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내는 삶'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04.12 존 워너메이커
  2. 2010.01.05 새해에 함께 기억하고 싶은 자매
  3. 2009.12.25 어느 생일 파티
  4. 2009.01.06 칼빈대학 총장과 그의 집
  5. 2008.12.02 포악했던 갱(Gang)이 섬기는자로
  6. 2008.11.20 100가지 물건만 갖기
  7. 2008.11.14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8. 2008.11.13 인종우월주의라는 밭에 뿌린 그리스도의 향기
  9. 2008.11.07 향기내는 삶: 새 카테고리 시작하면서
2010.04.12 11:43

존 워너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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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주일에도 백화점 문을 열어서 매상을 높여야 합니다"
존: '나는 하나님의 날을 세상의 재물과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해리슨 대통령 (23대): "존, 당신의 탁월한 능력으로 체신부 장관을 맏아주시오"
존: '만약 장관직을 수행하는 일 때문에 주일성수와 교사 일을 못한다면 받아 들일 수가 없습니다."

어느 신문기자: "장관직이 주일학교 교사직 보다 못합니까?"
존: "장관직은 몇 년 하다 그만둘 부업이지만, 주일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동안 해야 할 나의 본업입니다. 주일은 나의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 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고 봉사하는 일은 나의 최고의 기쁨이자 나의 특권 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존 워너메이커!
그는 어떤일이 있어도 주일예배와 봉사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주님의 날을 주님께 온전히 드렸던 삶을 돌아보며
주일성수의 가치와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너무나도 바쁘고 일이 많은 이시대의 크리스챤들의
마음속에 작은 울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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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22:08

새해에 함께 기억하고 싶은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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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출신 25세 처녀 선교사 루비 켄드릭이 한국에서부터 미국에 있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병마와 싸우던 그녀는 1908 6, 충수염으로 천국으로 갔다. 아래 편지는 대한민국 (당시 조선)에 온 지 아홉 달 즈음에 쓴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이 곳 조선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 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어 오는 어린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서너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선교본부에서는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그들은 모두가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오는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 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 하겠죠?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제가 조선을 향해 가지는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해 가지신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출처팜비치 한인교회 (http://www.pbkc.org/xe/share_story/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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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5 19:21

어느 생일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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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그랜드 래피드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꼽으라면 당장 Glen이라고 대답한다. 서로 알고 지낸지는 약 8-9년 되었지만 이곳으로 이사 오고 부터는 자주 만난다. 서로가 마음속 깊은 아픔, 기쁨, 좌절, 가정 등 여러 내용의 것들을 서스럼 없이 꺼낼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친구라는 점에서 하나님께 늘 감사 드리고 있다. 친구 Glen은 Gloria라는 이름을 가진 아내를 가지고 있다. 둘다 칼빈대학 출신이고 이곳 캠퍼스에서 만나 결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은 글로리아의 생일이었다. 어떻게 생일을 보내는지 궁금하였다. 친구 글렌이 글로리아를 데리고 밖에서 외식하는지, 아니면 아름다운 꽃을 사거나 선물을 사서 가져 갈 것인지 궁금하였다. 그런데 주저하면서 내게 던진 말이 아직도 내 마음을 진동한다.

글로리아는 약 66세가 되었다. 친구 글렌 보다도 한살 더 위다. 글로리아는 교회 교인들중 12월에 생일인 할머니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생일 파티를 한다고 한다. 글로리아가 원하는 생일 파티에 초대되는 할머니들은 양노원에 계신 할머니, 혼자 외롭게 사시는 할머니들이 대상이다. 자기 생일에 남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리고 초대 받은 이들은 과자를 구워서 오면 되는 약간의 부담을 남겨 놓기도 한다. 많은 수의 할머니들이 와서 화려한 생인 잔치를 벌리는것이 아니다. 적은 수 이지만 간단한 음식과 케익, 구워온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교제하는 파티인 것이다.

