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4.08 무엇이 나의 큰 기쁨인가?
  2. 2009.01.15 하나님의 선물
  3. 2009.01.08 큰 기쁨
  4. 2008.12.14 교수의 진정한 기쁨
2015.04.08 13:40

무엇이 나의 큰 기쁨인가?

그날이 바로 부활절이었다. 내가 크리스마스보다 더 좋아하는 날이다. 더 기뻐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그날은 몹시 기뻤다. 예배도 좋았고 친교도 좋았다. 친교를 위해 아내가 특별히 음식을 차렸는데 음식이 유난히 맛있었다. 꽃도 꽃병에 담아서 식탁에 놓았다. 참으로아릅다웠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또 주안에서 형제라, 자매라 부르는 귀한 지체들도 함께하여 교제가 매우 좋았다. 


그날 조용히 내게 물었다.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참으로 감동하며 기뻐하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음식일까? 아름다운 화초일까? 고전음악 듣는 것? 아니면 가족?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너무 맛이 있어 울면서 먹어보지 못했다. 나는 화초와 꽃을 참 좋아한다. 내 사무실에도 집에도 여러 종류의 화초/화분을 내 눈이 쉽게 머무는 곳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꽃이 아름답다고 들여다보며 울어보지는 못했다. 나는 고전음악, 특히 오케스트라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 가슴뛰게 좋아한다. 그러나 음악을 들으며 울어보지는 못했다. 


나는 가족을 참으로 좋아한다. 아내를 참 사랑한다. 마음도 아름답고, 50이 넘었지만, 얼굴도 내 눈에는 가장 이뻐 보인다. 내 살이 단단하다. 그러나 아내 살은 참으로 부드러워서 잡고 있으면 너무 좋다. 같이 걸어도 좋고, 같이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다. 큰 아이들은 집을 나가서 살고 막내아들이 하나 함께 살고 있는데 나는 이 녀석이 너무 좋다. 녀석과 대화도 즐겁고 스킨쉽도 즐겁다. 같이 노는 것은 더욱 즐겁다. 그러나 아내와 막내아들이 좋아서 매일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에서 시작하여 가족에까지 이르자 당연히 예수님으로 연결되었다. 나는 찬양하며 기쁨으로 감사로 자주 울곤 한다. 말씀을 읽으며 꺼억거리며 울기도 한다. 기도하며 흐느끼기도 한다.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걸고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국기가 올라오고 애국가가 울려날 때 국기를 바라보며 눈물을 뿌리는 그런 모습과도 같이 나는 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그 순간에 그렇게 울지만, 나는 매 순간 그렇게 깊숙이 감동하며 기뻐한다.


역시 그리스도가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이 아주 간단하며 심오한 진리를 부활절날 잠시 생각해 보며 내 눈을 촉촉이 적셔 보았다.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 이 기쁨보다 더 큰 것이 없다. I love you, Jesus. 


부활절 친교 테이블 준비중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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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0:53

하나님의 선물

어제의 일을 적은것이다. 어제는 독서가 밀려서 시간을 낼 수 없어 포스팅을 할 수 없었다.

아침에 해야할 일들 (큐티, 기도, 커피 만들기...) 막 마치고 바깥기온을 알아보려고 문을 열었다. 밤새 혹은 새벽에 집에 누가 잠시 다녀간것 같다. 키가 작아 벨을 누를 수 없었지만 다녀갔다는 흔적이 있다. 정체를 알아보려고 아내를 불러 함께 알아 보려 했다. 아내는 "야생 칠면조"가 아침에 다녀갔다고 했다. 배고파 보여 빵조각을 몇개 던져주었다는 것이다. 내 눈에 띄였다면 그 놈은 금년 추수감사절 테이블에 벌거벋고 앉았을텐데... 나를 부르지 않았다고 아내를 핀잔 주며, 한편 기뻐했다. 사실 나는 칠면조나 다른 짐승을 학대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아니다. 다람쥐를 보아도 귀여워 한참 놀아주는 편이다. 어떤 유학생들은 돌맹이 부터 집어 들지만... 이 아침 집을 방문한 칠면조로 인해 이 세상에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짐승들을 기뻐할 수 있었다.


