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사역'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04.06 John과의 만남
  2. 2009.12.02 인생의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고 따르는가?
  3. 2009.10.02 하나님 나라를 위한 노력이 아니였다면 ... (5)
  4. 2009.06.10 굿 바이, 채점회피 증후군!
  5. 2009.06.10 브라이언과의 씨름 (2)
  6. 2008.12.14 교수의 진정한 기쁨
  7. 2008.12.11 승리한 리사 (Lisa)
  8. 2008.12.06 금년의 첫 크리스마스 카드
2010.04.06 17:48

John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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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가명칼빈대학 학생이다칼빈대학에는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어서 학교에서 나에게 학생하나를 멘토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여 최소한 한해 한명은 기도하면서 성실히 섬길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고 허락하여 만난 학생이 John이다나와 John은 격주에 한번씩 만난다보통 두시간어떨땐 조금 넘을때도 있고 또 모자랄때도 있지만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난다.

지난 가을 학기 부터 시작하여 이번 봄 학기 까지 꾸준히 만났다만남 초기의 대화는 삶의 문제를 꺼내 놓고 그 해결을 위한 상담이었다삶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과 지혜가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이다주로 만남이 있기전 우리의 만남 앞두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또 우리의 만남을 의탁드린다.이렇게 우리들은 만난다.

John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의 상담에서도 나는 비슷한 방법을 취한다그냥 기도하고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좀 세련된 방법은 아니고좀 무식해 보일 수도 있는 방법이지만 나는 이같은 접근을 아주 좋아한다그동안 여러 학생들과 교제하고 상담하는 과정 속에서 얻는 귀한 통찰이 하나 있었다엄청나게 멋있게 들려지는 그런 통찰이 아니고 이미 성경에 수없이 많이 제시된 보편적이며 단순한 진리이다,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을 떠남혹은 하나님 보다 나와 사람을 더 의지함에 있다는 것그러기에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하나님께 돌아감 혹은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함에 기인한다는 성경적 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기도하며 John을 만났다. John은 교회도 다니고 있었고또 칼빈대학 같은 크리스쳔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에 나는 그가 하나님을 잠시 떠난 상태이거나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줄 알았다그러나 우리들의 두번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은 John의 문제가 하나님을 떠남에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것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도와 주셨다즉 기도중 그같은 의심이 생겨 났고구원에 대한 확인이 있어야 한다는 강열한 생각이 솟아난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우리의 대화는 복음제시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 John은 좀 놀라는듯 했지만, 자신의 신앙의 상태에 대해서 매우 솔직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내게 분명히 대답하는 매사 분명한 아이였다. 나는 대화식으로 구약과 신약을 이야기 하며 교제 하였다그렇게 몇번을 만나다가학기말 시험이후 John과 그의 여자친구를 함께 우리집으로 점심 초대 하였다. John의 신앙상태를 알기 시작하면서또 집으로 초대해 놓고 나와 우리 가족은 매일 저녁 John의 구원문제를 위해 기도하였다. John에게 나의 가족도 소개하고또 점심을 함께 먹으며 많은 이야기 하다가 기회를 내어 사영리를 가지고 복음을 제시하였다놀랍게도 John은 여자친구가 지켜 보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영접하였다그날 처음 만났던 John의 여자친구였지만그녀는 내게 이 순간을 위해 제법 끈질기게 기도하였다고 귀뜸해주었다그래서 나도 이 순간을 위해 눈물을 뿌리며 끈질기게 기도하였다고 귀뜸해 주었다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을 함께 고백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하나님의 자녀가된 이후 봄학기에 가진 우리의 첫 만남에서 John은 삶의 여러 문제를 더 이상 가져 오지 않고 신앙성숙과 관련된 질문들을 하였다어떤 질문에는 스스로가 묻고 대답하기도 하는데 그 대답들은 John의 신앙 고백으로 들려 졌다전에 나누었던 삶의 혼돈 및 장래에 일어날 염려에 대한 질문은 우리들의 대화에 조금도 끼어들 수 없게 되었다결국 예수님 없는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고예수님 있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임을 다시 실감한 복음전도 였고또 멘토링이였던 것이다.

