받는것 같다. 내게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으며, 또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섬김을 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격이 있어서 섬기는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적 (Enemy)은 우리의 잘못, 어려움, 문제를 놓고 끊임 없이 고소 (accuse)한다. "네 문제를 보아라. 네 문제도 못 다루면서 어떻게 남을 섬기느냐? 너는 섬김의 자격이 없다" 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섬김의 본을 보이신것 처럼 우리는 섬겨야 한다. 비록 연약함이 있다해도 우리는 섬겨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섬길때 하나님의 궁휼이 나타난다. 내 아픔은 남의 아픔을 잘 부둥켜 안을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죄로 얼룩진 나의 모습은 남의 죄를 보고 함께 아파하게 되고 그 아픔속에 함께 눈물흘리며 회개할 힘을 준다. 이번 코스타의 섬김이 그랬다. 그래서인지 나와 교제한 강사들, 간사들, 코스탄들과의 교제속에 큰 섬김을 받은것 같다.

아래 사진은 8지역 조장들과 함께한 모습이고, 또 다른 사진은 파송식때 코스탄들과 작별하며 아내와 찍은 것이다. 코스타를 통해 은혜의 단비를 소나기 처럼 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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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08:57

영어로 고생하는 흩어진 나그네들이여

오래전 이야기이다. 어느날 사랑하는 어떤 형제가 나의 사무실에 들렸다. 너무 반가웠다. 반가움과 동시에 또 놀라버렸다. 형제의 머리털이 보이지 않아서 였다. 머리털 다 어디에 두고 왔냐고 물었다. 형제는 머리털 없는 머리를 극적거리며 "지난밤 삭발배 버렸어요!"하고 대답했다. 삭발을 해야할 어떤 큰 결심이 있냐고 물었다.

형제가 삭발은 한것은 영어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어가 자기때문에 고생하고, 자기도 영어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미국온지 6개월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유창하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학원 수업은 토론위주인데 강의 들어갔다가 기침한번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듣고 나와야 하는 아픔은 너무 크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미국유학 첫학기 수업에서 강의실이 다음부터는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같은 방에서 한시간정도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교수에게 달려간적이 있었다. 휴강을 하려면 칠판이나 강의실 문에 휴강사인을 붙이기라도 할것이지 남의 귀한 시간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 (나는 그렇게 말한다고 머리속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나온 말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른다) 뭐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화가나서 항의한적도 있었다. 교수가 웃으면서 결석을 하려면 미리 교수에게 통지하는것이 예의 인데 왜 무단결석을 하느냐라고 되물었다. 물론 나의 논리로 나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친절하게 앞으로의 강의가 다른 빌딩 103호에서 있을것이라고 하며 쪽지에 적어주며 나를 돌려 보냈다.

다시 삭발한 형제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형제는 영어를 잘할때 까지 삭발은 물론 앞으로 시리얼 (cereal)만 먹고 지낼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리얼 (cereal)만 먹다가 유학와서 객사할것 같아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얼른 자리에 앉아서 나와 이야기하며 진정하자고 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밥하고 김치먹고 힘을 내라고 권유했다. 왜냐면 영어가 잘되려면 몇년이 걸려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유학생들, 특히 대학원생들은 강의실 아니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외에는 외로우니 한국학생들끼리 모여서 식사도 하고 테니스도 치면 놀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에는 한인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를 가고, 일요일은 한인교회에서 우리말로 예배를 드린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강의실 벙어리에다가, 도서관에서 책빌릴때 2-3분 사서와 대화하는것, 식당에서 무엇을 주문할때 몇마디 하는것을 제외하면 영어를 향상시킬 기회가 전혀 없다. 

삭발한 형제뿐 아니라 이렇게 영어로 고생하는 유학생들에게 내가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양로원이나 장애인들이 있는곳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곳에 가서 잘 하던지 못하던지 떠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져야 한다. 양로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죽을 입에 넣어 드리면서 한국이야기도 하고, 전공이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무도 감사히 서툰영어를 들어 준다. 짜증내지도 않는다. 워낙 외로운 분들이 많다보니 자신과 있어주는것 만도 감사해 한다. 

양로원에 있는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다. 유학생때 만난 어떤 할아버지는 교육학과에서 연구방법론과 통계를 가르친 은퇴교수였다. 책도 몇권 썻다고 한다. 통계로 고생하던 나는 할아버지께 기본 개념을 배워 아주 잘 사용한적이 있다. 

