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0.04.27 사랑 때문에
  2. 2010.01.28 We are What We Love (Smith)
  3. 2009.09.02 준석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6)
  4. 2009.07.22 온라인 무료 영화 한편 (감동 가득): "Play it Forward"
  5. 2009.06.17 사랑해보지 않을래? (1)
  6. 2009.06.10 브라이언과의 씨름 (2)
  7. 2009.05.29 새벽을 깨우리로다
  8. 2009.01.20 영어로 고생하는 흩어진 나그네들이여
  9. 2008.11.30 추수감사 브레크를 마감하며
  10. 2008.11.14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2010.04.27 21:05

사랑 때문에

아!
사랑 때문에
어느 곳에도 갈 수 있어

아!
사랑 때문에
어느 모양이라도 될 수 있어

정미향 사모 (필암교회)의 "부활의 이유" 중에서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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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8 14:59

We are What We Love (Smith)

James Smith의 Desiring the Kingdom을 읽고 있다가 다음의 표현과 마주 쳤다: "We are what we love."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무엇을 진정 사랑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가 되어 진다는 의미이다. 돈을 사랑하는 이는 그가 돈과 같은 존재이고, 마약을 사랑하는 이는 마약과 같은 존재 이다. 술을 사랑하는 이는 술... 섹스는 섹스... 그렇다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 하면 여자가 되나? (마지막 표현을 쓸때 내 입가에 장난스런 웃음이 있었다).

나는 진정 무엇을 사랑하는가? 정답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것인데, 내 중심에서 정말 하나님을 깊숙히, 인격적으로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입술로만, 머리로만 그렇게 한다고 하면,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쉽게 아시겠지. 사랑하는 대상이 있으면 그것에 마음이 온통 빼앗기기 마련이다. 혹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 가고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음... 저... 그런 적도 있었어요"라고 과거형으로 대답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생각하면 빈 마음도 꽉 채워 지고, 슬픈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하고, 좌절되었던 마음은 소망으로 충만하며, 미움은 사랑으로 변하는것 잘 아시지요?"라고 현재형으로 대답하기를 바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막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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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2 21:36

준석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오늘 새벽 2시 30분 준석이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 나도 몰래, 말없이... 늘 그러듯 "교수님, 먼저 갈께요!"라는 인사도 없이 떠났다. 괘씸한 녀석! 녀석이 나보다 먼저 천국 갔기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인사도 안하고 가는 녀석이 어디 있어. 천국에서 만나면 혼내준다고 속으로 되뇌이며 한없이 울었다. 천국서 만나면 허그 (Hug) 하기전 굴밤부터 한방 먹여줄거다. 이 버릇없는 준석이를 생각하다가 바로 정란자매에게 전화 했다. 어제도 오늘도 수없이 전화 했지만 첫번째 통화 되었을때는 함께 말없이 울기만 했다. "정란자매, 그냥 같이 울자!" 오열하듯 울어 대는 정란 자매와 전화 통화하면서 나는 길에서 그렇게 울고 있었다. 준석이가 너무 그리웠다. 옆에 손을 잡아 주지 못해 미안하였다. 

준석이를 만난 것이 벌써 2년도 넘었다. 한국에서 내가 아주 잘 아는 어느 교수님의 아들과 함께 인디애나대학으로 유학 온다고 하여 사실 그 교수님 아들을 공항으로 라이드 갔다가 함께 동행하고 있던 준석이를 만난것이었다. 유난이 몸이 커 보였지먄, 인상이 아주 착한 곰 같이 생겼다. 팬더 곰 같이 귀엽기도 하였다. 두 학생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약 이틀 정도를 함께지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던차에 준석이가 예수님을 믿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알려주려고 입을 열자 거의 방어적으로 "내게는 복음 전할 생각초차도 마십시오!"라는 녀석의 허풍에 어깨 두드려 주며 "너는 곧 예수 믿게 될거야!"라고 되 받아 답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 보았고, 하다 못해 유학생 신분의 청화대경호실 출신의 공무원도 만나 복음을 전했지만 준석이처럼 딱딱한 마음으로 대하는 이도 드물었다. 그러나 준석이는 드물게 착했다. 공손하였다. 모든것이 깔끔하였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달리 태도를 취하는 아이였다.

그러던 준석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시작하여 교회도 나가고, 같은 교회의 어느 집사님과, 그리고 나의 미국인 친구 Darwin과 성경공부도 하며 이 아이는 그리스도인으로 되어져 가고 있었다. 보통 열심이 아니면 나가기 어려운 목요모임에도 나왔다. 앞에서 말씀을 전할때면 준석이의 눈에서 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만져가심을 자주 확인하곤 했다. 사무실에서나, 복도에서나, 혹 캠퍼스 어느곳에서 만나든 함께 이야기 할땐 준석이는 예외없이 운다. "준석아, 내가 너 때렸냐?"라고 물으면, "그냥 교수님보면 눈물 나요. 나도 모르겠어요!" 그말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아내가 가게 할때 조그만 도움이 필요하여 부탁하면 두팔 걷어 올리고 굵은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도왔던 준석이다. 가게를 띁어서 모든 가구와 기구들을 미시간에 가져 올때 돈을 주고 일을 시킨적 있다. 돈을 줄 별다른 이유가 없어서 준석이를 고용하였다. 그냥 일을 부탁하면 돈을 안받으니까 고용해 버린것이다. 준석이는 무섭게 일한다. 남의 일도 자기일 같이 한다. 아내와 나, 그리고 나의 큰 아들 상민은 그냥 놀라기만 하였다. 정성껏, 몸을 아끼지 않고, 땀을 흘리며, 즐겁게, 그리고 정열을 가지고 일한다. 