크리스쳔 교수의 참 맛은 학생이 좋은 직장으로 좋은 보수를 받고 일하게 되어서가 아니다또 한학기를 잘 가르쳤다고 학생들이 감사로 스타벅스 카드나 책을  선물로 가져다 주어서도 아니다학기말에 주로 행해지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좋아서 또한 아니다크리스쳔 교수로서 가장 신나는 일은 강의실과 강의실 밖에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그리스도를 모르는 학생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알게되는 일이다영원이라는 차원의 엄청난 사역을 보잘것 없는 나에게 맡긴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 하시다.나는 그같은 하나님이 너무 좋아 오늘도 혹 내게 맡기신 영혼이 없는지 호시탐탐 기회를 옅보게 된다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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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15:05

인생의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고 따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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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이라 분주하다. 한학기 내내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한 텀 페이퍼를 채점하여 학생들에게 돌려 주는 과정에서 몇 학생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대화중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여학생들은 잘 운다), 몹시 흥분하며 화를 내기도 하였다 (남학생의 경우 잘 흥분하지만, 이 부분은 남.녀가 비슷하다). 한결같이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비판도 하였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 하나를 전에와 마찬가지로 금년에도 발견 하였다. 즉 실라버스 (Syllabus; 강의안) 를 대충 읽음으로 오는 문제인 것이다. 

학생들이 텀 페이퍼를 작성할때 범하는 몇가지 실수중 하나는 실라버스를 주의깊게 읽지 않는 것이다. 보통 실라버스 에는 교수의 강의 계획서와 기대 및 텀 페이퍼 작성 안내가 나온다. 교수가 실라버스를 작성할때는 보통 세부적인 계획을 학생들에게 제시 하며, 학생들이 그 계획을 잘 따라 주기를 기대한다. 교수가 실라버스를 작성할때는 그냥 하루아침에 기분에 따라 작성하는것이 아니고 전문분야의 특성과 세상환경의 변화에 따라 학생에게 가장 유익할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고민한 후에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성된 실라버스는 매해 마다 조금씩 바뀌어 간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거나, 지난해 도움이 되지 않았던것들, 또 학생들에게 혼돈을 주었던것들을 기억하며 보강해 나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장 유익할 과제를 철저히 검토한뒤 실라버스에 학생들이 반드시 다루어야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는다. 따라서 실라버스는 어떤 점에서 학생들이 충분히 소화해야할 아주 귀중한 자료인것이다. 그리고 실라버스는 어떤점에서 교수와 학생이 맺는 계약서 같은 것이다. 어떤 교수는 실라버스 맨 뒷장에 학생들이 "본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었고, 주어진 계획에 동의함"이라는 내용을 적고 학생들이 서명을 하게 한다. 

실라버스를 대충 읽은 학생은 어떤 과제가 주어졌는지 그냥 대충 감을 잡을 뿐이다. 텀 페이퍼 쓸때로 대충 이해한대로 쓴다. 이해는 대충 하였지만, 많은 유학생들의 경우 A+를 받으려고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한학기 내내 고생하며 작성한다. 그리고 혁신적인 생각이 떠오를 경우 흥분까지 해가면서 글을 작성한다. 열심히 정성껏 글을 쓴 학생은 텀 페이퍼를 낼때에 A혹은 A+를 기대한다. 그런데 왠 일인가? A+대신 C, D, 혹은 Redo (다시 써라)라는 결과를 받는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흥분해 하며, 더러는 울기도 하며, 분노를 가지고 교수를 찾아 간다. 나는 잠도 많이 줄이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고, 수 많은 책을 참고로 하여 연구하고, 또 걸으면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텀 페이퍼만 생각하면서 고생하였는데 내게 돌아온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학생의 경우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혹시 미국인 교수가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하지 않나 의심하면서 분개해 한다.

