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4.05 어느 군인의 기도
  2. 2011.07.28 주앞에 무릎 꿇을때 (3)
  3. 2009.06.30 코스타를 앞두고
  4. 2009.06.17 사랑해보지 않을래? (1)
2015.04.05 19:15

어느 군인의 기도

오늘 우리 교회 데이브 목사님이 설교중 사용하신 어느 군인의 기도인데 내 마음에 꽃혔다. 이와 똑같은 언어로 기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기도는 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의 기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흔한 기도이지만 이곳에 남겨보려고 한다.


일을 이루기 위해 을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 강을 했더니,
가치있는 일을 하라고 을 주셨습니다.


행복해 지고
싶어 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 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의
칭찬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내지 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누릴 수 있는 삶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하나도 주시지 았지만,
소원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마음
진작표현 못한 기도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이 받는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위장된 축복임이 확실하다. 위장되었다라는 표현이 솔직히 불편하다. 우리들이 당시 깨닫지 못해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의미 없는 고난은 고난중 고난이다. 그러나 고난의 목적과 고난의 유익을 아는 성도의 고난은 축복이다. 부활절날 주께서 주신 고난들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리게 한다. 부활의 신앙으로 고난을 유익으로, 감사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니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고백을 이 군인과 같이 하게 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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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8 17:48

주앞에 무릎 꿇을때

인디애나에 살때 미국 교회에서 다양한 직분으로 여러해 섬긴적 있다. 교인의 숫자가 1,500명가량 되니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받는 이멜과 전화가 있다. "회의가 있으니 교회로 모이시오". 모여서 회의하고 또 회의 하고... 마라톤 회의. 세시간 네시간, 그리고 식사후 또 연속 회의... 결국 열띤 토론 하다가 약 5-10분의 기도로 대부분의 모임을 마친다. 결론 다 내어 놓고 잠시 머리 숙이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누구를 통해 전해 들은것이 있다. 미국교회의 전통과 달리 한국교회의 전통은 문제 생길때 무릎꿇는것이란다. 한국에서 신앙생활한적 없는터라 그 전통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참으로 자랑 스러운 귀한 전통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비단 그것이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기독교적 전통이었다는것을 떠나 그것이 성경적인 방법인지라 오늘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때 나는 어떻게 하였는가?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또 주변에 신앙이 좋은 선배나 동료와 만나 상의/상담하며 잔머리 굴리지 않았나 하는 자성이 생겨난다. 나는 문제 앞에 즉각적으로 골방에 들어가 무를꿇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과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을때가 너무 많았다. 왜 그랬을까? 오늘 내 마음속을 잠시 들여다 보고 싶었다.

우선 나의 이성의 능력과 삶의 경험이 문제 해결에 더 손 쉬운 방법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붙잡을때가 많았던것 같다. 나이를 더 먹으면서 이런 일을 저렇게 하였더니 요렇게 되었더라는 데이터 (data)가 그래도 어릴때 보다 더 많이 축척되어 있어, 그같은 이성의 방법을 따르는 경향이 컷던것 같다. 혹 그같은 데이터가 내게 많지 않으면 이를 많이 축척하고 있는 선배 혹은 어른 들을 찾아가 묻기도 하였다. 내 생각에 그렇게 하는 것이 실수도 줄이고 또 문제해결에 지극히 지혜로울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였다. 요즘 말하는 evidence-based decision이라는 말도 바로 그같은 과거 경험의 축척이 데이터가 되어 그것을 바탕으로 내리는 결정 방식인데, 이를 과학적인 방법이라고들 한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것은 건전한 연구방법론을 사용한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하는것 이지만... 

이성의 방법을 의지하는것 이외에 참을성이 없는 조급함도 무릎꿇는것을 방해하였던것 같다. 나의 부친께서 이북에서 월남하셔서 이북사람의 급한 성격을 닮았는지, 아니면 조급히 가야만 하는 한국인의 조급증이 내 삶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나는 가능한한 빨리 결정을 내려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강방관념을 늘 지니고 나녔던것 같았다. 물론 어떤 문제는 재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일지라도 조속한 대응이 왠지 내게 더 매력적으로 생각이 되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릎 꿇은 시간도 없었지만 그렇게 무릎을 꿇는것이 너무 이 바쁜 세상에 기다림의 여유가 없는 내게 고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의 조급증은 기도를 방해하는 중요한 방해 요소였던것 같다.