공부도 그렇게 정열적으로 하였다. 참으로 열심히 도서관을 드나 들며 공부하는 성실한 학도였다. 그러나 준석이는 자신의 이기적 성공만을 추구하려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학도가 아니였다. 내 눈에 보인 준석이는 아주 진지한 크리스쳔 학도 였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준석이의 고민은 자신의 학문과 신앙을 통합하는 문제였다. 미시건에 있는 내게 여러번 전화도 하였고, 또 집으로 방문하여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으며 준석이는 크리스쳔 학도의 진지한 면모를 내게 보여주었다. 아래의 글은 지난해 9월 14일 준석이가 내게 보낸 미멜중 하나이다. 
... 앞부분 생략...  대학에서도 관광개발을 전공하였고 이곳 인디애나에서도 역시 Toruism Management 공부하고 있습니다만학업의 관심분야를 이제서야 조금씩 찾아가는듯 합니다관광이라는것이 관광객과 관광자원그리고  둘을 연결해 주는 제반 모든 요소들을 다루고 있지만저의 관심분야는관광자원입니다자원의 경제적문화적사회적 임펙트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그러다 보니자연스레 지속가능한 관광 (sustainable tourism), 대안관광(eco-tourism, green tourism, rural tourism...), 자원의 경제적 가치   문화적사회적 영향 평가관광객의 태도  그에 따른 관광지의 선택자원해설(interpretation) 영향 등이 주된 관심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교수님! 코스타를 전후로 해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 다시 말해 기독교인으로서 저의 학업의 목적과 여정을 어디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구세주로 믿기전에는 미국에서의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좋은 학자가 되는 것이 그저 저의 목적이었는데요, 지금은 제가 살아서 숨쉬는 것도, 또한 이곳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주신 학업의 기회이기에 설사 제가 박사 진학에 다시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저 저의 부족함을 돌아볼 개인적인 자조나 타인에 대한 원망은 없기를 소망합니다.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혹시라도 박사과정에 진학한다면 주님께서 제게 바라시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크리스챤 Scholar로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있는 학문을 하고싶습니다. 요새 Leisure and Aging이란 과목을 들으며 한국인 이민 노인들의 여가 만족도와 social support 대한 페이퍼를 쓰고 있는데요예전에는 전혀 관심밖이었 leisure recreation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minority, ethnicity, and nationality, 사회적 약자 (노인, 장애인, 경제적 소외계층 )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만솔직히 제가 이제껏 가지고 있었던 관심분야들은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관광자원분야와 행복, 다소 쌩뚱맞은 ...어쩌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어떻게 연관지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소그룹에서 뵙게된 노령의 권사님 내외분을 보면서 점점 제가 해야 공부가,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주제의 페이퍼을 쓰면서, 이러한 생각 중에 권사님 내외분을 만나게 되었는지 그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교수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경제학을 위시한 모든 학문이 어떻게 파이를 크게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하는가에 촛점을 맞춘, 오로지 일만을 생각하는 음울한(dismal) 학문이라면, 관광학이라는 학문은 일이 아닌 여가에 바탕을 두고 어떻게 사람들을 놀게, 쉬게 만들어 있는가를 연구하는 행복한 학문이라고 합니다..굳이 leisure recreation 아니더라도, 제가 이제까지 공부했던 관광이라는 학문과 지식을 통하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있지 않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만 정작 배운 지식이란 것이 너무도 얇아 깊은 생각에 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다만, 관광을 통해서 사람들을 성장, 성숙시키고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들 있지않을까 하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만 도달했을 뿐입니다평생의 연구주제를 행복으로 삼고자하는 석사생을 과연 어느 누가 받아 줄지 불안함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행복한 확신도 오래간만인듯 합니다..^^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 뒷부분 생략...
그뒤 준석이의 생각은 많이 발전하여 크리스쳔 학도로 박사과정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막연하나마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듣는 나로서도 그 그림이 많은 생각, 고민 및 기도가 있었음을 눈치챌만치 잘 그려져 가고 있었다. 학자로서 자신의 성공보다 자신의 공부로 이 세상을 섬기고 싶은 그의 뜨거움을 대화때마다 감지 할 수 있었다. 

석사학위를 마쳐가면서 박사과정 진학에 어려움이 정말 많았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박사과정을 추진하는 준석이를 위해 쓴 추천서가 제법 된다. 낙방의 소식이 계속적으로 날라왔지만 우리는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기다렸다. 그리고 돈이 없어 박사과정을 경제적으로 어떻게 버틸까 심각히 고민되어 장학금을 위해 또한 함께 기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미시간에 와 있었기에 우리들은 의례히 전화로 기도 하곤 했다. 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드디어 Texas A & M (준석이가 하던 전공 분야에서는 제일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으로 부터 입학허가서가 왔다고 전화를 받았다. 함께 기뻐하며 전화로 아우성치며 축하한적도 있었다. 그런데 조금후 장학금까지 받았다고 말을 하여 함께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하였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준석이가 바로 엇그제 같다. 

텍사스로 이사 가기전 코스타에도 참석하여 많은 코스탄들 앞에서 자신의 간증을 진솔하게 한적이 있었다. 간증이 있기 하루 전날 저녁, 집회가 있던 휘튼대학의 Alumni Gym에서 함께 손을 붙들고 기도 하였다. "하나님, 준석이가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드러내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는 간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라고.. 많은 간증들이 혹 하나님 보다 자신을 높이는 자기자랑이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 였다. 다음날 준석이는 강단에 섰고,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된채 하나님을 높이는 간증을 하였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 냈다. 얼마나 감사하였던지. 그리고 준석이의 간증은 많은 코스탄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이토록 준석이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일에 용감하다. 그리고 하나님 믿은지 얼마 되지 않는데도 하나님 높이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래서 그 간증을 들으며 녀석 보다 내가 먼저 울었고 기뻤다. 왜냐하면, 나는 준석이가 유별나게 선하고 좋은 아이라서 하나님을 그렇게 높인것이 아님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어려움 뒤에 늘 함께 계셨던 하나님, 그리스도를 주저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준석이로 하여금 하나님을 그토록 높이는 것임을 가까이 있었던 나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기쁨으로 본인이 가고 싶었던 대학으로 얼마되지 않은 짐을 싫은 트럭을 몰고 가며 전화 하였다. "교수님, 저 지금 칼리지 스테이션을 향해 가고 있어요! 가면 또 전화 할께요!"라고 말하던 준석이의 목소리가 바로 어제 그제 같다. 떠나면서도 자신의 아픔 보다 내 관절염의 아픔을 더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던 준석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 이지만 건강보험이 없어서 머리가 아픈데도 꾹 참고 보험 살때 까지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험이 시작되는 그제 병원에를 찾아 갔었고, 준석이는 그 다음날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나 흐르는 피를 막을 수 없었던 의사는 절망을 선언하였고, 가족들이 산소호흡기를 뺄것을 제안하였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준석이는 새벽 2시 반에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 