교수의 반응은 간단하다. 나는 너에게 시카고로 가는 가장 좋은 운전길을 연구해 오라고 하였는데, 너는 뉴욕으로 가는 길을 적어왔다. 그러나 네가 적은 뉴욕가는 길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그 어떤 방법보다 탁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시카고가는 길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이같은 반응은 실제 교수가 그같은 내용의 과제를 주어서가 아니고, 교수가 쓰라고 한 방향을 무시하고 학생 스스로가 추측하고 생각한 방향으로 글을 썼을때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지난주 내 사무실을 다녀간 티나의 케이스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티나는 나의 "여가 철학"이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그 수업에는 많은 과제가 있는데 제법 점수의 비중이 큰 과제중 하나는 크리스쳔의 관점을 가지고 여가 (Leisure)의 철학을 논술하라는 것이다. 그같은 관점을 돕기위해 그동안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기독교 세계관으로 여가를 바라 볼것과, 성경의 원칙과 여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여가의 관계등에 대한 Guiding Questions도 실라버스는 분명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티나가 준비한 글은 여가의 철학이 아니였고, 치료레크리에이션의 철학이었다. 크리스쳔의 관점도 고려하지 않았고,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 무엇이 티나로 하여금 본 과제의 특성과 빗나간 글을 쓰게 하였을까 이해 보려고 잠시 애써 보았다. 아마도 내가 치료레크리에이션을 주로 가르치는 교수라는 인상 때문이었을까? 본인의 전공이 그것이니 이번기회에 철학적 정의를 해보고픈 개인의 욕망때문이었을까? 어찌하였든 티나는 과제의 요구사항을 철저히 빗나간 글을 쓴 것이었고, 이로 인해 본인이 기대하지도 않던 권총 (F)을 하나 찬 셈이 되었다. 

실라버스를 대충 읽은 다른 케이스가 있다. 어제 사무실을 다녀간 캔디스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의 경우가 아주 적절한 실례가 될 수 있다. 캔디스는 페이퍼의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교수가 실라버스에 요청한 내용을 철저히 다루지 않았다. 캔디스가 듣고 있는 과목은 치료레크리에이션의 원리라는 과목으로서 요즘 미국의 Health Care System의 Issue에 대한 과제가 있다. 실라버스에는 그 과제에 대한 목적과 요구항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고, 이를 강의실에서 설명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Issue의 선택은 학생이 교수의 동의하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Issue에 대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Issue를 자세히 소개 하게 하였고, 선택된 Issue와 관련된 과거 역사적 사실들, 현제의 상황,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소,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한 제언등을 다루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항목은 특정 점수를 부여하게 되어 있어서 그같은 내용을 다루지 않으면 점수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캔디스의 경우 Issue에대한 나의 동의는 받아내었지만 내가 연구하라고 실라버스에 요구한 구체적 항목들은 일부 다루지 않았다.  대신 내가 실라버스에 요청하지 않은 다른 항목들을 아주 장황하게 조사하여 보고 하였다. 요구한 항목중 잘 다루어진 부분은 실라버스에 적힌대로 점수를 받았지만, 다루지 못한 부분은 아무런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본인이 열심히 썻으나, 내가 실라버스에서 요청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아무리 훌륭하게 연구하였어도 아무런 점수를 받지 못했다. 받은 점수를 모두 합해 보니 많은 부분에서 점수가 부족하여 결국 캔디스는 권총 (F)을 하나 받아야 했다.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당연한 것을 소홀히 함으로 큰 실수를 범할 때가 많이 있다. 무엇을 만들고 조립할때 그 물건을 만든 회사가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보고 그대로 따라 가면 쉽게 조립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메뉴얼을 무시하고 나의 꾀와 직감을 가지고 그냥 조립하려고 할때 당하는 어려움이 좋은 예이다. 기본과 당연한것을 무시하지 않고, 조그만 것 일지라도 성실한 크리스쳔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완벽한 실라버스를 만들어 주셨다. 어떤 이들은 그 하나님의 실라버스 대로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무시하고 살아 간다. 또 어떤 이들은 일부는 따르지만, 다른 부분은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간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실라버스 대로 (성경대로) 살아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추측하고 편리한대로 하나님을 좇는가? 인생의 실라버스를 충실하게 읽고 주님을 좇아야 할 것이다. 당연한것을 무시하는 삶을 살아 가다가 도착지 (finish line)에 섰을때 나의 달음박질이 헛된것이 되면 어찌할 것인가? 한번 심각히 우리의 삶을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이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딤후 2:5; 표준새번역)
사진출처: http://leslievalesk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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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2 15:57

하나님 나라를 위한 노력이 아니였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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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말씀 묵상을 마치고 식사를 하면서 강의전에 학생들을 주안에서 조금은 볶아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왔다. 오늘 강의는 Evidence-based practice라는 주제 였는데, 지난주 "research"에관한 주제에 이어서 참으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주제라 혹 다음주 쯤으로 때를 다시 잡아 보아야 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유혹도 살짝 왔다. 