나는 그동안 "향기내는 삶"이라는 카테고리를 블로그에 만들어 놓고 최근에 침묵만 지키고 있었던 차에 글로리아의 생일 파티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너무도 향기로운 기발한 생일 잔치인것 같아 이곳에 간단히 적어 보았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무엇을 하던 이 세상의 풍속을 좆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살아야 하겠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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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6 22:45

칼빈대학 총장과 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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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총장집에 갔었다. 그간 여러 주립대학에서 교수 해보면서 내가 섬기던 대학의 총장의 집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또 가 보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같은 평범한 교수가 그런곳 가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았던것 같다 (총장이 외부 잘 알려진 식당이나 멋진 학교 식당으로 초대하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칼빈대학 총장은 다르다. 나는 한 학기 동안 그의 집을 세번 방문하였다. 앞으로 더 가게 될것 같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지난 한해 48,000명 정도가 총장의 집을 다녀 갔다고 한다. 그냥 문을 열어 놓고 있었나 보다. 그 집에서 여러 사람들 만나 함께 기도하며 엄청난 숫자의 헌금/기부금이 들어 왔다고 한다.

나 보다도 키가 작은 우리 총장은 그의 집 문턱도 나지막 하다. 마치 문턱이 없는집 같이 사용하는것 같다. 예수님께 미친 총장은 그 집 사용이 다르다.

나의 집 문턱을 더 낮추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어제 내 귀에 속삭인 말이 있다. "말씀을 읽고 있을때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 하시는것 같았어. 우리의 것을 나눌때 우리에게 아무것도 되돌려 줄 수 없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섬기라!" 총장 집을 나서며 아내가 내 귓가에 들려준 하나님 말씀을 기억해야 했다.

우리대학 총장집 안과 밖의 사진을 몇개 찍었다. 총장집이 남의 집에 비해 크고 화려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보이지 않지만, 그가 그의 아내와 함께 어떻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집을 사용하느냐 하는 그 청지기의 삶은 더 아름답다. 집의 크기와 관계없이 그같은 청지기의 삶을 또 한번 기억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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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13:53

포악했던 갱(Gang)이 섬기는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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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래피드에 살고 있는 Zeke Ramirez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형제의 이야기다. 갱단에서 활약이 제법 대단했던 사람이였나보다. 주로 밤에 일을 하고, 어둠속에서 그 능력이 인정되어져서 주위 갱단원에게는 일명 "올빼미"로 잘 알려진 그런 사람이였다고 한다. 총으로 사람을 쏘아 중상을 입히기도 하고, 여러종류의 무기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인생을 살아오던 포악했던자였다.

그의 인생이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다고 한다. 예고 없이 중풍이 왔던것이다. 너무 증상이 심해서 사실 의사들이 가망이 없다고 포기상태까지 갔다고 한다. 결국 의사들은 그의 생명을 연명하던 호흡기를 빼는것을 가족들에게 제의했고, 그의 형제들은 그의 장례식 마져도 계획을 해야하는 단계였다. 그러던 그에게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아직 내 때가 아니다! (It's not MY time!)." 의역하자면 네 생명을 가져갈 하나님의 때가 아니다라는 의미일것이라 생각한다 (더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그때가 2004년 7월이었다고 한다. 장례를 준비하던 가족이 생명호흡기를 빼는것에 갑자기 반대를 하여 일단 그의 생명은 그렇게 연장이 되어졌다.

그의 육신의 생명은 그렇게 구해졌다. 그러나 몸이 기적적으로 회복한 그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다. 육신의 생명뿐 아니라 영생마져 얻은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 그의 삶은 더 이상 남을 해치는 갱단이 아니었다. 총과 무기대신 망치와 톱을 들고 그가 남을 도울 수 있는 Handyman으로 이웃을 돕는 삶으로 변한것이다. 복음은 정말 무섭도록 사람을 변화 시킨다. 세상의 어떤 좋은 교훈이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 형제는 주변에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어려움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웃 고양이 구출에서 부터 몹시 더운 여름 이웃집 뜰에 쓰러진 큰 나무를 끌어 내는일까지 서슴치 않는다. 또 칼을 휘둘며 학교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소년원에 들어온 아이를 상담하며 보살피기도 한다. 그는 또한 잔잔한 미소로 이웃을 대한다. 동네에 잘 알려진 갱멤버로 알려진 포한했던 그가, 아름다운 미소로 이웃에게 인사를 하며 행보를 한다 (중풍의 여파로 한쪽 다리를 끌며 다닌다고 한다). 과거의 그의 삶을 목격했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사람들에게 그의 삶은 복음이다. 그의 삶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흠씬 발하는 아름다운 삶이다.