나는 미국에 온지 2년 반만에 전공필수과목을 가르친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른다. 열심히 강의도 준비했지만 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들의 눈동자를 보았을때 도무지 잘 알아들은것 같지 않고 불쌍해서 강의를 들어주는것 같은 생각만 지배했었다. 그러나 다음학기에 또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고는 매우 기뻐한적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한탓이 더 컷을 게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나마 헤메면서 영어로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자원봉사경력이 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나는 일주일에 10시간정도 장애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어떤날은 그들과 2박 3일 캠핑을 떠나기도 했다. 물론 장애인들의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가는 것이기에 교통편의, 음식, 침낭 등 모든것을 그곳에서 준비시켜 주었다. 나는 자원봉사를 통해 미국의 문화도 배웠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그때 사귄 미국친구 (장애담당 디렉터)의 소개로 그 아이의 부모집에서 약 2년을 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줄때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 영어도 배우고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삭발보다는 더 기가 막힌 영어 공부 방법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장애인들의 발과 손을 씻으며 사랑을 나누는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이다. 사회에서 그 가족 조차도 찾지 않은 소외된 많은 이들이 있다. 집이 없는 Homeless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도 있고, 집없는 사람 집을 지어주는 Habitat of Humanity (http://www.habitat.org/)도 아주 좋은 기관이다.

엉어는 말을 배우기위함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함이다. 언어는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질때 바른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다. 칼빈대학의 동료인 바바라 카빌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Foreign language education prepares students for two related callings: to be a blessing as strangers in a foreign land, and to be hospitable to strangers in their own homeland."

사진출처: http://todaysseniorsnetwork.com/Hands,%20Caregiver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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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6 22:45

칼빈대학 총장과 그의 집

오늘 또 총장집에 갔었다. 그간 여러 주립대학에서 교수 해보면서 내가 섬기던 대학의 총장의 집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또 가 보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같은 평범한 교수가 그런곳 가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았던것 같다 (총장이 외부 잘 알려진 식당이나 멋진 학교 식당으로 초대하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칼빈대학 총장은 다르다. 나는 한 학기 동안 그의 집을 세번 방문하였다. 앞으로 더 가게 될것 같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지난 한해 48,000명 정도가 총장의 집을 다녀 갔다고 한다. 그냥 문을 열어 놓고 있었나 보다. 그 집에서 여러 사람들 만나 함께 기도하며 엄청난 숫자의 헌금/기부금이 들어 왔다고 한다.

나 보다도 키가 작은 우리 총장은 그의 집 문턱도 나지막 하다. 마치 문턱이 없는집 같이 사용하는것 같다. 예수님께 미친 총장은 그 집 사용이 다르다.

나의 집 문턱을 더 낮추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어제 내 귀에 속삭인 말이 있다. "말씀을 읽고 있을때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 하시는것 같았어. 우리의 것을 나눌때 우리에게 아무것도 되돌려 줄 수 없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섬기라!" 총장 집을 나서며 아내가 내 귓가에 들려준 하나님 말씀을 기억해야 했다.

우리대학 총장집 안과 밖의 사진을 몇개 찍었다. 총장집이 남의 집에 비해 크고 화려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보이지 않지만, 그가 그의 아내와 함께 어떻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집을 사용하느냐 하는 그 청지기의 삶은 더 아름답다. 집의 크기와 관계없이 그같은 청지기의 삶을 또 한번 기억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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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13:53

포악했던 갱(Gang)이 섬기는자로

그랜드 래피드에 살고 있는 Zeke Ramirez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형제의 이야기다. 갱단에서 활약이 제법 대단했던 사람이였나보다. 주로 밤에 일을 하고, 어둠속에서 그 능력이 인정되어져서 주위 갱단원에게는 일명 "올빼미"로 잘 알려진 그런 사람이였다고 한다. 총으로 사람을 쏘아 중상을 입히기도 하고, 여러종류의 무기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인생을 살아오던 포악했던자였다.

그의 인생이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다고 한다. 예고 없이 중풍이 왔던것이다. 너무 증상이 심해서 사실 의사들이 가망이 없다고 포기상태까지 갔다고 한다. 결국 의사들은 그의 생명을 연명하던 호흡기를 빼는것을 가족들에게 제의했고, 그의 형제들은 그의 장례식 마져도 계획을 해야하는 단계였다. 그러던 그에게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아직 내 때가 아니다! (It's not MY time!)." 의역하자면 네 생명을 가져갈 하나님의 때가 아니다라는 의미일것이라 생각한다 (더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그때가 2004년 7월이었다고 한다. 장례를 준비하던 가족이 생명호흡기를 빼는것에 갑자기 반대를 하여 일단 그의 생명은 그렇게 연장이 되어졌다.

그의 육신의 생명은 그렇게 구해졌다. 그러나 몸이 기적적으로 회복한 그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다. 육신의 생명뿐 아니라 영생마져 얻은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 그의 삶은 더 이상 남을 해치는 갱단이 아니었다. 총과 무기대신 망치와 톱을 들고 그가 남을 도울 수 있는 Handyman으로 이웃을 돕는 삶으로 변한것이다. 복음은 정말 무섭도록 사람을 변화 시킨다. 세상의 어떤 좋은 교훈이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 형제는 주변에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어려움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웃 고양이 구출에서 부터 몹시 더운 여름 이웃집 뜰에 쓰러진 큰 나무를 끌어 내는일까지 서슴치 않는다. 또 칼을 휘둘며 학교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소년원에 들어온 아이를 상담하며 보살피기도 한다. 그는 또한 잔잔한 미소로 이웃을 대한다. 동네에 잘 알려진 갱멤버로 알려진 포한했던 그가, 아름다운 미소로 이웃에게 인사를 하며 행보를 한다 (중풍의 여파로 한쪽 다리를 끌며 다닌다고 한다). 과거의 그의 삶을 목격했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사람들에게 그의 삶은 복음이다. 그의 삶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흠씬 발하는 아름다운 삶이다.