나의 분야가 recreation therapy이기에 학생들의 생각이 좀 느슨한것 같다. Physical therapy로 가기에는 화학이나 다른 과목에 자신이 없고, occupational therapy까지 가려면 석사과정에 들어 가야 하는데 더 공부 하기는 싫고, Nursing에 들어가려고 1-2년 기다렸는데 입학허가서를 받지 못해서 할 수 없이 recreation therapy로 오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 또 어떤 아이들은 Pre-Med프로그램에 있으면서 recreation therapy라는 과목이 재미있어 보여서 복수전공으로 공부하는 아이도 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전공을 선택하면서 학업에 대한 교수의 기대감을 가진다. 특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과목의 도전감인데, 이는 분야별로 상이하다. 내가 과연 공부를 따라 갈 수 있을까? 좋은 학점을 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당 해야 하는가? 이같은 질문은 분야를 선정할때 고려해 보는 질문중 중요한 부분이 되곤 한다. Biochemistry를 전공하는 내 아들녀석은 아침 일찍 부터 저녁 늦게 까지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를 닮아 머리는 잘 돌아 가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의료선교에 대한 마음을 주셨으니 치대로 진학을 해야 되고, 그러다 보니 생물학이나 생화학을 전공해야 하는데 없는 능력으로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따라서 말그대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공부 한다. 이녀석의 facebook은 늘 조용하다. 잡담하고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분야인 recreation therapy, recreation, physical education, dance는 전공 하는 아이 든지 비 전공 아이들 이든 일단 쉽게 생각한다. 더 안타까운것은 가르치는 교수들도 그렇게 생각하는듯 하다. 내가 다른 교수를 그냥 비하 시키며 그들의 안일함을 탓 하는것 만은 아니다. 칼빈대학 오기 전에 교수로 사역하던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Ohio University, Indiana University에서도 나의 관찰과 경험은 비슷하다. 나의 관찰과 경험을 뒷받침하는 나의 증거는 다음과 같다. 보통 우리 학과 내지 단과대학의 모든 전공자들이 공통적으로 들어야 하는 capstone혹은 core과목을 가르치다보면 학생들이 불평이 다음과 같다. 왜 당신의 과목은 유별나게 힘드냐는 것이다. 이같은 불평을 달리 표현 하면 다음과 같을 수도 있다. "다른 교수들은 적당히 읽히고, 적당히 과제물을 주는데, 왜 당신은 그들처럼 비슷하게 하지 않고 더 많이 공부하게 함으로 나를 힘들게 하느냐," 뭐 이런것이다. 당신 과목 하나가 다른 과목 두개 듣는것하고 비슷하다... 라고 엄살 부리는 학생들도 있다. 물론 나 보다도 훨씬 더 학생들을 향한 큰 기대감과 도전감을 주는 교수들도 분명히 있지만 이들은 이렇게 엄살을 떤다.

이들의 엄살 이면에는 사회에 나가서 월급을 많이 받는 분야도 아닌데 공부로 너무 애먹이지 말라는 묵시적 반항 일 수도 있다. 어짜피 의사나 변호사들 같이 좋은 대우를 받지못할 분야 인데, 지금 잘 놀아야지 그렇게 죽어라 공부하면 너무 억울한게 아니냐는 핀잔 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행히 이렇게 불평하는 아이들의 영어를 잘 알아 듣기가 어려워 언어의 장애를 심각히 느낀다. 결국 벽에다 대고 이야기 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는지 주제를 얼른 바꾸는 똑똑한 아이들도 있다. 그땐 나의 영어 실력이 금방 회복 된다. 

여하간 많은 독서를 다 감당 못하니 대충 읽고 수업에 들어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 Tornado quiz라는 것이다. 아무 예고도 없이 토네이도는 들이 닥치고, 또 한번 들이 닥친 tornado는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다. 나는 어느 한 과목에 tornado quiz를 다섯번 본다. 보통 tornado quiz는 지난번 강의 내용과 당일날 강의를 위해 읽어야 할 내용에서 추려내기 때문에 아이들은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해와야 피해를 면할 수 있다. 더우기 언제 들이 닦칠지 모르니 항상 준비해 두어야 한다. 아예 날짜를 정하거나 미리 예고만 해주어도 좋지 않겠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그러니 그동안의 불평은 제법 되었다. 