이곳의 이야기는 교회 혹은 크리스쳔 잡지에 나온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그랜드 래피드에서 발행하는 뉴스중 한 이야기이다. 그의 얼굴이 인터넷 신문에 실려서 이곳에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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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0 13:47

100가지 물건만 갖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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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대학을 떠나 칼빈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재미있는것을 토의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할 만한 일상생활의 것을 찾아서 실행해보려는 것이다. 여가학을 공부하는 학도로 현장에 나가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직업으로 세상을 섬기되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칭찬들을 만한것이 없을까 서로 함께 고민해 본다. 그래서 과제중 하나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여가경험 수집하기"라는 것이 있다. 가상적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여가이야기 (Leisure Stories)를 수집해야 하는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자신이 수집한 샘픔을 설명해야 하고, 실제 인물과 대화도 나누어야 한다. 사실 칼빈대학의 교수하는 맛이란 이런것이다. 다른 대학에서 이같은 교육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매일 매일의 강의는 신명이 난다. 

어느날 아이들에게 물질주의에 대해 강의/토의한적 있다. 물질주의 자체가 많은이들이 숭배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버린 세상을 함께 마음아파하고 우리안에 은밀히 숨어 있었던 물질주의를 회개하며 토론하였다. 그래서 소개한 한 인물이 있다. 그것은 "데이브란 이름을 가진자" (guynamedave)이야기 이다. 데이브는 어느날 자신의 소비주와 맞장뜨기 위해 2008년 11월 12일 부터 2009년 11월 12일까지 100가지 물건만 가지고 살아보자라는 운동을 벌렸다. 물론 100가지 아이템 중에 가족과 공유하는 물건은 제외하고, 오직 자기 개인용품들만 포함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가진물건을 100개로 줄여서 산다는것은 쉽지 않다. 나는 넥타이만도 수십여개 되는데, 다른것을 포함시키기 위해서 넥타이를 가장 마음에 드는것, 선택할 다른 옷들과 잘 어울릴 색을 골라야 한다. 신발, 바지, 속옷, 양말, 펜... 무엇을 선택하고 제외해야 할지 그것은 쉬운 고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새로운것을 살때 한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지금도 머리속에 뱅글거리며 고민하고 있는데 가족과 함께 실천해 볼까 생각중이다.

여하간 이일을 시작한 데이브는 신앙인이다. 그의 삶은 정말 아름다운 향기를 내고 있다. 100가지 물건가지고 살기운동은 미국의 많은 지역, 많은 이들 뿐 아니라 다른나라 사람들에게도 확산되어 제법 큰 도전을 주고 있다. 그는 이일을 더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facebook에 동호인들/친구들도 많이 사귀어 토론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데이브와 그의 딸, 그리고 그의 가족 사진이다. 

* 이곳의 두 사진들은 http://www.flickr.com/photos/guynameddave/sets/72157600162805536/
에 나온 그의 가족 앨범에서 퍼온것이다.

