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사역'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4.06 John과의 만남
  2. 2009.12.02 인생의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고 따르는가?
  3. 2009.10.02 하나님 나라를 위한 노력이 아니였다면 ... (5)
  4. 2008.12.14 교수의 진정한 기쁨
  5. 2008.10.16 칼빈대학에서의 강의
  6. 2008.04.20 인디애나대학에서
2010.04.06 17:48

John과의 만남

John [가명칼빈대학 학생이다칼빈대학에는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어서 학교에서 나에게 학생하나를 멘토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여 최소한 한해 한명은 기도하면서 성실히 섬길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고 허락하여 만난 학생이 John이다나와 John은 격주에 한번씩 만난다보통 두시간어떨땐 조금 넘을때도 있고 또 모자랄때도 있지만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난다.

지난 가을 학기 부터 시작하여 이번 봄 학기 까지 꾸준히 만났다만남 초기의 대화는 삶의 문제를 꺼내 놓고 그 해결을 위한 상담이었다삶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과 지혜가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이다주로 만남이 있기전 우리의 만남 앞두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또 우리의 만남을 의탁드린다.이렇게 우리들은 만난다.

John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의 상담에서도 나는 비슷한 방법을 취한다그냥 기도하고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좀 세련된 방법은 아니고좀 무식해 보일 수도 있는 방법이지만 나는 이같은 접근을 아주 좋아한다그동안 여러 학생들과 교제하고 상담하는 과정 속에서 얻는 귀한 통찰이 하나 있었다엄청나게 멋있게 들려지는 그런 통찰이 아니고 이미 성경에 수없이 많이 제시된 보편적이며 단순한 진리이다,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을 떠남혹은 하나님 보다 나와 사람을 더 의지함에 있다는 것그러기에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하나님께 돌아감 혹은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함에 기인한다는 성경적 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기도하며 John을 만났다. John은 교회도 다니고 있었고또 칼빈대학 같은 크리스쳔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에 나는 그가 하나님을 잠시 떠난 상태이거나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줄 알았다그러나 우리들의 두번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은 John의 문제가 하나님을 떠남에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것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도와 주셨다즉 기도중 그같은 의심이 생겨 났고구원에 대한 확인이 있어야 한다는 강열한 생각이 솟아난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우리의 대화는 복음제시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 John은 좀 놀라는듯 했지만, 자신의 신앙의 상태에 대해서 매우 솔직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내게 분명히 대답하는 매사 분명한 아이였다. 나는 대화식으로 구약과 신약을 이야기 하며 교제 하였다그렇게 몇번을 만나다가학기말 시험이후 John과 그의 여자친구를 함께 우리집으로 점심 초대 하였다. John의 신앙상태를 알기 시작하면서또 집으로 초대해 놓고 나와 우리 가족은 매일 저녁 John의 구원문제를 위해 기도하였다. John에게 나의 가족도 소개하고또 점심을 함께 먹으며 많은 이야기 하다가 기회를 내어 사영리를 가지고 복음을 제시하였다놀랍게도 John은 여자친구가 지켜 보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영접하였다그날 처음 만났던 John의 여자친구였지만그녀는 내게 이 순간을 위해 제법 끈질기게 기도하였다고 귀뜸해주었다그래서 나도 이 순간을 위해 눈물을 뿌리며 끈질기게 기도하였다고 귀뜸해 주었다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을 함께 고백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하나님의 자녀가된 이후 봄학기에 가진 우리의 첫 만남에서 John은 삶의 여러 문제를 더 이상 가져 오지 않고 신앙성숙과 관련된 질문들을 하였다어떤 질문에는 스스로가 묻고 대답하기도 하는데 그 대답들은 John의 신앙 고백으로 들려 졌다전에 나누었던 삶의 혼돈 및 장래에 일어날 염려에 대한 질문은 우리들의 대화에 조금도 끼어들 수 없게 되었다결국 예수님 없는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고예수님 있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임을 다시 실감한 복음전도 였고또 멘토링이였던 것이다.

크리스쳔 교수의 참 맛은 학생이 좋은 직장으로 좋은 보수를 받고 일하게 되어서가 아니다또 한학기를 잘 가르쳤다고 학생들이 감사로 스타벅스 카드나 책을  선물로 가져다 주어서도 아니다학기말에 주로 행해지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좋아서 또한 아니다크리스쳔 교수로서 가장 신나는 일은 강의실과 강의실 밖에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그리스도를 모르는 학생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알게되는 일이다영원이라는 차원의 엄청난 사역을 보잘것 없는 나에게 맡긴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 하시다.나는 그같은 하나님이 너무 좋아 오늘도 혹 내게 맡기신 영혼이 없는지 호시탐탐 기회를 옅보게 된다할렐루야! 

그림출처: 
www.hebronb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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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15:05

인생의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고 따르는가?