그러나 감사히도 아이들이 이번 학기에 잘 따라와 주었다. 책과 읽어야 할 여러 논문들에 노란색 및 핑크색 하이라이트펜이 잘 쳐져 있고, 어떤 아이들은 미리 요점을 정리해오고, 수업전에 미리 와서 읽고 암기하며 부지런을 떤다. 얼마전에는 그 tornado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 미리 예비 tornado quiz를 보였는데, 아이들이 그 여파로 많이 긴장해 있음을 보아 왔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가 준비한 "들들 볶기 위한 설교"는 진행이 되어진 것이다. 나의 첫 질문은 "How do you define "excellence"? 우리의 토론은 제법 진지 하였다. 왜 B보다 A가 더 우수한 것이냐? 돈을 더 많이 버는것이, 남들 보다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더 excellent한 삶이냐? 뭐 이렇게 진행 되다가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누구의 눈에, 누구의 잣대로"보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느냐 까지 대화가 진행 되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잣대에 우리의 성공과 excellence를 맞추어야 한다. 이같은 결론에 몹시 흡족하여 나는 오늘 준바한 나의 볶음밥 요리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후식으로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 남기고 본 강의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만일 너희의 모든 노력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노력이 아니였다면 오늘 당장 회개 하거라!" 

하나님, 학업에 관련된것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곳 대학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같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또 심각히 반응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노력중 하나님 나라를 향하지 못한 모든 노력들을 회개 할 수 있도록 이 학생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혹시라도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주리를 틀고 있는 숨겨진 우상이 있다고 하면 그것들을 주님앞에 꺼내어 놓고 부수워 버릴 수 있도록 이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림출처: http://www.iamsoz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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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4:25

굿 바이, 채점회피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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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를 하면서 제일 신나는 일은 긴 여름 방학을 맞이하는 것이다. 학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더 신나는것은 강의이다. 매번 강의를 기쁨과 긴장으로 준비한다. 박사과정부터 미국학생들 가르쳤으니 약 23년정도 강의한 셈인데, 아직도 긴장감이 돈다. 나쁜 긴장감이 아니라 설레이는 마음과 새로운 대화를 기대하는 그런 종류의 긴장이다. 강의는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다.

그러나 교수를 하면서 제일 싫은 일이 있다면 채점하는 일이다. 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표현한적 있지만 나는 채점을 유별나게 싫어 한다. 인디애나에 있던 동료 교수는 "조그만 방에 채점거리를 많이 가져다 놓고 채점하게 하는 곳"을 지옥으로 표현하기도 해서 웃은적이 있다. 

나는 분명 채점회피 증후군 (내가 자가진단으로 만들어 낸 병명)의 환자 였던것 같다. 채점거리가 많은 사무실에는 들어 오기가 싫어서 사무실 주변을 빙빙 돈다. 한참만에 용기내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채점중에는 입맛도 없고, 잠도 편치 못하다. 그때 마시는 커피는 좀 쓰게 느껴지고, 그때 듣는 음악은 소음일때가 많다. 신경도 예민해 지고, 스트레스로 힘들어 한다. 이 블로그를 읽고 있는 지체중 이같은 증세를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채점회피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전 그 증후군을 치료를 받았다. 고질병인줄 알고 괴로워 했는데 그것은 완치가 가능한 병이라 이제는 여겨 진다.

치료법은 은혜이다. 그 증후군으로 괴로워 하던 지난 학기말중 나는 기도하다가 나는 나의 그같은 고질병에대해 회개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왜 너는 그런 나쁜 태도로 임하느냐라는 내적 음성이었다. 혹 채점하는 시간이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할 수 없냐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무엇에 얻어 맞은양 멍하게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같이 부정적인 태도를 아무런 질문과 사고 및 기도가 없이 그냥 "지루하고 괴로운 일"로, 즉 당연히 격는 증후군으로 받아들인 것이고,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인 결과가 나를 그렇게 괴롭게 했던 것이다.

한참을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 사역을 그 같이 부정적이고 억지로 하는 마음으로 드린것이 마음이 아팠다. 교수라는 직분과 사역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것임으로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섬기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올려 드려야 한다. 한참의 회개를 통해 이제 마음을 정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채점도 예배이다. 강의 들어가기전과 후에만 기도하는것이 아니라, 채점 전, 후, 중간에도 기도를 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예배의 자세로 주변을 깨끝하게 하고, 나의 복장도 강의때처럼/예배때 처럼 단정히 하여 임하자고...