준석이가 주님의 곁으로 가기전 늦은밤까지 기도 하면서 우리들이 나누었던 지난날의 많은 대화들을 기억하였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손으로 눈물을 훔치던 모습, 울먹거리며 나의 건강을 묻던 그 입술, 웃을때는 유난히 밝았던 눈가의 눈 웃음... 그리고 준석이가 전에 내게 보냈던 이멜도 다시 열어 보며 형제를 그리워해 보았다. 
교수님!  참 보고 싶습니다... 잘지내시는지...안부를 묻는 인사보다 보고싶다는 말이 먼저 나오게 되네요...^^ ... 준형이 형을 통해서 교수님 가정의 평안함을 들으면서 제가 왜그리 기쁜던지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성정에 앞으로 얼마나 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실지 짐작은 합니다만, 건강 유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교수님을 뵈면 주책없이 눈물을 훔치고는 했는데요,,, 요새는 교수님 생각에 짠~~ 하고는 합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던 교수님 손이 참 따뜻했었는데요.. 
텍사스 갈때처럼 "교수님, 나 지금 천국 가요! 가서 전화 할께요!"라고 하면 안되었나? 나쁜 녀석! 네 손을 잡고 밤새 기도 하고 싶구나. 너를 이땅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너무 크지만, 너를 그 누구 보다 더 사랑하는 주님께서 계신 그곳에 갔으니 오히려 네가 부럽다. 준석아, 돌아 보니까 네게 사랑의 빚을 너무 많이 진것 같구나. 준석아, 네게 사랑의 빛을 진 많은 이들가운데 회개의 운동이 일어 나고 있다.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함이다. 네가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갔던것을 알지 못했던 나였고, 또 이웃이었기에 과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진실이었는가를 되묻게 되는구나. 네 아픔을 감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다오. 뿐만 아니다. 우리들은 영혼구원을 뒷전에 쳐박아 둔것을 통회하며 무릎꿇고 있다. 네 삶이 구원의 기쁨으로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산 삶이 었기게 우리에게 더욱 큰 도전이었다. 우리들이 더 영혼을 사랑하며 너 처럼 구원의 기쁨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도록 우리들이 주안에서 애를 쓰마. 준석아, 잘 가거라.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자. See you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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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13:01

온라인 무료 영화 한편 (감동 가득): "Play it Forward"

긴 여름 방학에 한편의 영화를 추천한다. 물론 경기가 나쁜 요즘 유학생들의 경제 사정도 좋지 않을 터이니 무료 영화를 소개 한다. 강추다. 

이 소년들의 사랑이 영화를 관람하는 모든이를 감동 시켰다. 그 사랑은 근원은 어디일까? 내 버젼의 Play It Forward는 무엇일까? 관람하면서 생각해 보고, 또 기도하기 바란다.

즐감 바람!


Synopsis:

Darius Weems, a fifteen-year-old with Duchenne Muscular Dystrophy, leaves his hometown of Athens, GA for the first time in his life. Crammed in to a beat-up RV, Darius and his eleven best friends set a course for California and a goal to get the "largest wheelchair ever made" customized on MTV's hit show, Pimp My Ride. These free-wheeling-friends-turned-filmmakers unknowingly leave a nation-wide grassroots movement in their 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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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5:38

사랑해보지 않을래?

나의 힘으로는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 때문에 사랑 하게 된적이 있다. 지금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보고 있다. 내가 기적을 일으킨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말씀이 기적을 시작하였고, 그 말씀이 나의 순종을 통해 구체화 된것 뿐이다.

그 기적은 오래전 사랑이야기다. 당시 나는 어느 주립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그곳에 부임하던 첫해에 같은 전공을 지도하던 어느 여자교수가 정년 (tenure)을 받지 못하고 떠나는 사건이 생겼다. 워낙 성실했던 동료였는데 나는 제법 놀랐다. 나중에 누가 귀뜸해주기를 그 교수는 연구 실적이 많이 부족해서 테뉴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여하간 나는 졸지에 동료를 그렇게 잃어 버린셈 되었다. 

결국 후임을 뽑아야 하였고, 시간이 부족했던 관계로 급속한 속도로 청빙위원회가 구성되어 교수를 뽑기로 하였다. 제한된 시간속에 광고 되었으니 제한된 숫자의 응모가 있었다. 그러나 적은수의 응모자 중에서 청빙위원회는 어떤 두 applicants를 학과장에게 추천했다. 그러나 학과장은 청빙위원회의 추천을 무시한채 어느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던 응모자와, 청빙위원이 추천한 두명과 함께 초대하여 인터뷰를 진행 시켰다. 물론 청빙위원의 추천에 속하지 않았던 세번째 그 여교수를 모두 기뻐하지 않았다. 결국 학과장은 세번째 여교수에게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하였다. 이유인즉은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채용된 여자 교수의 이름은 티나 (가명) 였다. 나와 티나는 그렇게 만났다. 키도 나보다 훨씬 크고, 금발머리였고, 목소리는 우렁차고 공격적이었다. 표정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고, 자기 주장이 몹시 강한 사람 같았다. 교수회의에서는 유독 자기 생각을 분명히 나타내기도 했고, 어떨때는 심각히 따지기도 하는등 다른 교수로 부터 적개심도 유발할 정도였다. 강의실에서도 여전하여 학생들로 부터 환영 받지 못하고, 여러 학생들이 강의를 더 들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티나의 시작은 많은 잡음을 내고 있었다. 

티나가 나보다 대학에 더 오래 있었던 이유로 인해 그녀는 나의 전공분야에 코디를 맡게 되었다. 둘이서의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나의 의견을 수렴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그냥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동료 교수들도 힘들어 하였고, 학생들과 나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전공이라 티나를 advisor로 둔 학생 30여명은 티나를 찾기 보다 나를 찾음으로 나의 생활은 더 바빠 졌다. 티나로 부터 받은 어려움과 부당한 대우를 호소하는 학생들을 매번 상담해야 하였다. 나또한 티나로 인해 어려웠음으로 나도 상담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새벽 기도때 나는 하나님께 강하게 호소 하였다. "나를 그곳 대학에서 떠나게 하던지 티나를 떠나게 하던지 주님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하나님께 대들기도 했다. 몇달을 기도했지만 티나도 그곳 주립대학에 있었고, 나도 그대학에 있었다. 무너지기를 갈망했던 나의 여리고성은 무너지지 않고 그냥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죽을 맛이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의 어려움은 더 어려워져 갈 뿐 호전의 기미는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말씀을 읽는데 "티나를 사랑할 수 없겠는냐?"라는 세미한 내적 음성이 들리는듯 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이 나로 하여금 티나가 내 이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를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동의 하는 움직임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강하게 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즉시 뿌리 쳤다. 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내 학생들은 사랑할 수 있지만 티나는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좌우로 저의며 강하게 부정했다. 결국 그날의 기도는 중간에서 멈추고 교회를 뛰쳐 나왔다.