학기말이라 분주하다. 한학기 내내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한 텀 페이퍼를 채점하여 학생들에게 돌려 주는 과정에서 몇 학생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대화중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여학생들은 잘 운다), 몹시 흥분하며 화를 내기도 하였다 (남학생의 경우 잘 흥분하지만, 이 부분은 남.녀가 비슷하다). 한결같이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비판도 하였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 하나를 전에와 마찬가지로 금년에도 발견 하였다. 즉 실라버스 (Syllabus; 강의안) 를 대충 읽음으로 오는 문제인 것이다. 

학생들이 텀 페이퍼를 작성할때 범하는 몇가지 실수중 하나는 실라버스를 주의깊게 읽지 않는 것이다. 보통 실라버스 에는 교수의 강의 계획서와 기대 및 텀 페이퍼 작성 안내가 나온다. 교수가 실라버스를 작성할때는 보통 세부적인 계획을 학생들에게 제시 하며, 학생들이 그 계획을 잘 따라 주기를 기대한다. 교수가 실라버스를 작성할때는 그냥 하루아침에 기분에 따라 작성하는것이 아니고 전문분야의 특성과 세상환경의 변화에 따라 학생에게 가장 유익할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고민한 후에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성된 실라버스는 매해 마다 조금씩 바뀌어 간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거나, 지난해 도움이 되지 않았던것들, 또 학생들에게 혼돈을 주었던것들을 기억하며 보강해 나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장 유익할 과제를 철저히 검토한뒤 실라버스에 학생들이 반드시 다루어야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는다. 따라서 실라버스는 어떤 점에서 학생들이 충분히 소화해야할 아주 귀중한 자료인것이다. 그리고 실라버스는 어떤점에서 교수와 학생이 맺는 계약서 같은 것이다. 어떤 교수는 실라버스 맨 뒷장에 학생들이 "본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었고, 주어진 계획에 동의함"이라는 내용을 적고 학생들이 서명을 하게 한다. 

실라버스를 대충 읽은 학생은 어떤 과제가 주어졌는지 그냥 대충 감을 잡을 뿐이다. 텀 페이퍼 쓸때로 대충 이해한대로 쓴다. 이해는 대충 하였지만, 많은 유학생들의 경우 A+를 받으려고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한학기 내내 고생하며 작성한다. 그리고 혁신적인 생각이 떠오를 경우 흥분까지 해가면서 글을 작성한다. 열심히 정성껏 글을 쓴 학생은 텀 페이퍼를 낼때에 A혹은 A+를 기대한다. 그런데 왠 일인가? A+대신 C, D, 혹은 Redo (다시 써라)라는 결과를 받는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흥분해 하며, 더러는 울기도 하며, 분노를 가지고 교수를 찾아 간다. 나는 잠도 많이 줄이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고, 수 많은 책을 참고로 하여 연구하고, 또 걸으면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텀 페이퍼만 생각하면서 고생하였는데 내게 돌아온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학생의 경우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혹시 미국인 교수가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하지 않나 의심하면서 분개해 한다.

교수의 반응은 간단하다. 나는 너에게 시카고로 가는 가장 좋은 운전길을 연구해 오라고 하였는데, 너는 뉴욕으로 가는 길을 적어왔다. 그러나 네가 적은 뉴욕가는 길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그 어떤 방법보다 탁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시카고가는 길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이같은 반응은 실제 교수가 그같은 내용의 과제를 주어서가 아니고, 교수가 쓰라고 한 방향을 무시하고 학생 스스로가 추측하고 생각한 방향으로 글을 썼을때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지난주 내 사무실을 다녀간 티나의 케이스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티나는 나의 "여가 철학"이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그 수업에는 많은 과제가 있는데 제법 점수의 비중이 큰 과제중 하나는 크리스쳔의 관점을 가지고 여가 (Leisure)의 철학을 논술하라는 것이다. 그같은 관점을 돕기위해 그동안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기독교 세계관으로 여가를 바라 볼것과, 성경의 원칙과 여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여가의 관계등에 대한 Guiding Questions도 실라버스는 분명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티나가 준비한 글은 여가의 철학이 아니였고, 치료레크리에이션의 철학이었다. 크리스쳔의 관점도 고려하지 않았고,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 무엇이 티나로 하여금 본 과제의 특성과 빗나간 글을 쓰게 하였을까 이해 보려고 잠시 애써 보았다. 아마도 내가 치료레크리에이션을 주로 가르치는 교수라는 인상 때문이었을까? 본인의 전공이 그것이니 이번기회에 철학적 정의를 해보고픈 개인의 욕망때문이었을까? 어찌하였든 티나는 과제의 요구사항을 철저히 빗나간 글을 쓴 것이었고, 이로 인해 본인이 기대하지도 않던 권총 (F)을 하나 찬 셈이 되었다. 