조금함의 문제도 있지만 주어진 과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의 문제일때는 민주적인 방법을 따라야 된다는 생각이 다수의 무릎꿇음을 막는 요소가 되었던것 같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면 어떤 결과가 잘못되어도 다수가 함께 책임을 질 수 있기에 안전성에 대한 유혹이 주요 동기가 되었다. 이 밖에도 여럿이 모이면 더 지혜로운 생각이 오고 갈 것이며, 비슷한 생각이 모여지면 정말 힘있는, 유효한 의사결정을 유도해 낼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도 무릎을 꿇는것 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다. 

그런데 신앙인으로 문제 앞에 무릎꿇고 기도 해야한다는 것은 성경 공부를 통해서도 많이 배웠고, 또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서도 배운 아주 기본적인 진리였다. 그런데도 무릎을 꿇지 못하고 잔 머리를 굴림을 선택하였던 것는 내가 무릎꿇음을 통해 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맑은 샘물의 맛을 안 사람은, 옆에 있는 흙탕물을 선택하여 마시지 않는것 처럼 나는 기도를 통해 흘러 넘치는 맑은 물 맛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제 신앙생활은 잔머리 굴리는 삶이 아니라고 고백하게 된다. 요사이 기도하는 것이 즐겁고 또 기도의 시간이 점점 늘어 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더욱 체험하게 되었다. 내 결정-->결과에 대한 데이터 보다, 기도-->응답의 데이터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문제가 생길때, 또 어떤 결정을 내려야 될때에 주 앞에 무릎을 꿇어야 된다는것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매일 아침 새벽 미명에 하신 그 모범같이 우리들이 따라야할 길임을 마음으로 받기 시작하였다. 내가 주앞에 무를을 꿇을때 내안에 나의 데이터가, 남의 풍부한 데이터가 사라져감도 체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의 조금함도 사라지며 주앞에 잠잠히 기다려도 문제가 없을것이라는 담대함이 생겨났다. 다수가 싫어해도, 왕따를 당하는 결과가 온다할지라도, 또 그 길이 대로가 아니라 좁을길이라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의 마땅히 걸어갈 길이라며 따라갈 배짱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신앙생활은 무릎을 꿇는 삶이다. 우리가 주인이라고 부르는 주님께 종으로 나아가 나의 생각을 꺽고 가난한 심령으로 주의 뜻을 묻는 것이다.  요즘 미국교회의 일반적 경향이 회의 중심적이라 한다면 우리는 마땅이 한국인의 전통이라고 하는 무릎꿇음의 영성으로 나가야 할것이다. 우리가 밟은곳 마다 다 주의 나라가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다. 우리가 밟은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그곳에 눈물을 뿌릴때 주의 나라가 우리가 밟고 선 그 곳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어제 돌아가신 John Stott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이 세상이 무엇이 잘못 되었냐?"라고 묻지 말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빛과 소금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라고 물으십시오. 이제 주앞에 무릎을 꿇을 때이다. 우리가 무릎을 꿇을때 우리가 소금의 맛을 내고 또 우리 삶에 진리의 빛이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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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15:09

코스타를 앞두고

많은 영혼을 구원했던, 믿음의 선배들을 자서전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은밀히 몇 시간동안 기도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그들처럼 하지 않고도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음을 세상에 증명하자.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믿음과 인내로 약속을 얻어 냈던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따르기로 하자. 그들은 죄인들이 구원을 얻도록 주님 앞에서 울었고 기도했고 몸부림쳤다. 주님의 말씀의 검(劍)에 완전히 압도되기 전까지는 쉬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의 능력의 비결이었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때면, 그들은 주님께서 성령을 부으셔서 죄인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도로 씨름했던 것이다.- 오스왈드 스미스 (Oswald J. Smith)
다음주면 시카고에서 코스타 (KOSTA)가 열린다. 많은 청년들이 믿음의 선배들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동안 코스타에서 조장들을 섬기는 조장 멘토로 많은 청년들을 만났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어떤 청년들은 신앙생활중 "더 나은 방법" 없을까, 유명한 목사님들 및 잘 알려진 혹 세상에서 성공한 신앙인들의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 등을 궁금해 하며 예배를 들어가고, 세미나를 선택하며, 상담을 하곤 한다. 

혹 빗나간 기대를 가지고 코스타로 달려올 청년들이 금년에도 있지 않을까 염려하며 기도 하던중 위의 글을 대하게 되었다.  짦은 집회 동안 청년들이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잘 알려진 강사님들과 목사님들의 모습과 그들의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놓치기 쉬운것은 어쩌면 주님 앞에 말씀을 붙들고 밤새 울며, 기도하고 몸부림 치는 것, 말씀앞에 자신이 온전히 굴복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쉬지 않고 주님을 붙들었던 선배들의 씨름일런지 모른다. 