데이브가 선택한 100지 항목중 98항목을 소개해 본다. 12일날까지 수정한 항목들이다. 아래 보다시피 제일먼저 선택한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REVISED LIST November 12, 2008

   1. NRSV Bible with Prayer Book
   2. ESV Bible (easier to carry around)
   3. Library (my one big exception - books!)
   4. Need Magazine subscription
   5. Journal
   6. Mechanical pencil
   7. Ballpoint pen
   8. Wallet
   9. Sunglasses
  10. Watch
  11. iMac
  12. Printer
  13. Cell phone
  14. Headphones
  15. External hard drive
  16. Camera
  17. SD card for camera
  18. Backpack
  19. Tent
  20. Sleeping bag
  21. Sleeping pad
  22. Sleeping pad (plan to consolidate)
  23. Stove
  24. Cook set (2 pots, 1 lid, 1 handle)
  25. Spork
  26. Headlamp
  27. Knife
  28. Climbing wall
  29. Climbing shoes
  30. Chalk bag
  31. Mittens
  32. Wool hat
  33. Rain jacket
  34. Rain pants
  35. Thermal shirt
  36. Thermal pants
  37. Garment bag
  38. Suitcase
  39. Travel/work backpack
  40. Home office desk
  41. Desk lamp
  42. Home office chair
  43. File cabinet
  44. Car
  45. Planet Earth DVD
  46. Toothbrush
  47. Razor
  48. T-shirt
  49. T-shirt
  50. T-shirt
  51. T-shirt
  52. T-shirt
  53. T-shirt
  54. T-shirt
  55. T-shirt
  56. T-shirt
  57. T-shirt
  58. Wicking shirt
  59. Running shorts
  60. Running shorts
  61. Board shorts
  62. Shorts
  63. PJ pants
  64. Undershirts (5)
  65. Underwear (12)
  66. Suit jacket
  67. Suit pants
  68. Dress pants
  69. Dress pants
  70. Jeans
  71. Jeans
  72. Tie
  73. Dress shirt
  74. Dress shirt
  75. Button-down shirt
  76. Button-down shirt
  77. Button-down shirt
  78. Button-down shirt
  79. Button-down shirt
  80. Button-down shirt
  81. Button-down shirt
  82. Button-down shirt
  83. Button-down shirt
  84. Button-down shirt
  85. Button-down shirt
  86. Brown belt
  87. Black belt
  88. Brown sweatshirt
  89. Canvas dresser
  90. Socks (?)
  91. Brown shoes
  92. Black shoes
  93. Running shoes
  94. Flip flops
  95. hand-me-down Bible
  96. Wedding ring! (forgot that until yesterday)
  97. Moo.com business cards (for guynameddave.com - probably a "business" thing and not a "personal" thing, but they are *so* cool that I feel guilty not counting them)
  98. Sw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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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4 14:20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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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글은 1994년 3월 12일자 World라는 미국 기독교계 잡지에 실린 글로 칼빈신학대학원의 선교학 교수이신 Roger Greenway의 선교 간증문이다. 본 글은 또한 칼빈신학대학원 주간지 Kerux에서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것"으로 소개된것을 번역한 것이다. 나는 이곳에 소개된 이야기를 지난 여름 조장코스타 예배시 설교의 예화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누구도 할 수 있는 이 같은 일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실천되어지기를 소망한다. 그같은 그리스도의 향기는 복음의 귀한 능력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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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인도에서Operation Mobilization이란 선교단체의 일원으로 사역하던 중 나는 결핵을 앓아서 결핵병동에 수개월간 입원 하였었다. 그 당시 나는 전도지를 환자, 의사, 간호사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저분한 시립병동에 나 같은 부유한 미국인이 입원한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모든 미국인은 부자로 보였다.) 그들은 OM 단체와 함께 일하는 나도 그들처럼 상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병들었다는 것,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 언어 장벽으로 인하여 예수를 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전도지나 요한복음 책자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하여 나는 몹시 낙심되어 있었다. 첫 몇 일 동안 나는 심한 기침으로 인해 새벽 2시경에 깨어나게 되었다. 어느날 아침 평소와 같이 기침약을 먹으러 일어났을 때, 맞은 편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나이가 많고 몹시 약해 보이는 한 노인환자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의 침대 가장자리로 옮겨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연약하여진 건강으로 인하여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나는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는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침대에 누웠다. 그때 나는 그가 조용히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가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단지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려 하였었다. 그러나 그의 병약한 몸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그의 침대에 볼 일을 보았던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 우리 병동은 난리가 났다. 대부분의 다른 환자들은 그 냄새로 인하여 그 노인에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간호원들도 뒷처리를 하여야 했기 때문에 몹시 화를 냈다. 그들은 청소를 하기 위하여 그 노인을 이쪽 저쪽으로 밀쳐댔다. 한 간호원은 분을 못이겨 그 노인을 한대 쳤다. 그 노인은 견딜 수 없는 수치감에 몸을 공처럼 말고서는 흐느꼈다.