실라버스를 대충 읽은 다른 케이스가 있다. 어제 사무실을 다녀간 캔디스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의 경우가 아주 적절한 실례가 될 수 있다. 캔디스는 페이퍼의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교수가 실라버스에 요청한 내용을 철저히 다루지 않았다. 캔디스가 듣고 있는 과목은 치료레크리에이션의 원리라는 과목으로서 요즘 미국의 Health Care System의 Issue에 대한 과제가 있다. 실라버스에는 그 과제에 대한 목적과 요구항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고, 이를 강의실에서 설명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Issue의 선택은 학생이 교수의 동의하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Issue에 대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Issue를 자세히 소개 하게 하였고, 선택된 Issue와 관련된 과거 역사적 사실들, 현제의 상황,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소,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한 제언등을 다루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항목은 특정 점수를 부여하게 되어 있어서 그같은 내용을 다루지 않으면 점수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캔디스의 경우 Issue에대한 나의 동의는 받아내었지만 내가 연구하라고 실라버스에 요구한 구체적 항목들은 일부 다루지 않았다.  대신 내가 실라버스에 요청하지 않은 다른 항목들을 아주 장황하게 조사하여 보고 하였다. 요구한 항목중 잘 다루어진 부분은 실라버스에 적힌대로 점수를 받았지만, 다루지 못한 부분은 아무런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본인이 열심히 썻으나, 내가 실라버스에서 요청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아무리 훌륭하게 연구하였어도 아무런 점수를 받지 못했다. 받은 점수를 모두 합해 보니 많은 부분에서 점수가 부족하여 결국 캔디스는 권총 (F)을 하나 받아야 했다.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당연한 것을 소홀히 함으로 큰 실수를 범할 때가 많이 있다. 무엇을 만들고 조립할때 그 물건을 만든 회사가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보고 그대로 따라 가면 쉽게 조립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메뉴얼을 무시하고 나의 꾀와 직감을 가지고 그냥 조립하려고 할때 당하는 어려움이 좋은 예이다. 기본과 당연한것을 무시하지 않고, 조그만 것 일지라도 성실한 크리스쳔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완벽한 실라버스를 만들어 주셨다. 어떤 이들은 그 하나님의 실라버스 대로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무시하고 살아 간다. 또 어떤 이들은 일부는 따르지만, 다른 부분은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간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실라버스 대로 (성경대로) 살아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추측하고 편리한대로 하나님을 좇는가? 인생의 실라버스를 충실하게 읽고 주님을 좇아야 할 것이다. 당연한것을 무시하는 삶을 살아 가다가 도착지 (finish line)에 섰을때 나의 달음박질이 헛된것이 되면 어찌할 것인가? 한번 심각히 우리의 삶을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이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딤후 2:5; 표준새번역)
사진출처: http://leslievalesk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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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2 15:57

하나님 나라를 위한 노력이 아니였다면 ...

오늘 아침 말씀 묵상을 마치고 식사를 하면서 강의전에 학생들을 주안에서 조금은 볶아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왔다. 오늘 강의는 Evidence-based practice라는 주제 였는데, 지난주 "research"에관한 주제에 이어서 참으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주제라 혹 다음주 쯤으로 때를 다시 잡아 보아야 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유혹도 살짝 왔다. 

나의 분야가 recreation therapy이기에 학생들의 생각이 좀 느슨한것 같다. Physical therapy로 가기에는 화학이나 다른 과목에 자신이 없고, occupational therapy까지 가려면 석사과정에 들어 가야 하는데 더 공부 하기는 싫고, Nursing에 들어가려고 1-2년 기다렸는데 입학허가서를 받지 못해서 할 수 없이 recreation therapy로 오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 또 어떤 아이들은 Pre-Med프로그램에 있으면서 recreation therapy라는 과목이 재미있어 보여서 복수전공으로 공부하는 아이도 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전공을 선택하면서 학업에 대한 교수의 기대감을 가진다. 특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과목의 도전감인데, 이는 분야별로 상이하다. 내가 과연 공부를 따라 갈 수 있을까? 좋은 학점을 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당 해야 하는가? 이같은 질문은 분야를 선정할때 고려해 보는 질문중 중요한 부분이 되곤 한다. Biochemistry를 전공하는 내 아들녀석은 아침 일찍 부터 저녁 늦게 까지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를 닮아 머리는 잘 돌아 가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의료선교에 대한 마음을 주셨으니 치대로 진학을 해야 되고, 그러다 보니 생물학이나 생화학을 전공해야 하는데 없는 능력으로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따라서 말그대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공부 한다. 이녀석의 facebook은 늘 조용하다. 잡담하고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분야인 recreation therapy, recreation, physical education, dance는 전공 하는 아이 든지 비 전공 아이들 이든 일단 쉽게 생각한다. 더 안타까운것은 가르치는 교수들도 그렇게 생각하는듯 하다. 내가 다른 교수를 그냥 비하 시키며 그들의 안일함을 탓 하는것 만은 아니다. 칼빈대학 오기 전에 교수로 사역하던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Ohio University, Indiana University에서도 나의 관찰과 경험은 비슷하다. 나의 관찰과 경험을 뒷받침하는 나의 증거는 다음과 같다. 보통 우리 학과 내지 단과대학의 모든 전공자들이 공통적으로 들어야 하는 capstone혹은 core과목을 가르치다보면 학생들이 불평이 다음과 같다. 왜 당신의 과목은 유별나게 힘드냐는 것이다. 이같은 불평을 달리 표현 하면 다음과 같을 수도 있다. "다른 교수들은 적당히 읽히고, 적당히 과제물을 주는데, 왜 당신은 그들처럼 비슷하게 하지 않고 더 많이 공부하게 함으로 나를 힘들게 하느냐," 뭐 이런것이다. 당신 과목 하나가 다른 과목 두개 듣는것하고 비슷하다... 라고 엄살 부리는 학생들도 있다. 물론 나 보다도 훨씬 더 학생들을 향한 큰 기대감과 도전감을 주는 교수들도 분명히 있지만 이들은 이렇게 엄살을 떤다.