잠시 밖을 내다 보는데 신기한 모습이 눈에 띄였다. 나무에 눈꽃 (snow flower) 이 피었다. 신기하였다. 사람이 만들려 해도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가을 단풍만 멋있고 이쁜것이 아니라 겨울에 피는 눈꽃도 너무 아름답다. 밤새 누가 이 꽃을 두고 갔을까? 칠면조의 발자국만 보고도 기뻤는데 눈꽃을 이 아침 선물로 받았다.


이틀전 오후에 카이퍼 세미나 참석차 집을 나서려 차고로 들어갔다. 날씨가 영하 18도까지 내려간 탓에 그간 보지 못했던 광경이 눈에 띄였다. 고등학교시절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를 보며 잊지 못했던 광경중 하나가 어느 집창문에 그려진 성에 였다. 규모로 보면 당시 영화로 보았던 추운 러시아의 어느 집에 있던 성에와 견줄 수 없다. 그러나 기쁨의 차원에서는 오늘 내 눈에 들어온 성에가 훨씬 능가 한다.


우편함위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만들어낸 예술품을 어제 (1월 20일)찍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이곳에 추가해 본다.



참 아름 다워라, 하나님의 세계는 ...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
참 아름 다워라, 하나님의 세계는 ...  다 주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 내도다...
참 아름 다워라, 하나님의 세계는 ...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 듯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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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8 18:13

큰 기쁨

처음으로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했을 때에 내가 느꼈던 기쁨은 형언할 수 없다.
나는 세상이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쾌락을 맛보았다.
그러나 한 영혼을 구하는 기쁨은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다.
- 챨스 스터드
* Quoted from "ChurchLeader" by Christian Network


오래전 어느 주립대학의 교수로 있을때의 이야기이다. 한국식품을 사려고 하나밖에 없었던 한인마켓을 갔었다. 아내와 한참 장을 보고 있는데 어느 학생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당시 한인 학생회 간부였고 비교적 한인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학생이었다 (또 골프를 아주 잘쳤던것으로 기억난다). 나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하기에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갑자기 내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해야만 하는 급한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학생, 거기에 서 있는 모습이 해골이 서있는것 같구려!" 문뜩 느끼기에 성령의 인도하심 같았다. 그러나 순종하기 정말 싫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했다가 그 학생에게 깊이 상처 줄것 같았고, 또 그로 인해 내가 받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것 같아서였다. "어느 교수를 한인마켓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나한테 죽은 해골같다고 말하더라. 그런데 그 교수는 예수믿는 사람이더라..." 뭐 이렇게 나가면 교회에도 먹칠하는 일 같기도 해서 였다.

많이 망설였다. 절대 그 말을 할 수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성령께서 시키실때 불순종 할 수 없어 억지로 그 말을 전해야만 했다. 하기 싫었던 말이라 내어 뱉어야 했기에 감정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내 뱉어 버렸다. 그 말을 들은 그 학생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크게 실수 한것이야. 너무 심했어. 정말 분노가 하늘만치 치솟앗구나. 이제 나는 큰일 났다." 우선 상황을 모면 하려 나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오려 했다. 만일 쥐 구멍이 어느곳에 있었고 또 내가 쥐같이 작았더라면 나는 당장 그리로 들어 갔을 거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절제하며 문가로 나가는데 그 학생이 상기된 표정으로 총알같이 내게 달려 왔다. 올것이 왔다 싶어 각오하고 그 학생을 쳐다 보았다.