문제는 그 뒤에 또 생겼다. 매번 새벽 기도시 읽는 본문 말씀중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로 하여금 티나만 생각나게 만들었다. 나는 괴로 웠고, 또 부정하며 교회를 나왔다. 세번째에 똑같은일이 반복해서 생기자 나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위해서도 나는 더 이상 도망다닐 수 없었다. "주님, 싫지만 순종하겠습니다!"

그날은 순교할 각오로 학교에 출근했다. 아침 부터 가슴이 쿵쾅거리며 견딜 수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티나의 방을 노크하였다. 티나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랬지만 불행히 그녀는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노크를 했기에 문은 열렸고, 문을 열어 주었기에 나는 들어가 앉아야 했다. 나는 몹시 경직 되어 있었다. 평소 만날때도 경직 되었는데, 그날 사랑을 고백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내 얼굴을 응시 하는 것이었다. 사랑을 고백해야 하니 우선 사무실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래서 문을 닫아도 되겠냐고 경직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이지"라는 대답과 함께 문을 닫았지만 긴장 떄문에 좀 세게 닫은것 같다. 화난 동양 녀석이 인상쓰고 아침 부터 들어와 문을 쾅 닫았으니 티나의 표정도 긴장으로 가득해 보였다. 

말을 하자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사랑한다고 말은 해야 하는데 정말 당황 되었다. 차라리 화장실에서 거울 보며 연습이라도 할것을 그냥 들어온것 같아 후회 막심이었다. 그같은 많은 생각으로 인해 나는 입을 열지 못하고 그냥 티나의 얼굴만 긴장하여 째려 보았고, 그런 나를 티나 또한 노려 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주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떠듬거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것 같다. "나는 크리스쳔이라 매일 아침마다 기도 하고 있다. 너하고 불편해서 계속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것 같았다. 그래서 사랑한다라고 말하러 왔다. 내 하나님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 

고등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마치고 놀고 있는 자녀 하나를 더 둔 이혼한 티나 앞에서 이같이 말을 했으니 이제 과격한 티나가 어떻게 나올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었다. 그 말을 내 뱉어 버리자, 이번에는 티나가 나를 노려 보았다. 처음보다 얼굴이 더 긴장되어 보였다. 쥐 구멍이 있으면 들어 가고 싶었다. 꼭 이렇게 해야 예수 믿는 것일까? 주립대학에서 하나님 이야기에다가, 남자 교수가 이혼한 여자 교수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니 결과는 어떨까? 그동안 나로 인해 자신의 마음도 몹시 상해서 꼬투리를 잡고 싶었을터인데 내가 하나님때문에 고스란이 당했다고 생각했다. 

등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괴로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티나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었다. 나는 "이제 하고 싶은 말 했으니 난 자리를 뜨겠다"라는 말을 남기도 그 자리를 도망쳐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티나의 눈이 젖기 시작했다. 그리고 표정이 풀려 감을 목격했다. 젖은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맙다, 영길아!" 라고 말하며 계속 울고 있었다. 우리는 말이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티나는 울고, 나는 어찌할줄 모르는데 어색하게 앉아 있었고. 

티나는 입을 열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25년전에 만나서 결혼했고 아이도 둘 있는데 남편을 떠나야 했었다. 남편으로 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살고 있었고, 부부 관계는 너무 어려웠다고 고백하였다. 아이를 하나씩 나누어 헤어지자고 하여서, 남편은 큰아이를 데리고 살고, 자기는 둘째 아이와 살고 있다고 하엿다. 그때의 상처가 너무 컷다고 한다. 남편이 너무 싫었고, 큰 아이는 너무 보고 싶었고... 이후 우울증이 자신을 다스리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삶은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같은 사람을 누가 사랑한다고 하여 믿기 어려울 만치 기쁘다고 한다. 전에 남편이 프로포즈할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한적이 있을뿐 아무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아침을 그렇게 보내고, 각자 강의 하러 가야 했기에 우선 헤어졌다. 

나를 위해 중보하던 아내에게 오전에 티나와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저녁 아내가 빨간색 장미꼿 24송이 (two dozens)를 사들고 티나네 집을 찾아 갔다. 문을 열어 주던 티나는 24송이 빨간색 장미를 받고 또 울더라는 것이다. 남편이 프로 포즈 하며 사랑한다고 할때도 빨간색 장미 24송이 였다고 한다. 아내는 그날 어느 가게에서 장미꽃을 대폭 세일을 하기에 two dozens를 산것일 뿐인데... 아내를 꼭 껴안으면서 고맙다라는 말을 연실하며 흐느끼는 티나를 뒤로 하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우리 부부는 티나의 집을 또 방문하였고, 서로의 삶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 부부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 대학때 철없이 어느 남자를 만나서 관계를 갖고 딸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수 없어서 입양기관에 넘겨준 아픈 사건으로 자신의 삶은 죄의식과 아픔으로 힘들었다는 이야기 부터 시작하여 많은 삶의 이야기를 큰 보따리를 풀듯 털어 내었다. 울고, 웃고, 또 울고... 우리는 이렇게 친구가 되었다. 주말에는 우리 두 아이를 돌보아 줄테니 영화를 보던 데이트를 하던 놀다오라고 하여 아이들도 몇번 맡아 주었다. 우리아이들에게 책도 읽어 주고 샌드위치에 꿀 발라 먹는 것도 가르쳐 주며 아이들을 아주 잘 돌보아 주었다. 