이들의 엄살 이면에는 사회에 나가서 월급을 많이 받는 분야도 아닌데 공부로 너무 애먹이지 말라는 묵시적 반항 일 수도 있다. 어짜피 의사나 변호사들 같이 좋은 대우를 받지못할 분야 인데, 지금 잘 놀아야지 그렇게 죽어라 공부하면 너무 억울한게 아니냐는 핀잔 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행히 이렇게 불평하는 아이들의 영어를 잘 알아 듣기가 어려워 언어의 장애를 심각히 느낀다. 결국 벽에다 대고 이야기 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는지 주제를 얼른 바꾸는 똑똑한 아이들도 있다. 그땐 나의 영어 실력이 금방 회복 된다. 

여하간 많은 독서를 다 감당 못하니 대충 읽고 수업에 들어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 Tornado quiz라는 것이다. 아무 예고도 없이 토네이도는 들이 닥치고, 또 한번 들이 닥친 tornado는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다. 나는 어느 한 과목에 tornado quiz를 다섯번 본다. 보통 tornado quiz는 지난번 강의 내용과 당일날 강의를 위해 읽어야 할 내용에서 추려내기 때문에 아이들은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해와야 피해를 면할 수 있다. 더우기 언제 들이 닦칠지 모르니 항상 준비해 두어야 한다. 아예 날짜를 정하거나 미리 예고만 해주어도 좋지 않겠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그러니 그동안의 불평은 제법 되었다. 

그러나 감사히도 아이들이 이번 학기에 잘 따라와 주었다. 책과 읽어야 할 여러 논문들에 노란색 및 핑크색 하이라이트펜이 잘 쳐져 있고, 어떤 아이들은 미리 요점을 정리해오고, 수업전에 미리 와서 읽고 암기하며 부지런을 떤다. 얼마전에는 그 tornado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 미리 예비 tornado quiz를 보였는데, 아이들이 그 여파로 많이 긴장해 있음을 보아 왔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가 준비한 "들들 볶기 위한 설교"는 진행이 되어진 것이다. 나의 첫 질문은 "How do you define "excellence"? 우리의 토론은 제법 진지 하였다. 왜 B보다 A가 더 우수한 것이냐? 돈을 더 많이 버는것이, 남들 보다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더 excellent한 삶이냐? 뭐 이렇게 진행 되다가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누구의 눈에, 누구의 잣대로"보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느냐 까지 대화가 진행 되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잣대에 우리의 성공과 excellence를 맞추어야 한다. 이같은 결론에 몹시 흡족하여 나는 오늘 준바한 나의 볶음밥 요리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후식으로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 남기고 본 강의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만일 너희의 모든 노력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노력이 아니였다면 오늘 당장 회개 하거라!" 

하나님, 학업에 관련된것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곳 대학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같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또 심각히 반응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노력중 하나님 나라를 향하지 못한 모든 노력들을 회개 할 수 있도록 이 학생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혹시라도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주리를 틀고 있는 숨겨진 우상이 있다고 하면 그것들을 주님앞에 꺼내어 놓고 부수워 버릴 수 있도록 이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림출처: http://www.iamsoz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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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23:20

교수의 진정한 기쁨

어제까지 채점으로 바빴다. 내일 부터는 더 바쁘고 힘들것 같다. 채점거리가 책상위에 잔뜩 쌓여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주의 날 이라 채점을 멈추고 마음을 주님께 고정시키려 애썼다. 채점해야 할 페이퍼들이 눈에 들어 올때마다 유혹이 생겼지만 오늘은 주님만 응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제까지 채점한것과 지난학기를 회고해 보며 오늘 크게 기뻐할일 하나를 발견했다. 학생들의 변화이다. 지식의 변화도 분명히 생겼다. 제법 어려웠던 개념들을 아주 잘 소화하여 정리한 내용들을 읽어가며 대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참으로 기쁘게 했던 것은 이들의 삶의 태도 변화에 대한 고백을 읽을때 였다. 아이들이 쓴 에세이를 읽으며 지식의 자랑보다 마음의 변화를 적은 글의 내용을 찬찬이 읽으며 큰 기쁨을 느꼈다. 전에 갖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이다.