결과는? 교수로 섬긴 이후 처음으로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채점을 해보았다. 아이들의 답을 하나 하나 읽으며 웃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며, 또 안타까워 하고... 입에서 찬양도 나왔고, 커피맛도 되돌아 왔고, 잠도 편히 잤다. 사무실이 무섭지도 않았다. 나는 이렇게 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믿는 이들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 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겠다는 것은 내가 진 십자가의 무게로 스스로 질식하여 지쳐서 사는 삶일지 모르겠다. 내 삶을 채점하실 예수님을 뵈올때 까지 바른 걸음으로 매 순간을 예배로 그분께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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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3:26

브라이언과의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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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가명)은 지난 봄학기때 내 수업을 듣던 학생이다. 수업이 월요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여 9시 30분에 끝나는 긴 수업이다. 브라이언은 늘 가장 뒷자리 앉아서 혼자 수업 듣던 아이 이다. 강의 초기에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앉았었다. 긴 저녁 강의에 실증을 느꼈던지 조그만 테니스 공을 책상위에 다른 학생에게 굴려 보내며 장난 치다가 나와 "접촉사고"를 이르킨적 있다. 나는 강의를 하며 여러번 눈과 표정으로 브라이언에게 사인을 주었지만 내 눈을 계속 응시 하며 지속적으로 장난을 치기에 수업 마치고 그 주변의 세 아이들을 다 불러 이야기를 나눈적 있다. 그뒤로 주변의 세 아이들은 제안 하지도 않았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토론에도 참석하고 강의에 주시하며 나를 기쁘게 했다.

그 사건 이후 수업중 그 세아이들이 브라이언과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다. 결국 브라이언은 맨 뒷자리를 그냥 홀로 지키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던 브라이언이 무단 결석을 두번 하게 되었고, 나는 두번 다 이멜을 통해 혹 내가 기도해 줄것이 있는지를 물어 보며 이 아이를 섬기고 있었다. 첫 시험은 예상대로 F를 맞았다. 인디애나 대학에 있을때 유명했던 운동 선수들에게 특별 대우 해주지 않고 몇명에게 F준적이 있어서 그들의 팬을 실망 시키적이 많았던 나는 운동선수 이기도 했던 브라이언을 그렇게 공평히 대우했다. 그것이 쇼크 였는지 그 뒤로 이 아이의 수업태도가 달라졌다. 덕분에 두번째 시험에서는 B-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것 같다. 칭찬을 해 주었더니 매우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하며, 자기 스스로도 놀랐다고 고백하였다.

이 수업은 장애를 가진 이와 장애가 없는이들을 통합시키는 내용을 다루는 강좌 이었음으로 학생들은 자기 나이 또래의 장애를 가진 (대부분 intellectual disability/mental retardation, autism, cerebral palsy, etc)아이들고 짝을 지워 주고 일 주일에 두시간씩 서로의 삶을 나누는 Service-Learning Project를 도입해서 실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날때 마다 특정 포멧에 맞추어 자신의 체험 뿐 아니라 새로운 발견에 관한 저널을 쓰는 과제를 주었다. 물론 이 과제를 통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장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곤 했다. 

브라이언은 중중 뇌성마미를 가지고 있는 캐빈이라는 아이와 짝을 지워 주었다. 학기말에 내야 하는 저널이 평가에 귀중한 역할을 하지만 혹 중간 중간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수업시간 Service-Learning Project에대해 학생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당시 브라이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수상히 여겨 이 아이와 개인 면담을 해야 했음에도 나는 그냥 믿고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학기말에 제출하는 저널을 읽고 놀라 버렸다. 장애를 가진 캐빈이라는 아이는 1년중 1회만 칼빈대학에서 매일 행해지는 채플에 참여 하는데, 브라이언은 캐빈과 채플을 여러번 갔다고 적고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도 여러번 가서 식사할 뿐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좋은 활동들을 아주 조밀하게 적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멜을 보냈다:
As I was reading your journals related to the service learning with Ready for Life, I realized that you went to Chapel numerous times with Kevin. As far as I know, Kevin only goes to chapel one time a year (He has other activities at Calvin campus). Please explain your time with Kevin to me. Thanks.
내 생각으로는 브라이언이 없었던것을 마치 있었던 것으로 조작한 저널이었을 것이라는 강력한 추론이 있었다. 답장이 오지 않아서 이 아이의 학점을 우선 "I" (Incomplete)로 처리했다. 분명 성적을 온라인을 통해 확인해 보았을텐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몇주가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이미 학사경고를 받고 있던 터이라 학교에서는 왜 브라이언이 Incomplete를 받았는지 물어 오고 있었다. 