티나는 편집을 아주 잘하는 은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글을 써서 좋은 저널에 논문도 몇편 내기도 했다. 수년 동안 출판한 논문이 한편도 없었던 티나는 나와 글을 쓰면서 몹시 의욕에 차 있었다. 워낙 글을 잘 다음어 주어서, 나의 글이 티나의 손에 들어가면 아주 깔끔해 지는것을 보며 많이 놀랐다. 물론 나는 그것을 거침없이 표현했고, 티나는 그같은 나의 피드백과 저널 편집장으로 부터의 칭찬으로 글쓰는 일에 매우 의욕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티나로 인해 학생들의 불평도 적어져 가고 있었다. 동료 교수들도 전과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강의 평가가 여전히 나쁨으로 인해 티나를 내어 쫓느냐 아니면 기회를 주느냐 토론하며 각각의 교수들을 학과장이 만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티나를 내보내는것에 동의했지만, 나는 티나가 처음과 달리 아주 잘 하고 있음을 여러 근거를 사용하여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동안 둘이서 1년간 출판한 논문 세편은 학과 교수 15명이 쓴 논문 숫자의 합한것과 같았다. 결국 학교는 티나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즈음에 나는 다른 어느 주립대학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래서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 오퍼 받은 대학은 티나가 전에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이라 아주 기뻐 하였다. 물론 섭섭함으로 실망도 하였지만... 그곳에 집을 팔지 못한채 새로 이사갈 곳에 집을 사야 하였기에 금전적으로 아주 어려웠다. 사고 싶었던 집은 방이여섯개라서 학생들이 편안히 와서 쉬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2-3분 걸어가면 공원도 있어서 청년들에게 너무 좋을것 같아 꼭 사고 싶었다. 그러나 그집에 누가 조건부 오퍼를 이미 넣은 상태이었다. 오퍼를 넣은 사람은 자신의 집을 팔면 그 돈과 융자금으로 사는 것을 조건으로 하였기에 우리가 은행의 융자를 얻을 수 있으면 그 오퍼를 제끼고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은행에서 융자가 나왔지만 약속된 수일내 까지 현금 $5,000이 있어야 부동산 (집) 구입이 체결 (closing)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해도 $5,000이 나올길이 없었다. 

티나는 아내와의 교제 속에 우리의 이같은 실정을 들었던 모양이다. 이사를 앞두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학교 사무실에서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짐을 싸고 있었다. 한참 짐을 싸는데 티나가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된체 내 사무실을 급히 들어섰다. 4층에서 부터 더운날 걸어 왔으니 더웠을 것이다. 그런데 씩씩 거리는것 보니까 뛰어 온것 같았다. 반가워서 웃으면서 자리에 앉으라고 했더니 두툼한 두 주머니에서 쌍권총을 빼듯이 현금을 빼어 드는 것이다. "내 부모로 부터 거저 받은 돈이니 나도 네게 거저 주는 돈이다. 몇일 후 집 closing할때 사용해라! 갚을 생각 안해도 된다. 내가 너희 집 방문 하며 그냥 공짜로 잠만 재워주면 된다!" 그렇게 말하고는 사무실을 빠져 나가 버렸다. 

결국 새로운 곳에 집을 샀다. 그리고 먼저 집은 한달 후 팔 수 있었다. 덕분에 $5,000을 티나에게 되돌려 줄 수 있었다. 근사한 선물과 더불어. 새로운 곳에 이사간 이후 어느날 집 고칠때 사용하는 도구가 100개가 있는 파란색 도구박스 (Tool Box)를 문앞에서 발견했다. 티나가 5시간 운전해서 새로산 집 문앞에 도구박스를 두고 간것이다. 집고칠때 필요로 할것 같고, 네 집에는 그같은 도구박스가 없는듯 하여 네 집에 놓고 간다. 잘 사용하도록 해라!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주님때문에 억지로 사랑한다고 말한것 뿐인데, 너는 네 마음을 다 주고, 돈도 주고, 툴 박스도 주고... 

이 기적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조그만 순종으로 경험한 이 사건은 내게 하나님의 크심을 늘 상기 시킨다. 우리에게 사랑하라 하신다. 그 이웃이 내게 어려움과 해를 끼치는 사람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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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3:26

브라이언과의 씨름

브라이언 (가명)은 지난 봄학기때 내 수업을 듣던 학생이다. 수업이 월요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여 9시 30분에 끝나는 긴 수업이다. 브라이언은 늘 가장 뒷자리 앉아서 혼자 수업 듣던 아이 이다. 강의 초기에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앉았었다. 긴 저녁 강의에 실증을 느꼈던지 조그만 테니스 공을 책상위에 다른 학생에게 굴려 보내며 장난 치다가 나와 "접촉사고"를 이르킨적 있다. 나는 강의를 하며 여러번 눈과 표정으로 브라이언에게 사인을 주었지만 내 눈을 계속 응시 하며 지속적으로 장난을 치기에 수업 마치고 그 주변의 세 아이들을 다 불러 이야기를 나눈적 있다. 그뒤로 주변의 세 아이들은 제안 하지도 않았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토론에도 참석하고 강의에 주시하며 나를 기쁘게 했다.

그 사건 이후 수업중 그 세아이들이 브라이언과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다. 결국 브라이언은 맨 뒷자리를 그냥 홀로 지키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던 브라이언이 무단 결석을 두번 하게 되었고, 나는 두번 다 이멜을 통해 혹 내가 기도해 줄것이 있는지를 물어 보며 이 아이를 섬기고 있었다. 첫 시험은 예상대로 F를 맞았다. 인디애나 대학에 있을때 유명했던 운동 선수들에게 특별 대우 해주지 않고 몇명에게 F준적이 있어서 그들의 팬을 실망 시키적이 많았던 나는 운동선수 이기도 했던 브라이언을 그렇게 공평히 대우했다. 그것이 쇼크 였는지 그 뒤로 이 아이의 수업태도가 달라졌다. 덕분에 두번째 시험에서는 B-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것 같다. 칭찬을 해 주었더니 매우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하며, 자기 스스로도 놀랐다고 고백하였다.

이 수업은 장애를 가진 이와 장애가 없는이들을 통합시키는 내용을 다루는 강좌 이었음으로 학생들은 자기 나이 또래의 장애를 가진 (대부분 intellectual disability/mental retardation, autism, cerebral palsy, etc)아이들고 짝을 지워 주고 일 주일에 두시간씩 서로의 삶을 나누는 Service-Learning Project를 도입해서 실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날때 마다 특정 포멧에 맞추어 자신의 체험 뿐 아니라 새로운 발견에 관한 저널을 쓰는 과제를 주었다. 물론 이 과제를 통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장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곤 했다. 