전에는 아이들이 개념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것을 현장에 잘 적용하느냐가 나를 기쁘게 했고, 그것으로 내 스스로의 강의 능력을 평가하곤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험을 채점하면서 쉬운 질문에도 빗나간 대답 및 모호한 대답을 읽으며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채점하곤 했었다. 그리고 제법 까다로운 질문을 다소 정확하고 깊이 있는 대답을한 답안을 읽으며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같은것들 보다 사람의 변화가 나를 정말 기쁘게 한다. 시험답안속에, 그리고 텀 페이퍼에 담긴 글 가운데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대하면 감사가 튀어 나온다. 수업을 빼먹고 불성실 하였던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며 부족하지만 끝까지 시험문제에 답을한것을 보며 나는 몹시 기뻤다.

교수인 나는 지식 전달자와 지식 창출자만이 아니다. 교수인 나는 나의 전공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조명하고 그 안에 발견된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들이 심령에 변화를 받아 삶이 변화해 가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리사의 변화, 불성실했던 앤드류의 성실성, 불평스런 말을 습관처럼 던지던 제니퍼가 감사의 표현으로 수업을 마치던것... 나는 이 맛으로 교수하고 있다. 이국땅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용하시는것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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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6 15:59

칼빈대학에서의 강의

전에 있던 대학에서도 강의하는것이 참으로 재미있었지만, 칼빈대학에서의 강의는 참 신난다. 학부학생만 가르치지만 학생수가 아주 마음에 든다. 내 전공 분야 과목에는 7명의 학생이 있고, 여가철학 강좌에는 14명의 학생이 있다. 학부생이지만 꼭 대학원 수업같이 많은 토론을 한다.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서도 재미 있지만, 그들을 깊숙히 알아가서 더 재미 있다.



"재미" 혹은 "신난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같은 경험은 강의 중에 주로 있고, 강의를 마친뒤는 큰 보람을 느낀다.  전에 있던 대학에서 못 느끼던 것이다. 즐거움 + 만족 + 소명 + 감사 들이 혼합된 그런 감정이다. 언어가 감정을 따르지 못해 안타까우리 만치 칼빈대학에서의 강의는 너무 좋다.

어떨때 내가 강의 하는지, 혹은 설교를 하고 있는지 착각될때도 있다.  칼빈대학은 학문과 신앙의 통합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지식체계를 창출해 내기를 권유한다. 나를 신나게 하는것은 바로 이같은 학교의 기대감 때문이다. 강의 준비는 꼭 성경공부 같이 느껴지고, 강의는 설교 같이 느껴지는 이 기쁨이란... 

어떤이들은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립대학에서 그같은 것들을 나눌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나에게는 너무 신나는 일이다. 지금 생겨나는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 큰 호수가에 던져진 조그만 돌이 만들어내는 물결같이 미약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통합의 강도가 센것과 약한것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이같은 통합을 시도하기 위해 해야하는 충분한 묵상과 기도가 나를 늘 하나님께 주목 시키기 때문이다. 이같은 통합을 위해 자건거를 타고 학교를 오가며, 걸으며, 쉬며, 음악들으며 계속 묵상을 하게 된다. 

죄가 관영하는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인본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지식체계를 성경의 진리로 조명하는 일은 중요하다. 잘못된 지식체계를 성경의 진리로 분별하는 일 뿐 아니라, 잘못된것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탐색해 보는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다행이 나의 분야는 통합이 다소 쉬운편이다. 장애, 치료, 행복, 성장, 인간관계, 상처 등등의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학, 수학, 통계 등 그 통합이 어려운 분야도 있다. 그러나 그 분야를 가르치는 이곳 칼빈대학 동료교수들의 노고와 그 결과들을 보면 놀라웁다.

여가철학 강의는 예배로 시작된다. 왜냐하면 수업이 아침 8시35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자 마자 아침도 거르고 달려온 학생들과 함께 그때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이들은 어쩌면 하루 종일 방황 할 수도 있기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서로 돌아가며 예배를 인도하자고 했다. 인도자는 수업 10분전에 와서 찬송가나 가스펠송을 틀어 놓고 모두를 위해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한다 (한 학생이 사미먼과 가펑클의 노래를 튼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학생 모두가 (거의 4학년생) 예배인도를 아주 잘 한다는 것이다. 그 지체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기쁜지 모른다. 

모든게 신나고 좋지만 힘든 부분도 있다. 내가 준비한 부분만 강의를 하면 쉽지만,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하실일을 남겨두는 작업이다. 내가 조정하면 만사가 쉽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부분을 기대하며 맡기는 부분은 사실 긴장이 된다. 미리 그날의 강의내용을 철저히 알고 강의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떨때 생각치도 않던 것들이 내 생각에서 뛰쳐 나오고, 내 입으로 토해낼때 비로서 알게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분명 그렇게 하나님께 배운 학문과 신앙의 충돌은 너무 귀한 가르침 이라 적어두려고 애쓰고 있다.  