나는 이번 코스타가 잘 알려진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과 그들의 설교를 관객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듣는 코스탄 (KOSTAN)이 아니라 자신도 그같은 씨름을 실제 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그런 집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해 본다.
출처: KOSTA Photo 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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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5:38

사랑해보지 않을래?

나의 힘으로는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 때문에 사랑 하게 된적이 있다. 지금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보고 있다. 내가 기적을 일으킨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말씀이 기적을 시작하였고, 그 말씀이 나의 순종을 통해 구체화 된것 뿐이다.

그 기적은 오래전 사랑이야기다. 당시 나는 어느 주립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그곳에 부임하던 첫해에 같은 전공을 지도하던 어느 여자교수가 정년 (tenure)을 받지 못하고 떠나는 사건이 생겼다. 워낙 성실했던 동료였는데 나는 제법 놀랐다. 나중에 누가 귀뜸해주기를 그 교수는 연구 실적이 많이 부족해서 테뉴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여하간 나는 졸지에 동료를 그렇게 잃어 버린셈 되었다. 

결국 후임을 뽑아야 하였고, 시간이 부족했던 관계로 급속한 속도로 청빙위원회가 구성되어 교수를 뽑기로 하였다. 제한된 시간속에 광고 되었으니 제한된 숫자의 응모가 있었다. 그러나 적은수의 응모자 중에서 청빙위원회는 어떤 두 applicants를 학과장에게 추천했다. 그러나 학과장은 청빙위원회의 추천을 무시한채 어느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던 응모자와, 청빙위원이 추천한 두명과 함께 초대하여 인터뷰를 진행 시켰다. 물론 청빙위원의 추천에 속하지 않았던 세번째 그 여교수를 모두 기뻐하지 않았다. 결국 학과장은 세번째 여교수에게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하였다. 이유인즉은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채용된 여자 교수의 이름은 티나 (가명) 였다. 나와 티나는 그렇게 만났다. 키도 나보다 훨씬 크고, 금발머리였고, 목소리는 우렁차고 공격적이었다. 표정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고, 자기 주장이 몹시 강한 사람 같았다. 교수회의에서는 유독 자기 생각을 분명히 나타내기도 했고, 어떨때는 심각히 따지기도 하는등 다른 교수로 부터 적개심도 유발할 정도였다. 강의실에서도 여전하여 학생들로 부터 환영 받지 못하고, 여러 학생들이 강의를 더 들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티나의 시작은 많은 잡음을 내고 있었다. 

티나가 나보다 대학에 더 오래 있었던 이유로 인해 그녀는 나의 전공분야에 코디를 맡게 되었다. 둘이서의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나의 의견을 수렴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그냥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동료 교수들도 힘들어 하였고, 학생들과 나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전공이라 티나를 advisor로 둔 학생 30여명은 티나를 찾기 보다 나를 찾음으로 나의 생활은 더 바빠 졌다. 티나로 부터 받은 어려움과 부당한 대우를 호소하는 학생들을 매번 상담해야 하였다. 나또한 티나로 인해 어려웠음으로 나도 상담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새벽 기도때 나는 하나님께 강하게 호소 하였다. "나를 그곳 대학에서 떠나게 하던지 티나를 떠나게 하던지 주님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하나님께 대들기도 했다. 몇달을 기도했지만 티나도 그곳 주립대학에 있었고, 나도 그대학에 있었다. 무너지기를 갈망했던 나의 여리고성은 무너지지 않고 그냥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죽을 맛이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의 어려움은 더 어려워져 갈 뿐 호전의 기미는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말씀을 읽는데 "티나를 사랑할 수 없겠는냐?"라는 세미한 내적 음성이 들리는듯 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이 나로 하여금 티나가 내 이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를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동의 하는 움직임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강하게 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즉시 뿌리 쳤다. 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내 학생들은 사랑할 수 있지만 티나는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좌우로 저의며 강하게 부정했다. 결국 그날의 기도는 중간에서 멈추고 교회를 뛰쳐 나왔다.

문제는 그 뒤에 또 생겼다. 매번 새벽 기도시 읽는 본문 말씀중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로 하여금 티나만 생각나게 만들었다. 나는 괴로 웠고, 또 부정하며 교회를 나왔다. 세번째에 똑같은일이 반복해서 생기자 나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위해서도 나는 더 이상 도망다닐 수 없었다. "주님, 싫지만 순종하겠습니다!"