이곳의 이야기는 교회 혹은 크리스쳔 잡지에 나온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그랜드 래피드에서 발행하는 뉴스중 한 이야기이다. 그의 얼굴이 인터넷 신문에 실려서 이곳에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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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4 14:20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이곳의 글은 1994년 3월 12일자 World라는 미국 기독교계 잡지에 실린 글로 칼빈신학대학원의 선교학 교수이신 Roger Greenway의 선교 간증문이다. 본 글은 또한 칼빈신학대학원 주간지 Kerux에서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것"으로 소개된것을 번역한 것이다. 나는 이곳에 소개된 이야기를 지난 여름 조장코스타 예배시 설교의 예화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누구도 할 수 있는 이 같은 일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실천되어지기를 소망한다. 그같은 그리스도의 향기는 복음의 귀한 능력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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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인도에서Operation Mobilization이란 선교단체의 일원으로 사역하던 중 나는 결핵을 앓아서 결핵병동에 수개월간 입원 하였었다. 그 당시 나는 전도지를 환자, 의사, 간호사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저분한 시립병동에 나 같은 부유한 미국인이 입원한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모든 미국인은 부자로 보였다.) 그들은 OM 단체와 함께 일하는 나도 그들처럼 상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병들었다는 것,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 언어 장벽으로 인하여 예수를 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전도지나 요한복음 책자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하여 나는 몹시 낙심되어 있었다. 첫 몇 일 동안 나는 심한 기침으로 인해 새벽 2시경에 깨어나게 되었다. 어느날 아침 평소와 같이 기침약을 먹으러 일어났을 때, 맞은 편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나이가 많고 몹시 약해 보이는 한 노인환자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의 침대 가장자리로 옮겨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연약하여진 건강으로 인하여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나는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는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침대에 누웠다. 그때 나는 그가 조용히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가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단지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려 하였었다. 그러나 그의 병약한 몸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그의 침대에 볼 일을 보았던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 우리 병동은 난리가 났다. 대부분의 다른 환자들은 그 냄새로 인하여 그 노인에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간호원들도 뒷처리를 하여야 했기 때문에 몹시 화를 냈다. 그들은 청소를 하기 위하여 그 노인을 이쪽 저쪽으로 밀쳐댔다. 한 간호원은 분을 못이겨 그 노인을 한대 쳤다. 그 노인은 견딜 수 없는 수치감에 몸을 공처럼 말고서는 흐느꼈다.

 

그 다음날 밤 역시 새벽 2시경에 나는 기침으로 인하여 눈을 떴다. 나는 그 노인이 다시 화장실을 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힘이 부족하여 그 전날처럼 뒤로 쓰러졌다. 나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다. 더러운 악취를 싫어한다. 그러한 일에 휩쓸리기를 싫어한다. 나 역시 환자였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었으나 내가 다가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몸을 숙여 그의 어깨를 만졌을 때, 그의 눈은 두려움에 젖은 의아스런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단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머리와 목 밑으로 한 손을 넣고 그의 다리 밑으로 다른 손을 넣어 그를 안아 들었다.

 

비록 나는 병들고 약했지만 그 노인보다는 건강했다. 그는 나의 많고 결핵이 깊어 몹시 가벼웠다. 나는 복도를 걸어서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은 몹시 냄새가 나고 더러우며 조그만 방에 단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나는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부축하여 그가 일을 볼 수 있게 했다. 그가 일을 마쳤을 때 나는 그를 다시 안고 그의 침대에 가 뉘었다. 내가 그를 침대에 내려놓을 때 그는 나의 뺨에 키스를 하고 웃음을 보이며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여겨지는 어떤 말을 건네왔다.

 

그 다음날 일어난 일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가 알지 못하였던 한 환자는 새벽 4시경에 향이 그윽한 따뜻한 인도차를 손에 들고 나를 깨웠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손짓을 하며 전도지를 원한다고 했다. 해가 떴을 때는 다른 환자들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그들도 전도지를 나눠 달라고 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은 쪽복음과 전도지를 구하러 왔다. 간호원들, 병원 수련의들, 의사들, 마침내 그 병원의 모든 사람이 전도지, 쪽복음 혹은 요한복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다음 며칠간 몇 사람들은 그들이 복음을 읽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었다고 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였는가? 분명 건강이 아니었다. 지적으로 감동적인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건강과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으로 그들이 복음에 그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셨는가? 나는 단순히 한 노인을 화장실로 데려간 것뿐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진은 Google Image Search (http://images.google.com/)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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