저널을 조작했다고 내 나름대로 추측했기에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있는그대로 인정할뿐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 하였다고 스스로 고백할 수 있는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새벽기도때 마다 잊지 않으려고 기도 노우트에 그같은 기도제목을 적어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내게는 딜레마가 있었다. 그냥 F를 성적 처리하거나, 부정행위로 학교에 보고하여 처벌을 받게 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가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자신의 부정행위를 통해 아 아이가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했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주님께 고백함으로 "미쁘시고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혜를 통해 앞으로의 삶에서 속임수 보다는 정직으로 맞서 싸우는 브라이언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바로 엊 그제 브라이언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낮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자신이 저널을 조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범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댓가를 무엇이든 받겠다고 했다.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기뻐서, 큰 감격으로... 내가 나의 죄를 주님께 고백했을때 주님께서는 내가 당시 느꼈던것 같이 기쁘하시고 감격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울먹이는 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잘 고백했다고 말하고, "너의 잘못된 행위를 네 등 뒤로 던져 버리겠다"고 했다. 브라이언은 진심으로 고마워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용서를 하지만 자신이 저질은 잘못에 실제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장애를 가진 다른 이와 더불어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내어 그들을 섬기고, 저널을 다시 쓰라고 했다. 브라이언은 그 댓가를 기쁘게 지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이 기쁜날은 하나님을 더욱 더 생각하게 된다. 나 같이 연약하고 악한 죄성을 가진 자에게 귀한 청년들을 맞겨 주신 하나님이 너무 미쁘셔서 감사를 드리게 된다. 브라이언을 통해, 하나님은 내게 기도를 가르치셨고, 회개의 의미를 가르치셨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귀회를 주셨다. 내가 교수로 청년들을 섬길 수 있고, 이들의 발을 씻길 수 있는 귀한 사역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싶다. 

이 사진은 학기말에 학생들과 장애를 가진 그들 파트너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 
불고기 구어 먹으며 친교를 나눌때 학생 하나와 장애를 가진 파트너가 팔씨름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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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23:20

교수의 진정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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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채점으로 바빴다. 내일 부터는 더 바쁘고 힘들것 같다. 채점거리가 책상위에 잔뜩 쌓여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주의 날 이라 채점을 멈추고 마음을 주님께 고정시키려 애썼다. 채점해야 할 페이퍼들이 눈에 들어 올때마다 유혹이 생겼지만 오늘은 주님만 응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제까지 채점한것과 지난학기를 회고해 보며 오늘 크게 기뻐할일 하나를 발견했다. 학생들의 변화이다. 지식의 변화도 분명히 생겼다. 제법 어려웠던 개념들을 아주 잘 소화하여 정리한 내용들을 읽어가며 대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참으로 기쁘게 했던 것은 이들의 삶의 태도 변화에 대한 고백을 읽을때 였다. 아이들이 쓴 에세이를 읽으며 지식의 자랑보다 마음의 변화를 적은 글의 내용을 찬찬이 읽으며 큰 기쁨을 느꼈다. 전에 갖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이다.

전에는 아이들이 개념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것을 현장에 잘 적용하느냐가 나를 기쁘게 했고, 그것으로 내 스스로의 강의 능력을 평가하곤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험을 채점하면서 쉬운 질문에도 빗나간 대답 및 모호한 대답을 읽으며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채점하곤 했었다. 그리고 제법 까다로운 질문을 다소 정확하고 깊이 있는 대답을한 답안을 읽으며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같은것들 보다 사람의 변화가 나를 정말 기쁘게 한다. 시험답안속에, 그리고 텀 페이퍼에 담긴 글 가운데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대하면 감사가 튀어 나온다. 수업을 빼먹고 불성실 하였던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며 부족하지만 끝까지 시험문제에 답을한것을 보며 나는 몹시 기뻤다.

교수인 나는 지식 전달자와 지식 창출자만이 아니다. 교수인 나는 나의 전공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조명하고 그 안에 발견된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들이 심령에 변화를 받아 삶이 변화해 가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리사의 변화, 불성실했던 앤드류의 성실성, 불평스런 말을 습관처럼 던지던 제니퍼가 감사의 표현으로 수업을 마치던것... 나는 이 맛으로 교수하고 있다. 이국땅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용하시는것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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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1 17:44

승리한 리사 (L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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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도 거의 마쳐 간다. 채점만 하면 끝난다. 칼빈에서 한 학기 동안 많은것 배웠다. 그같은 배움들을 이곳 블로그에 나중에 조금씩 나누려 한다. 그러나 오늘은 가장 보람있었던 일중 하나를 적어 보려한다. 그것은 내 학생중 리사 (Lisa, 가명)의 이야기다.