그날은 순교할 각오로 학교에 출근했다. 아침 부터 가슴이 쿵쾅거리며 견딜 수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티나의 방을 노크하였다. 티나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랬지만 불행히 그녀는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노크를 했기에 문은 열렸고, 문을 열어 주었기에 나는 들어가 앉아야 했다. 나는 몹시 경직 되어 있었다. 평소 만날때도 경직 되었는데, 그날 사랑을 고백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내 얼굴을 응시 하는 것이었다. 사랑을 고백해야 하니 우선 사무실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래서 문을 닫아도 되겠냐고 경직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이지"라는 대답과 함께 문을 닫았지만 긴장 떄문에 좀 세게 닫은것 같다. 화난 동양 녀석이 인상쓰고 아침 부터 들어와 문을 쾅 닫았으니 티나의 표정도 긴장으로 가득해 보였다. 

말을 하자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사랑한다고 말은 해야 하는데 정말 당황 되었다. 차라리 화장실에서 거울 보며 연습이라도 할것을 그냥 들어온것 같아 후회 막심이었다. 그같은 많은 생각으로 인해 나는 입을 열지 못하고 그냥 티나의 얼굴만 긴장하여 째려 보았고, 그런 나를 티나 또한 노려 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주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떠듬거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것 같다. "나는 크리스쳔이라 매일 아침마다 기도 하고 있다. 너하고 불편해서 계속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것 같았다. 그래서 사랑한다라고 말하러 왔다. 내 하나님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 

고등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마치고 놀고 있는 자녀 하나를 더 둔 이혼한 티나 앞에서 이같이 말을 했으니 이제 과격한 티나가 어떻게 나올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었다. 그 말을 내 뱉어 버리자, 이번에는 티나가 나를 노려 보았다. 처음보다 얼굴이 더 긴장되어 보였다. 쥐 구멍이 있으면 들어 가고 싶었다. 꼭 이렇게 해야 예수 믿는 것일까? 주립대학에서 하나님 이야기에다가, 남자 교수가 이혼한 여자 교수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니 결과는 어떨까? 그동안 나로 인해 자신의 마음도 몹시 상해서 꼬투리를 잡고 싶었을터인데 내가 하나님때문에 고스란이 당했다고 생각했다. 

등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괴로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티나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었다. 나는 "이제 하고 싶은 말 했으니 난 자리를 뜨겠다"라는 말을 남기도 그 자리를 도망쳐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티나의 눈이 젖기 시작했다. 그리고 표정이 풀려 감을 목격했다. 젖은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맙다, 영길아!" 라고 말하며 계속 울고 있었다. 우리는 말이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티나는 울고, 나는 어찌할줄 모르는데 어색하게 앉아 있었고. 

티나는 입을 열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25년전에 만나서 결혼했고 아이도 둘 있는데 남편을 떠나야 했었다. 남편으로 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살고 있었고, 부부 관계는 너무 어려웠다고 고백하였다. 아이를 하나씩 나누어 헤어지자고 하여서, 남편은 큰아이를 데리고 살고, 자기는 둘째 아이와 살고 있다고 하엿다. 그때의 상처가 너무 컷다고 한다. 남편이 너무 싫었고, 큰 아이는 너무 보고 싶었고... 이후 우울증이 자신을 다스리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삶은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같은 사람을 누가 사랑한다고 하여 믿기 어려울 만치 기쁘다고 한다. 전에 남편이 프로포즈할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한적이 있을뿐 아무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아침을 그렇게 보내고, 각자 강의 하러 가야 했기에 우선 헤어졌다. 

나를 위해 중보하던 아내에게 오전에 티나와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저녁 아내가 빨간색 장미꼿 24송이 (two dozens)를 사들고 티나네 집을 찾아 갔다. 문을 열어 주던 티나는 24송이 빨간색 장미를 받고 또 울더라는 것이다. 남편이 프로 포즈 하며 사랑한다고 할때도 빨간색 장미 24송이 였다고 한다. 아내는 그날 어느 가게에서 장미꽃을 대폭 세일을 하기에 two dozens를 산것일 뿐인데... 아내를 꼭 껴안으면서 고맙다라는 말을 연실하며 흐느끼는 티나를 뒤로 하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우리 부부는 티나의 집을 또 방문하였고, 서로의 삶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 부부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 대학때 철없이 어느 남자를 만나서 관계를 갖고 딸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수 없어서 입양기관에 넘겨준 아픈 사건으로 자신의 삶은 죄의식과 아픔으로 힘들었다는 이야기 부터 시작하여 많은 삶의 이야기를 큰 보따리를 풀듯 털어 내었다. 울고, 웃고, 또 울고... 우리는 이렇게 친구가 되었다. 주말에는 우리 두 아이를 돌보아 줄테니 영화를 보던 데이트를 하던 놀다오라고 하여 아이들도 몇번 맡아 주었다. 우리아이들에게 책도 읽어 주고 샌드위치에 꿀 발라 먹는 것도 가르쳐 주며 아이들을 아주 잘 돌보아 주었다. 