브라이언은 중중 뇌성마미를 가지고 있는 캐빈이라는 아이와 짝을 지워 주었다. 학기말에 내야 하는 저널이 평가에 귀중한 역할을 하지만 혹 중간 중간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수업시간 Service-Learning Project에대해 학생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당시 브라이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수상히 여겨 이 아이와 개인 면담을 해야 했음에도 나는 그냥 믿고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학기말에 제출하는 저널을 읽고 놀라 버렸다. 장애를 가진 캐빈이라는 아이는 1년중 1회만 칼빈대학에서 매일 행해지는 채플에 참여 하는데, 브라이언은 캐빈과 채플을 여러번 갔다고 적고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도 여러번 가서 식사할 뿐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좋은 활동들을 아주 조밀하게 적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멜을 보냈다:
As I was reading your journals related to the service learning with Ready for Life, I realized that you went to Chapel numerous times with Kevin. As far as I know, Kevin only goes to chapel one time a year (He has other activities at Calvin campus). Please explain your time with Kevin to me. Thanks.
내 생각으로는 브라이언이 없었던것을 마치 있었던 것으로 조작한 저널이었을 것이라는 강력한 추론이 있었다. 답장이 오지 않아서 이 아이의 학점을 우선 "I" (Incomplete)로 처리했다. 분명 성적을 온라인을 통해 확인해 보았을텐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몇주가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이미 학사경고를 받고 있던 터이라 학교에서는 왜 브라이언이 Incomplete를 받았는지 물어 오고 있었다. 

저널을 조작했다고 내 나름대로 추측했기에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있는그대로 인정할뿐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 하였다고 스스로 고백할 수 있는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새벽기도때 마다 잊지 않으려고 기도 노우트에 그같은 기도제목을 적어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내게는 딜레마가 있었다. 그냥 F를 성적 처리하거나, 부정행위로 학교에 보고하여 처벌을 받게 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가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자신의 부정행위를 통해 아 아이가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했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주님께 고백함으로 "미쁘시고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혜를 통해 앞으로의 삶에서 속임수 보다는 정직으로 맞서 싸우는 브라이언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바로 엊 그제 브라이언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낮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자신이 저널을 조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범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댓가를 무엇이든 받겠다고 했다.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기뻐서, 큰 감격으로... 내가 나의 죄를 주님께 고백했을때 주님께서는 내가 당시 느꼈던것 같이 기쁘하시고 감격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울먹이는 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잘 고백했다고 말하고, "너의 잘못된 행위를 네 등 뒤로 던져 버리겠다"고 했다. 브라이언은 진심으로 고마워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용서를 하지만 자신이 저질은 잘못에 실제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장애를 가진 다른 이와 더불어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내어 그들을 섬기고, 저널을 다시 쓰라고 했다. 브라이언은 그 댓가를 기쁘게 지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이 기쁜날은 하나님을 더욱 더 생각하게 된다. 나 같이 연약하고 악한 죄성을 가진 자에게 귀한 청년들을 맞겨 주신 하나님이 너무 미쁘셔서 감사를 드리게 된다. 브라이언을 통해, 하나님은 내게 기도를 가르치셨고, 회개의 의미를 가르치셨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귀회를 주셨다. 내가 교수로 청년들을 섬길 수 있고, 이들의 발을 씻길 수 있는 귀한 사역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싶다. 

이 사진은 학기말에 학생들과 장애를 가진 그들 파트너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 
불고기 구어 먹으며 친교를 나눌때 학생 하나와 장애를 가진 파트너가 팔씨름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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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9 17:08

새벽을 깨우리로다

지난 몇 주간 (약 한달 정도가 된것 같다) 종하 (가명) 형제와 좋은 교제를 나누었다. 종하는 칼빈대학교 2학년으로 아들 상민이와 동갑 나이다. 종하를 처음 만난곳은 칼빈신학교와 칼빈대학 사이에 있는 "Sem Pond"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그때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 호수는 얼어 있었다. 거기서 형제는 혼자 찬양을 연습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워 조용히 시선을 피했던 아이였다.

이 아이를 다시 만난것은 어느 수련회에서 였다. 그 아이가 거기 있으리라 상상은 못했지만 그날 강사로 설교 하러 강단에 섰는데 종하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날 주제는 "Strangers in the World"로서 "Trans-Culture Kids" (일명 TCK로 불리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Missionary Kids, MK 라고 부르기도 하는)를 주요 대상으로 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나느네로 부르신 목적을 함께 묵상하는 내용이었다. 종하의 부모님은 현재 중국에서 선교사로 계시고, 종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부모님을 따라 중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칼빈대학으로 온것이었다.

수련회를 마친이후 며칠이 지났는데 학생들로 부터 종하가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놀라서 헨리 나우웬의 책 한권을 사서 병원으로 병문안 갔었고, 그곳에서 약 5분간 만나 함께 기도하였다. 약 10여일후 퇴원하여 내 사무실로 찾아 왔다. 퇴원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몸이 쇠약하여 종하를 아예 우리 집에 데리고와서 함께 거하며 몇주간 보냈다. 나는 그 아이의 아빠가 되어 주었고, 그 아이는 나의 아들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네명의 자녀를 사랑하고 섬기는 특권을 누린셈이다.

우리는 함께 형제의 아픔을  만지고, 형제는 우리의 아픔을 만져 주었다. 아픈 이들 끼리 서로의 아픔을 주안에서 위로 하고 싸매어 주었다. 그같은 교제에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를 다 같이 만져 주셨다. 형제는 지금 다 회복되어 부모님이 계시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차를 타고 함께 오하이오로 5시간 여행을 함께 한적이 있다. 그때 자기가 쓴 시를 하나 소개 해도 되냐고 하여 허락하였고, 그 시로 인해 감동이 커서 이곳에 적어 본다.