 

그 다음날 밤 역시 새벽 2시경에 나는 기침으로 인하여 눈을 떴다. 나는 그 노인이 다시 화장실을 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힘이 부족하여 그 전날처럼 뒤로 쓰러졌다. 나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다. 더러운 악취를 싫어한다. 그러한 일에 휩쓸리기를 싫어한다. 나 역시 환자였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었으나 내가 다가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몸을 숙여 그의 어깨를 만졌을 때, 그의 눈은 두려움에 젖은 의아스런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단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머리와 목 밑으로 한 손을 넣고 그의 다리 밑으로 다른 손을 넣어 그를 안아 들었다.

 

비록 나는 병들고 약했지만 그 노인보다는 건강했다. 그는 나의 많고 결핵이 깊어 몹시 가벼웠다. 나는 복도를 걸어서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은 몹시 냄새가 나고 더러우며 조그만 방에 단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나는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부축하여 그가 일을 볼 수 있게 했다. 그가 일을 마쳤을 때 나는 그를 다시 안고 그의 침대에 가 뉘었다. 내가 그를 침대에 내려놓을 때 그는 나의 뺨에 키스를 하고 웃음을 보이며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여겨지는 어떤 말을 건네왔다.

 

그 다음날 일어난 일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가 알지 못하였던 한 환자는 새벽 4시경에 향이 그윽한 따뜻한 인도차를 손에 들고 나를 깨웠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손짓을 하며 전도지를 원한다고 했다. 해가 떴을 때는 다른 환자들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그들도 전도지를 나눠 달라고 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은 쪽복음과 전도지를 구하러 왔다. 간호원들, 병원 수련의들, 의사들, 마침내 그 병원의 모든 사람이 전도지, 쪽복음 혹은 요한복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다음 며칠간 몇 사람들은 그들이 복음을 읽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었다고 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였는가? 분명 건강이 아니었다. 지적으로 감동적인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건강과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으로 그들이 복음에 그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셨는가? 나는 단순히 한 노인을 화장실로 데려간 것뿐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진은 Google Image Search (http://images.google.com/)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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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3 22:08

인종우월주의라는 밭에 뿌린 그리스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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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디애나대학에서 교수 시작하던 그 해,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생겼다. 1999년 7월 4일 이었다. 그날은 주일이기도 했지만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겹친 날 이었기도 하다. 바로 그날 블르밍튼 한인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윤원준 형제가 Benjamin Smith라는 이름을 가진 KKK단원이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져 즉사한 사건이었다. 다른 주에서 학부를 마치고 인디애나대학에서 대학원과정을 공부하던 유학생이었다.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슬퍼했고, 인종우월주의에 대한 심각한 논의도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시끄럽게 보도되어 지기도 했다. 나를 슬프게 하는것은 이 사건은 미움으로 시작 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용서가 선언이 된 놀라운 사건었음에도 미국의 여러 신문과 토론에는 인종문제로 인한 미움에만 촛점이 맞추어진것이다. 늘 백인으로 부터 차별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 African American과 소수민족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그들이 그동안 받아 왔던 미움과 아픔을 폭로하는데 사용하였을뿐 그 사건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아름다운 용서, 그리스도의 그윽한 향기를 들어내지 않았다.