티나는 편집을 아주 잘하는 은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글을 써서 좋은 저널에 논문도 몇편 내기도 했다. 수년 동안 출판한 논문이 한편도 없었던 티나는 나와 글을 쓰면서 몹시 의욕에 차 있었다. 워낙 글을 잘 다음어 주어서, 나의 글이 티나의 손에 들어가면 아주 깔끔해 지는것을 보며 많이 놀랐다. 물론 나는 그것을 거침없이 표현했고, 티나는 그같은 나의 피드백과 저널 편집장으로 부터의 칭찬으로 글쓰는 일에 매우 의욕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티나로 인해 학생들의 불평도 적어져 가고 있었다. 동료 교수들도 전과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강의 평가가 여전히 나쁨으로 인해 티나를 내어 쫓느냐 아니면 기회를 주느냐 토론하며 각각의 교수들을 학과장이 만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티나를 내보내는것에 동의했지만, 나는 티나가 처음과 달리 아주 잘 하고 있음을 여러 근거를 사용하여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동안 둘이서 1년간 출판한 논문 세편은 학과 교수 15명이 쓴 논문 숫자의 합한것과 같았다. 결국 학교는 티나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즈음에 나는 다른 어느 주립대학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래서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 오퍼 받은 대학은 티나가 전에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이라 아주 기뻐 하였다. 물론 섭섭함으로 실망도 하였지만... 그곳에 집을 팔지 못한채 새로 이사갈 곳에 집을 사야 하였기에 금전적으로 아주 어려웠다. 사고 싶었던 집은 방이여섯개라서 학생들이 편안히 와서 쉬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2-3분 걸어가면 공원도 있어서 청년들에게 너무 좋을것 같아 꼭 사고 싶었다. 그러나 그집에 누가 조건부 오퍼를 이미 넣은 상태이었다. 오퍼를 넣은 사람은 자신의 집을 팔면 그 돈과 융자금으로 사는 것을 조건으로 하였기에 우리가 은행의 융자를 얻을 수 있으면 그 오퍼를 제끼고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은행에서 융자가 나왔지만 약속된 수일내 까지 현금 $5,000이 있어야 부동산 (집) 구입이 체결 (closing)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해도 $5,000이 나올길이 없었다. 

티나는 아내와의 교제 속에 우리의 이같은 실정을 들었던 모양이다. 이사를 앞두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학교 사무실에서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짐을 싸고 있었다. 한참 짐을 싸는데 티나가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된체 내 사무실을 급히 들어섰다. 4층에서 부터 더운날 걸어 왔으니 더웠을 것이다. 그런데 씩씩 거리는것 보니까 뛰어 온것 같았다. 반가워서 웃으면서 자리에 앉으라고 했더니 두툼한 두 주머니에서 쌍권총을 빼듯이 현금을 빼어 드는 것이다. "내 부모로 부터 거저 받은 돈이니 나도 네게 거저 주는 돈이다. 몇일 후 집 closing할때 사용해라! 갚을 생각 안해도 된다. 내가 너희 집 방문 하며 그냥 공짜로 잠만 재워주면 된다!" 그렇게 말하고는 사무실을 빠져 나가 버렸다. 

결국 새로운 곳에 집을 샀다. 그리고 먼저 집은 한달 후 팔 수 있었다. 덕분에 $5,000을 티나에게 되돌려 줄 수 있었다. 근사한 선물과 더불어. 새로운 곳에 이사간 이후 어느날 집 고칠때 사용하는 도구가 100개가 있는 파란색 도구박스 (Tool Box)를 문앞에서 발견했다. 티나가 5시간 운전해서 새로산 집 문앞에 도구박스를 두고 간것이다. 집고칠때 필요로 할것 같고, 네 집에는 그같은 도구박스가 없는듯 하여 네 집에 놓고 간다. 잘 사용하도록 해라!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주님때문에 억지로 사랑한다고 말한것 뿐인데, 너는 네 마음을 다 주고, 돈도 주고, 툴 박스도 주고... 

이 기적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조그만 순종으로 경험한 이 사건은 내게 하나님의 크심을 늘 상기 시킨다. 우리에게 사랑하라 하신다. 그 이웃이 내게 어려움과 해를 끼치는 사람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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