내것으로 꽉 채우고, 그것을 내가 끝까지 주장하게 되면 내가 만족하는 방식으로만 마쳐진다 (그렇게 마쳐졌을때도 사실 제법 많았다). 그러나 알찬 인사트 (통찰)는 얻지 못한다. 이렇게 설명하자니까 좀 신비주의적으로 들려질까봐 사실 나눔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그분께 철저히 맡겼을때 그분께서 하시는 부분은 감추고 싶지 않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일것이다. 우리의 삶을 신앙과의 통합하여 살아가면 어떨까?  삶의 많은 부분과 영역에서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바라며 살아간다면 최소한 그부분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제사가 아닐까? 그러나 그분의 도구로 이세상에서 그의 나라를 힘차게 바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자세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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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0 00:11

인디애나대학에서

아래의글은 2005년 eKOSTA (http://www.ekosta.org/197)에 기고했던 글이며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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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대학 어느 코스탄 교수

우리들의 삶은이야기 표현되어질 있으며, 우리의 이야기는 또한 삶의 모습을 조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는 삶에 의미를 가져다 주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누군지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야기를 아주 하시는 분임을 있다. 예수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는 참으로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eKOSTA에서 내게 글을 부탁할때도 “…. 몇몇 코스탄들의 이야기들을 실어 보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 복음에 빚진자로서이땅의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가정, 학교, 직장등에서 격게되는 고민과 갈등을 나누어 주시면…”이라고 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는 것이다. 내게는 예수님 때문에 할이야기가 많이 있음으로 쾌히 털어놓아 보겠다라고 답하였다.

나의 이야기

본래 나는 운동선수 였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2학년때 부터 빙상을 시작하여 한국체육대학졸업할때까지 앉아 있는 시간 보다 뛰거나, 자전거 타거나, 얼음위에 서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다른 운동선수들과 같이 수업을 거르거나 오전수업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특히 고등학교시절 학교에 나간 수는 한달이 채되지 않을정도로 운동만 하였다. 따라서 운동으로는 제법 유명해져서 나를 나로 정의 되어질 있는 것이운동선수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의 분위기는운동선수=무식한이 정의되어 지는 상황이었기에 누가 무식하다는 말만 내게 사용하면 상대방을 무조건 두들겨 패는 자존심에 문제가 있는 젊은 이였다. 자존심의 문제는 운동선수로서 “1 제일주의 남을 이겨야만 살아 남는 세계관을 형성 시켜 주었다. 그같은 정신으로 나는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많이 땄고, 그덕분에 예비고사 (지금의 학력고사) 점수와 관계없이 빙상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은 불편함 없이 들어갈 있는 자격을 고등학교 1학년때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에 따라 3학년때에는 남들과 같이 시험은 보아야 했고 에비고사에서 나는 120점의 점수를 받았다. 그점수는 당시 그냥 아무거나 찍으면 나올 있는 점수 였던것 같다. 왜냐하면 과목당 2-3 걸쳐 응답을 하여서 받은 점수 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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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나는 그렇게 소원하던 1980 동계올림픽을 나갈 없게 되자 운동을 그만두고 갑자기 교수가 되고 싶어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워낙 기초가 없었던 지라 나는 병원에 몇번 입원할 정도로무식하게공부하였다. 덕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로 들어갈 있었다. 대학원과정중 한번 입원했는데 고향인 원주 연세대학 병원에서 나의 병을 다룰 없다고 하여 서울대학병원으로 진급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서울대 병원에서 한달을 누워 있으며 젊음을 누워지내기가 너무 한심해 우연히 당시 지하실에 있던 교회에서 예배드리게 되었고 건강을 달라고무식하게기도 했다. 은혜로 수개월개월 후인 1984년에 미국의 University of Oregon으로 유학오게 되었다. 아름다운 Eugene 도착하자 마자 주변에예수쟁이들이 벌떼 처럼 달려 들었다. 특히 Nevigator아이들이 많이 못살게 굴었지만, 모국에서 처럼 사람을 구타할 없어 많이 참았다. 덕분에 예수님을 많이 있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김치찌개를 아주 맛있게 끊여 대접하는 한국교회에 음식때문에 정기출석 하였다. 그당시 나는 교회 예배하러 간것은 결코 아니었고 한국식당쯤으로 생각 하였다. 제법 단골손님이 되자 교회에서는 나를 서리 집사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직분을 제대로 감당해 보려고 성경공부를 부지런히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즈음에 예수님을 믿고 있었던 아내를 여름방학중 모국에서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다. 집사라 믿음이 좋은줄 알고 결혼했던 아내는 결혼후 바로 내게 믿음이 없음을 알고 새벽기도를 하며 나를 위해 중보하였고, 나는 그런 아내를 심하게 핍박하였다 (핍박속에 구타는 없었음을 명시한다). 여하간 공부를 열심히 한덕분에 1990년초에 여가학 (Leisure Sciences)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국에서 직장을 빨리 잡아보려고 졸업도 하기전에 귀국하였다.