학생: "교수님, 어디 사십니까?"
: (속으로) "그걸 왜 뭍냐? 그냥 여기서 해 버리지."
: (그러나 실제로) "이곳에서 약 20분 떨어진 ***에 삽니다."
학생: "그럼, 장을 다보고 교수님 집에 가서 뵈어도 되겠습니까?"
: (우물쭈물) "뭐 꼭 와야만 되는 일이면 오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어색하게 헤어졌다. 물론 내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예수님 믿으려면 적당히 믿어야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라고 속으로 한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약 한시간뒤 그 학생은 우리집으로 그의 아내와 함께 나타 났다. 그 학생의 아내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자매였다.

학생: "교수님, 아까 왜 그런말 했습니까?"
: "누가 시켜서 그랬소!"
학생: "그게 누굽니까?"
: "성령님이요!"

그 학생은 정색을 하고 나를 쳐다 보았다 (째려 보는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학생: "교수님, 사실은 사촌형님이 몇해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형이 돌아가시기전 누군가가 교수님이 제게 했던 말을 형한테 똑같이 하면서 교회 나와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을 놓고 같이 웃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형님은 교회를 가지 않았고, 그뒤에 교통사고 난 것입니다. 그리고 형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요."
: "그래요? 교회 다녀도 교통사고는 나는데..."
학생: "교수님, 교회가야 될것 같습니다."
: "교회만가지 말고 예수님 영접하여 구원 받으십시오."

그날 그 학생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날 우리는 너무 기뻐 함께 울었다. 위의 Studd가 고백했던것 처럼 그때의 기쁨은 다른 세상적 기쁨과 비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마치 잃은양 한 마리를 찾아서 어깨에 메고 오는 목자처럼...


                      그림출처: http://www.hansgruener.de/pictures/krippen/strassenkrippe_verloren_hirte_48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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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23:20

교수의 진정한 기쁨

어제까지 채점으로 바빴다. 내일 부터는 더 바쁘고 힘들것 같다. 채점거리가 책상위에 잔뜩 쌓여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주의 날 이라 채점을 멈추고 마음을 주님께 고정시키려 애썼다. 채점해야 할 페이퍼들이 눈에 들어 올때마다 유혹이 생겼지만 오늘은 주님만 응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제까지 채점한것과 지난학기를 회고해 보며 오늘 크게 기뻐할일 하나를 발견했다. 학생들의 변화이다. 지식의 변화도 분명히 생겼다. 제법 어려웠던 개념들을 아주 잘 소화하여 정리한 내용들을 읽어가며 대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참으로 기쁘게 했던 것은 이들의 삶의 태도 변화에 대한 고백을 읽을때 였다. 아이들이 쓴 에세이를 읽으며 지식의 자랑보다 마음의 변화를 적은 글의 내용을 찬찬이 읽으며 큰 기쁨을 느꼈다. 전에 갖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이다.

전에는 아이들이 개념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것을 현장에 잘 적용하느냐가 나를 기쁘게 했고, 그것으로 내 스스로의 강의 능력을 평가하곤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험을 채점하면서 쉬운 질문에도 빗나간 대답 및 모호한 대답을 읽으며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채점하곤 했었다. 그리고 제법 까다로운 질문을 다소 정확하고 깊이 있는 대답을한 답안을 읽으며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같은것들 보다 사람의 변화가 나를 정말 기쁘게 한다. 시험답안속에, 그리고 텀 페이퍼에 담긴 글 가운데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대하면 감사가 튀어 나온다. 수업을 빼먹고 불성실 하였던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며 부족하지만 끝까지 시험문제에 답을한것을 보며 나는 몹시 기뻤다.

교수인 나는 지식 전달자와 지식 창출자만이 아니다. 교수인 나는 나의 전공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조명하고 그 안에 발견된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들이 심령에 변화를 받아 삶이 변화해 가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리사의 변화, 불성실했던 앤드류의 성실성, 불평스런 말을 습관처럼 던지던 제니퍼가 감사의 표현으로 수업을 마치던것... 나는 이 맛으로 교수하고 있다. 이국땅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용하시는것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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