그 사건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하는 귀한 사건이 다시 강조되어 져야하고, 기억되어져야 한다. 윤원준 형제가 희생당한지 며칠이 지난 7월 12일 오후 미국 전역에는 추모예배의 광경이 방영되고 있었다. 거룩한 예배의 모습이 방영이 되어지면서, 예배의 마지막 부분 가족의 인사말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원준형제의 사촌형인 박성호 목사가 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를 나눈 그 사랑의 메세지 때문이었다. "나는 가족을 대표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형제를 죽인 Benjamin Smith를 용서할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사랑하는 형제의 꿈을 빼앗아가고 피를 흘리게한 이 미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용서를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 입니다."

그날 그 향기를 맡은 어느 한 목사는 "치유와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낸 신문의 칼럼에서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이 보여준 용서의 모습은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는 근본적인 욕망을 가진 우리 인간에게 희망과 치유의 증거가 되어줄 수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아직 인디애나대학에서는 원준형제를 기념하는 "Won Joon Yoon Memorial Fund"가 있어서 사회에 아름다운 향기를 들어낸 재학생중 한명을 매년 선발하여 장학금을 준다.

여하간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 그 사건이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자꾸 희미해 지지만 우리들은 그 미움의 밭에 뿌려진 용서의 향기를 잊어서는 안될것 같다.

* 윗 포스터는 http://www.indiana.edu/~iuksa/ywj/index-eng.htm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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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7 16:41

향기내는 삶: 새 카테고리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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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시작한것은 내 삶을 사랑하는이들과 나누기 위해서 였다.  그냥 잡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늘 나를 먼저 점검하게 된다. 그리고 내 삶의 현장에서 믿음의 삶이 무엇인가를 더 생각하게 된다. 

나는 교수이다. 학생때 보다 교수때 더 많이 배운다. 나의 것을 나누기위해 더 많이 배워야하고, 생각해야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학술지에도 제법 많은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목적은 안쓰면 직장도 못잡고, 또 테뉴어를 얻지 못하는 불상사를 낳기 싫어서도 있지만 더 배우기 위해서였다. 학술지에낼 원고를 쓰면서 학자로 자리잡아감을 느꼈다. 연구에 관심없는 교수도 많이 본다. 특히 모국에 있는 선배, 동료 혹은 후배교수들중 연구에 관심이 없는이들을 많이 보았다. 어떻게 글을 쓰지 않고, 연구하지 않고도 교수를 잘하는지 궁금했고, 또 어떻게 학자로 자라가는지 의아해할때가 많았다.

생각의 나눔은 뽐냄의 작업이 아니라 겸손의 작업같다. 그래서 더욱 더 진솔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도 해본다. 특히 학술논문쓸때는 표현을 너무 단호하게 안하려 애쓴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지식이 마치 절대적인양 표현하고픈 충동을 겸손히 물리쳐야한다. 

나는 신앙을 가진 교수이다. 따라서 나의 전문분야를 성경이라는 잦대를 통해서 세상을 보아야 하고, 또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체계를 신앙의 눈으로 날카롭게 바라보아야하는 그런 교수이다.  뿐만아니라 그리스도가 그리도 원했던것 처럼 깨어진 샬롬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것이다. 거져 받은것 거져 나누어 주는 의미에서 나의 삶을 나누고 싶어 블로그를 시작했다.

읽는이들이 한명 혹은 두명이라도 좋다. 그냥 이 블로그를 통해 하나님을 자랑하고 높이고 그분을 기뻐해보려한다. 그런 과정속에 오늘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삶을 살아가며 내 주변의 실제 삶속에서, 그리고 웹을 방문할때나, 또 여행을 통해서든 어느곳 어느때를 상관치않고 향기내는 삶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 다음의 말씀이 적혀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실제의 삶속에서 그같은 향기를 냄새 맞고 또 그같은 향기를 남들과 나누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과정속에서 결국 나의 삶과 읽는이들의 삶이 그렇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삶이 되면 좋지 않을까? 우선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카테고리를 오픈해 보았다. 
*사진은 Google Image Search (http://images.google.com/)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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