당시 여가학 박사가 드물었던 지라 쉽게 교수자리 잡을 있을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출신학교가 운동은 잘하지만 공부로 별로 유명세가 없는 지라 나는 여자전문대학교 야간 수업에서 교양과목 하나를 가르치며 나머지 시간을 집에서 아이를 보았다. 왜냐하면 집에서 아기를 키우고 밥만하던 아내는 귀국전부터 연세대학에서 강의자리를 여러개 받아놓은지라 나는 아내를 외조할 밖에 없었다. 아침에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 아빠는 하나였고 엄마들의 눈총은 나를 얼마나 부끄럽게 하였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낮추심이 그곳에서 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것을 그당시에는 몰랐었다. 낮추심은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는 방법이었고, 그것은 아내의 기도 응답이었다. 당시 아내는 하나님께서 나를  광야같은 미국으로 다시 보내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달라고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The University of Georgia Post-doc하러 오게 되었고, 그곳에 있던 몇몇 형제들의 열성어린 중보와 섬김, 아내의 기도 등으로 어느날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마음 활짝 열고 영접하게 되었다. 캠퍼스 산책중 갑자기 그동안 귀로 듣고 간간히 성경공부를 통해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성경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오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무한한 기쁨을 체험하였다. 나의 죄가 하나님께 얼마나 죄송했던지, 그리고 그런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나를 대신 하여 돌아가셨다는 사실로 인해 나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되어 울고 웃는 미친사람처럼 캠퍼스를 걷다가 결국은 창피하여 연구실에 들어와 하나님께 감사와 회개기도를 한참드렸다. 학자로서 느낌보다는 사실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지만 성경의 내용들, 특히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참으로 분명한 사건으로 깨닫아 지는 은혜를 체험하였다. 그뒤 나의 세계관은 온전히 바뀌고 성경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계속 다듬어가고 있었다. 나만을 생각하고, 나의 성공을 무섭게 추구하던 사람이 남을 사랑하고 섬기는 기쁨을 서서히 체험해 가고 있었다.

그뒤 Florida International Univeristy Ohio University 에서 각각 3년씩 교수로 보냈다. 특히Ohio University에서는 이근상 목사님의 스파르타식 성경공부, 전도훈련, 새벽기도 등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처음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했고 훈련 받았다. Ohio University에서 2년째 되던해 지금 재직하고 있는 Indiana University 교수채용 공고가 났었으나 새벽기도하던중 하나님께서 계속 남아있으라는 인도함 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자훈련을 계속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순종하였다. 인디애나대학은 사실 나의 분야로서는 미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라 이미 다른 사람을 채용했다라는 소식을 학회에서 들었을때는 순종을 잠시 후회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소위 내노라하는 좋은 학교는 기존의 같은 전공 교수가 은퇴하거나 그가 다른 대학으로 옮기지 않는한 다시 교수채용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한학기에 3-4과목 가르쳐야하는 Ohio 대학이 주님께서 나를 있으라 대학이기에 그곳이 제일 좋은 대학이라고 믿으며 기쁘게 남아 있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좋은대학의 교수라는 육신의 정욕을 믿음으로 포기한것이었다.

나는 계속 제자훈련 받으며 그곳 생활을 철저히 즐겼다. 성경공부와 새벽기도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이 었는지 모른다. 그러던중 3년이 채워지기도 전에 Indiana University에서 편지가 왔다. 지난해 오기로한 교수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였지만 오기를 거부해서 다시 교수채용을 하니 응모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시 기도하며 인디애가 가는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까 여쭈는 가운데 평안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마침 구약과 신약을 개관하던 성경공부의 교제도 거의 끝나는 상태이기도 했다. 나는 지원 하였고, 인터뷰하자는 제의를 한달뒤 받았으며, 그뒤 학교로 부터 공식적인 Offer 받았다. 그러나 제의를 그자리에서 수락하지 않고 기도할 시간을 가지려고 1주일의 시간여유를 부탁했다. 뛸듯이 기뻤지만 나와 아내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 하려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6일째 되도록 아무런 응답이 없었으나 7일째 여호수와 1장의 말씀을 통해 떠나도 된다는 하나님의결제 받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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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이곳 인디애나대학에 와서 한인기독 학생회 (Indiana University Korean Christian Fellowship 혹은목요모임”) 지도교수를 하며 매주 목요일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매주 30-40분의 설교를 맡고, 설교를 위해 매주 10-20시간을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한다. 강의 준비는 몇시간 안해도 지난 여러해 동안 했던 것이고 평소 책과 논문을 읽고 새로운 글을 쓰고 있었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지만 말씀준비는 힘들다. 그러나 힘든 말씀준비는 교수로서, 미국에 사는이방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귀한 방편이 되었다. 오하이오 대학에서 tenure 받았지만 금년 이곳대학에서 다시 tenure 따낼 있었던 것도 말씀준비하고 설교하며 받은 하나님의 은혜덕분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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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나의 짦막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죄인이었던 때의 나의 모습이 있고, 구원 받는 과정속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신 주변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구원 이후에 어느 목자의 헌신어린 제자훈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제자로 캠퍼스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 죄인이었을때의 삶과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비록 간단히 이야기를 하였지만 1984년 유학온 이후의 이야기는 20년간 이방에서의 삶에 대한 재빠른 요약이다. 나는 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eKOSTA에서 요청한 몇가지 주제를 다룸으로 나의 이야기를 좀더 정리해 보려 한다.