새벽을 깨우리로다

아침이라 함은
태양이 떠올라
모든 만물을 비춤이요
그로 인해 모든것이 보임이며
내 심장이 진동함 이로다

바람은 나를 감쌈이여
지난날 추억의 회고를 가져감으로
지금 이순간을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산소를 공급함 이로다
모든 만물아
바람과 함께 춤출 지어다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고자
달려가는 이 기다림의 순간이
어찌 길게만 느껴지겠느뇨
바람과 함께 들리는 당신의 숨결이
햇살과 함께 보이는 당신의 손길이
내 곁에 있음인데 말이요

*** 바람 = 성령; 사랑하는 이 = 하나님

형제가 그렇게 아릅다웠던것은 그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때문에 기뻐하고, 외로워 하는 형제이었다. 가까운 장래에 팔레스타인에 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곳은 자신의 부르심이 있는 곳이라고 여겨, 차를 타고 여행중이라도 혹 이란 (Iran)음식 파는 곳이 눈에 띄면 조그만 음식을 하나 사서 들고 나오는 종하였다. 그는 후일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그곳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몰라 아파하는 영혼들을 돌고보 있을것이다. 그를 만나게 하시고 우리를 함께 축복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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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08:57

영어로 고생하는 흩어진 나그네들이여

오래전 이야기이다. 어느날 사랑하는 어떤 형제가 나의 사무실에 들렸다. 너무 반가웠다. 반가움과 동시에 또 놀라버렸다. 형제의 머리털이 보이지 않아서 였다. 머리털 다 어디에 두고 왔냐고 물었다. 형제는 머리털 없는 머리를 극적거리며 "지난밤 삭발배 버렸어요!"하고 대답했다. 삭발을 해야할 어떤 큰 결심이 있냐고 물었다.

형제가 삭발은 한것은 영어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어가 자기때문에 고생하고, 자기도 영어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미국온지 6개월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유창하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학원 수업은 토론위주인데 강의 들어갔다가 기침한번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듣고 나와야 하는 아픔은 너무 크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미국유학 첫학기 수업에서 강의실이 다음부터는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같은 방에서 한시간정도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교수에게 달려간적이 있었다. 휴강을 하려면 칠판이나 강의실 문에 휴강사인을 붙이기라도 할것이지 남의 귀한 시간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 (나는 그렇게 말한다고 머리속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나온 말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른다) 뭐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화가나서 항의한적도 있었다. 교수가 웃으면서 결석을 하려면 미리 교수에게 통지하는것이 예의 인데 왜 무단결석을 하느냐라고 되물었다. 물론 나의 논리로 나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친절하게 앞으로의 강의가 다른 빌딩 103호에서 있을것이라고 하며 쪽지에 적어주며 나를 돌려 보냈다.

다시 삭발한 형제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형제는 영어를 잘할때 까지 삭발은 물론 앞으로 시리얼 (cereal)만 먹고 지낼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리얼 (cereal)만 먹다가 유학와서 객사할것 같아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얼른 자리에 앉아서 나와 이야기하며 진정하자고 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밥하고 김치먹고 힘을 내라고 권유했다. 왜냐면 영어가 잘되려면 몇년이 걸려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유학생들, 특히 대학원생들은 강의실 아니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외에는 외로우니 한국학생들끼리 모여서 식사도 하고 테니스도 치면 놀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에는 한인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를 가고, 일요일은 한인교회에서 우리말로 예배를 드린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강의실 벙어리에다가, 도서관에서 책빌릴때 2-3분 사서와 대화하는것, 식당에서 무엇을 주문할때 몇마디 하는것을 제외하면 영어를 향상시킬 기회가 전혀 없다. 

삭발한 형제뿐 아니라 이렇게 영어로 고생하는 유학생들에게 내가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양로원이나 장애인들이 있는곳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곳에 가서 잘 하던지 못하던지 떠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져야 한다. 양로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죽을 입에 넣어 드리면서 한국이야기도 하고, 전공이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무도 감사히 서툰영어를 들어 준다. 짜증내지도 않는다. 워낙 외로운 분들이 많다보니 자신과 있어주는것 만도 감사해 한다. 

양로원에 있는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다. 유학생때 만난 어떤 할아버지는 교육학과에서 연구방법론과 통계를 가르친 은퇴교수였다. 책도 몇권 썻다고 한다. 통계로 고생하던 나는 할아버지께 기본 개념을 배워 아주 잘 사용한적이 있다. 

나는 미국에 온지 2년 반만에 전공필수과목을 가르친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른다. 열심히 강의도 준비했지만 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들의 눈동자를 보았을때 도무지 잘 알아들은것 같지 않고 불쌍해서 강의를 들어주는것 같은 생각만 지배했었다. 그러나 다음학기에 또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고는 매우 기뻐한적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한탓이 더 컷을 게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나마 헤메면서 영어로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자원봉사경력이 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나는 일주일에 10시간정도 장애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어떤날은 그들과 2박 3일 캠핑을 떠나기도 했다. 물론 장애인들의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가는 것이기에 교통편의, 음식, 침낭 등 모든것을 그곳에서 준비시켜 주었다. 나는 자원봉사를 통해 미국의 문화도 배웠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그때 사귄 미국친구 (장애담당 디렉터)의 소개로 그 아이의 부모집에서 약 2년을 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줄때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 영어도 배우고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삭발보다는 더 기가 막힌 영어 공부 방법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장애인들의 발과 손을 씻으며 사랑을 나누는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이다. 사회에서 그 가족 조차도 찾지 않은 소외된 많은 이들이 있다. 집이 없는 Homeless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도 있고, 집없는 사람 집을 지어주는 Habitat of Humanity (http://www.habitat.org/)도 아주 좋은 기관이다.

엉어는 말을 배우기위함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함이다. 언어는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질때 바른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다. 칼빈대학의 동료인 바바라 카빌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Foreign language education prepares students for two related callings: to be a blessing as strangers in a foreign land, and to be hospitable to strangers in their own homeland."

사진출처: http://todaysseniorsnetwork.com/Hands,%20Caregiver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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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30 23:18

추수감사 브레크를 마감하며

이곳 그랜드 래피드에온이후 처음 맞이 하는 추수감사절 이었다. 작년에 터키 (칠면조)를 아주 잘 구어서 인기가 많았는데 금년에는 장난치다가 좀 태웠다. 그래도 맛이 좋다고 아이들이 난리였다. 좀 굶겨 놓으면 맛이 나니까 고기를 잘 구울 필요가 없을것 같기도 하다.