이방에서의
미국에서의 삶은 흘어진 나그네의 , 이방 삶인것 같다. 언어뿐만 아니라 사고 방식에 있어서 우리와 친숙한 한국의 삶의 환경과는 참으로 다르다. 뿐만아니라 백인중심의 사회에서 얼굴 색갈이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으면 소수민족에 속한다. 따라서 이방의 삶은 소수민족의 삶이기도 하다. 물론 미래의 미국은 소수민족이 현재의 다수인 백인과 비슷해질것으로 추정하는 자료들이 많이 있지만, 과거와 오늘의 현실로 보면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살고 있는 우리는 소수에 속한다. 특히 유학생 시절 언어가 능숙치 못해 어려움 많던 시절에는 어른인데도 언어의 수준을 나이 수준하고 비슷하게 맞추어 대하려는 백인들을 대한적이 있다. 따라서 이방의 삶은 매끈한 삶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껄끄러운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신앙의 측면에서 보면 낮설고 광야같은 이방의 삶은 우리의 신앙을 단련하는 훈련장소 같다. 평소 의지하던 부모, 형제, 친척이 이곳에 없으며, 마음 편히 대할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 의지할 곳이 별로 없는 광야 같이 황량한 곳이다. 특별히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고 머리가 비상하지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 학업이나 교수의 삶은 결코 안락한 삶이 아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의 뒤에 서고 싶지 않고, 앞서자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능력이 부족한 나는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는 없는 광야의 삶을 살고 있다.

그뿐아니라 미국에서 학생으로나, 교수로서 다수인 백인을 섬기며 이끌어 나가려는 삶은 편안 하지만은 않다. 지난해 이곳 캠퍼스에 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가신 높은뜻 숭의교회의 김동호 목사님은 신앙생활을유격훈련장으로 비유 하신적 있다. 나는 현재 매학기당 두과목씩 강의 한다. 그외 박사논문 지도 학생 상담, 여러 회의 분주한 교수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말씀을 전해야 하기에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성경을 보면서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두과목 강의 준비보다 거의 두배의 시간이 들때가 많다). 때로는 지역교회 다른주에 있는 한인교회에 수양회 강사 혹은 지역교회 목사님 출타시 가끔 말씀을 전하는 역할로, 그리고 내가 속한분야 학술지의 편집장으로, 미국교회의 장로로, 세아이의 아빠로, 지역사회에서 사업을 하는 아내의 동업자/동역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 적힌 모든 역할은 쉽게 수행할 있는 단순한 일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조금도 감당할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동호 목사님이 삶은 유격훈련장 으로 비유하셨을때 나는 크게아멘하였다.

복음의 차원에서 보면 이방의 정의는 갑자기 바뀌게 된다. 하나님 믿지 않는 이들이 이방인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된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삶은 믿지 않는 이들을 감싸주고, 사랑하고, 섬김으로 살아가는 복음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현장이다. 믿는 자들이 미국에서 유학하며 이방백성들, 복음에 눈먼자들, 세상 성공과 물질의 욕심이라는 교도소에 같인자들, 상처로인해 억눌리고 삶을 절뚝거리며 사는자들은 복음으로 자유케 해야하는 귀한 사명을 가진 제자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며

나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모르는채 살던 운동선수의 삶으로 시작하여 미국에 유학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알게됨으로 이제 선택된 백성으로, 복음에 빚진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마치고 있다. “쥐뿔도 가진것이 없으면서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좋아서 살아가냐?”라고 묻던 어머니는 2003 미국 방문중에 구원받고 지금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 1995 나의집을 방문 하였던 여동생 역시오빠와 언니는 무엇때문에 저렇게 기쁘게 살지?”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가 귀국을 며칠 앞두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지금 지구촌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으로 섬기고, 자신의 시어머니를 전도 하여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 그외 여러 학생 방문 교수들을 도처에서 만나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지금 그리스도인이 형제.자매들이 여럿이 있다. 이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박사학위 마치고 교만의 어둠속에 살던 나를 하나님의 흩으심으로 조지아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제 대학 교수라는 직업을 주셔서 아직 은혜에 이르지 못한자를 향한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높여드림으로 나의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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