금년에는 목사님가정과 함께 추수감사저녁을 보냈다. 목사님은 잠시 모국방문중 이시기에 사모님과 세 자녀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밀린 대화들 나누고, 목사님의 세 아이들을 알아 가는 기쁜 시간들이었다. 사모님이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 오셔서 우리들의 식탁은 제법 근사했다. 역시 음식은 나누는 맛이다. 오랜만에 감사가 넘치는 귀한 식탁을 대해 보았다. 귀한 목사님과 그 가정을 알게 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하였는지...

목사님댁이 떠난 이후 가족끼리 옹기종기 앉아서 이야기 나누었다. 막내 영민이의 재롱을 함께 즐거워 하며, 또 다른 사람을 아주 잘 흉내내는 재능을 가진 혜민 (그날 처음 알았다)의 재치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행복은 가족과 함께 사랑을 나눌때 가장 가까이 온다. 주안에서 느끼는 평안을 제외하고 가족이 이렇게 느끼는 평안과 기쁨은 그 어느것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감사의 이유를 서로 꺼내 놓았다. 나의 큰 감사는 내가 지금 격고 있는 육신의 고통, 관절염이었다. 또 다른 중요한 감사의 이유는 엄청나게 내려간 나의 봉급이다. 육신의 아픔으로 인해 나의 영혼은 더욱 더 가난해 졌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더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다. 많이 내려간 봉급으로인해 아이들과 검소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 밖에 우리가 거하는 바필드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귀한일들을 감사 드리게 된다. 이곳 바필드에서 여러 지체들이 주안에서 회개하는 회복의 귀한 순간들을 목격했다. 주님의 도구가 된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제 내일이면 학교생활이 시작된다. 학생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제 2주가 지나면 이번학기도 마감한다. 학생 하나가 이번학기에 F를 받게 될것 같아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이 아이를 어떻게 세워야 할까? 선생으로서 이 아이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예수님이라면 이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실까? 내 마음이 이 아이로 인해 더 기도하게 된다. 지금 밖에 눈이 많이 내린다. 추수감사 브레이크로 집에 간 아이들이 지금 돌아 오고 있다. 혹시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오는길이 위험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에 대한 염려가 더 커진다. 믿음이 없는 탓일게다. 나는 언제쯤 주님께 이같은 것들을 맡기고 두다리 뻣고 잠자리에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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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4 14:20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이곳의 글은 1994년 3월 12일자 World라는 미국 기독교계 잡지에 실린 글로 칼빈신학대학원의 선교학 교수이신 Roger Greenway의 선교 간증문이다. 본 글은 또한 칼빈신학대학원 주간지 Kerux에서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것"으로 소개된것을 번역한 것이다. 나는 이곳에 소개된 이야기를 지난 여름 조장코스타 예배시 설교의 예화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누구도 할 수 있는 이 같은 일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실천되어지기를 소망한다. 그같은 그리스도의 향기는 복음의 귀한 능력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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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인도에서Operation Mobilization이란 선교단체의 일원으로 사역하던 중 나는 결핵을 앓아서 결핵병동에 수개월간 입원 하였었다. 그 당시 나는 전도지를 환자, 의사, 간호사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저분한 시립병동에 나 같은 부유한 미국인이 입원한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모든 미국인은 부자로 보였다.) 그들은 OM 단체와 함께 일하는 나도 그들처럼 상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병들었다는 것,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 언어 장벽으로 인하여 예수를 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전도지나 요한복음 책자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하여 나는 몹시 낙심되어 있었다. 첫 몇 일 동안 나는 심한 기침으로 인해 새벽 2시경에 깨어나게 되었다. 어느날 아침 평소와 같이 기침약을 먹으러 일어났을 때, 맞은 편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나이가 많고 몹시 약해 보이는 한 노인환자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의 침대 가장자리로 옮겨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연약하여진 건강으로 인하여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나는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는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침대에 누웠다. 그때 나는 그가 조용히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가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단지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려 하였었다. 그러나 그의 병약한 몸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그의 침대에 볼 일을 보았던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 우리 병동은 난리가 났다. 대부분의 다른 환자들은 그 냄새로 인하여 그 노인에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간호원들도 뒷처리를 하여야 했기 때문에 몹시 화를 냈다. 그들은 청소를 하기 위하여 그 노인을 이쪽 저쪽으로 밀쳐댔다. 한 간호원은 분을 못이겨 그 노인을 한대 쳤다. 그 노인은 견딜 수 없는 수치감에 몸을 공처럼 말고서는 흐느꼈다.

 

그 다음날 밤 역시 새벽 2시경에 나는 기침으로 인하여 눈을 떴다. 나는 그 노인이 다시 화장실을 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힘이 부족하여 그 전날처럼 뒤로 쓰러졌다. 나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다. 더러운 악취를 싫어한다. 그러한 일에 휩쓸리기를 싫어한다. 나 역시 환자였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었으나 내가 다가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몸을 숙여 그의 어깨를 만졌을 때, 그의 눈은 두려움에 젖은 의아스런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단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머리와 목 밑으로 한 손을 넣고 그의 다리 밑으로 다른 손을 넣어 그를 안아 들었다.

 

비록 나는 병들고 약했지만 그 노인보다는 건강했다. 그는 나의 많고 결핵이 깊어 몹시 가벼웠다. 나는 복도를 걸어서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은 몹시 냄새가 나고 더러우며 조그만 방에 단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나는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부축하여 그가 일을 볼 수 있게 했다. 그가 일을 마쳤을 때 나는 그를 다시 안고 그의 침대에 가 뉘었다. 내가 그를 침대에 내려놓을 때 그는 나의 뺨에 키스를 하고 웃음을 보이며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여겨지는 어떤 말을 건네왔다.

 

그 다음날 일어난 일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가 알지 못하였던 한 환자는 새벽 4시경에 향이 그윽한 따뜻한 인도차를 손에 들고 나를 깨웠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손짓을 하며 전도지를 원한다고 했다. 해가 떴을 때는 다른 환자들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그들도 전도지를 나눠 달라고 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은 쪽복음과 전도지를 구하러 왔다. 간호원들, 병원 수련의들, 의사들, 마침내 그 병원의 모든 사람이 전도지, 쪽복음 혹은 요한복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다음 며칠간 몇 사람들은 그들이 복음을 읽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었다고 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였는가? 분명 건강이 아니었다. 지적으로 감동적인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건강과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으로 그들이 복음에 그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셨는가? 나는 단순히 한 노인을 화장실로 데려간 것뿐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진은 Google Image Search (http://images.google.com/)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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