리사는 금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아주 평범한 미국 아이다. 4학년 학생이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시카고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아이이다. 추운날 맨발에 쪼리 신발 (flip flop)을 신고 수업에 들어와서 학생들과 함께 웃고, 그것에 대해 토론한적이 있다. 쪼리 신발이 너무 좋아 아직도 그것을 벗을 수 없다고 하여 우리 모두를 웃겨 주었던 아이이다. 벌써 약혼 하여 졸업후 결혼도 약속되어 있는 아이이다. 그런데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신경안정제를 필요에 따라 먹어야만 되는 아이이다. 학기초 학교에서는 이아이에게 보낸 학사경고 편지를 내게 보내왔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하다. GPA (평점)가 너무 낮아서 이번에 한번 더 정해진 포인트를 넘지 못하면 학교에서 나가야 된다는 내용이다. 

학기초 수업을 몇번 빼먹었다. 빠질때 마다 이멜을 보냈고, 매 수업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동기유발을 시켰다. 그런데도 두어번 더 빠져 계속 이멜을 보냈다. 그러던중 어느날 나타났다. 나의 관심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첫 과제물을 내야 하는데 제 날자에 내지 못했다. 점수가 깍기겠지만 제출하지 않는 것 보다 나으니까 밤샘을 해서라도 제출해라고 이멜을 보냈다. 그 다음날 가져온 과제물은 좋은 점수 받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하려한 그 의도성을 칭찬하며 코멘트를 남겼다. 수업 마치고 코멘트를 읽고 감동했다고 한다. 기억나는 특별한 코멘트는 없었던것 같다. 굳이 애써서 기억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말이다: "I am sure you can do it, and you will do it". 나중에 고백하기를 자기는 어려움이 생길때 이 어려움을 맞부딛혀 해결하기 보다 쉽게 포기하는 나쁜 근성이 있다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강좌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물에 부딛쳤을때다. 과제물을 내야되는 지정된 날자가 지났는데도 리사는 내지 못했다. 이멜을 보내도 답신도 없고, 수업마치고 강의실 나가기전 혹 도와줄것이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괜찮다고 하며 그냥 총총히 강의실을 걸어나갈 뿐이다. 포기했나 싶었다. 답답했다. 마음이 아팠다.

그날부터 나와 우리 가족은 리사를 위해 매일 기도 하기 시작하였다. 거른날이 한두번 있었을뿐 거의 매일 기도했다. 1주가 지났는데도 과제물을 내지 않았다. 그뒤 추수감사절 휴가로 몇일 쉬는 주간이 있었는데, 집에 다녀온 이후에도 소식이 없었다. 약 3주를 기도했던것 같다. 일곱살 막내아이도 이름을 기억하여 기도제목 요청할때 마다 먼저 리사를 기억하여 "리사가 공부 잘 할 수 있게"라는말을 먼저 꺼내 놓기도 하였다.

2주전에는 과제중 하나를 학우들에게 발표하는것이 있었다. 자신이 환자를 다루는 과정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발표하는것이었다. 정신지체를 가진 20세 자매에게 요리를 가르치면서 요리책에 나오는 요리법을 잘 따라 하도록 가르치는 활동이었다. 얼마나 잘 하던지 내가 감동했다. 자신의 아픔을 잘 알아서인지 그 정신지체를 가진 자매를 엄청난 인내를 가지고 아주 정성스럽게 다루고 있는 모습이었다. 몸짓, 사용한 언어, 얼굴 표정 하나 하나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 요리를 마치고 함께 먹는 장면도 나왔는데 둘이서 머리 맞대고 주님을 높이는 사랑스런 기도장면 이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포기했을것이다라고 추측했던 과제를 제출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점수가 깍여도 좋으니 그냥 읽어만 달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물론 고칠것이 너무 많아 퇴짜를 놓고 다시 수정하라고 하며 빽빽한 코멘트가 적힌 과제물을 되돌려 주었다. 그리고 이번주에 수정해서 내게 다시 보냈다. 물론 많은 코멘트를 달아서 또 퇴짜를 놓았지만 내일까지 수정해서 내겠다면서 의욕있는 표정을 보였다.

이 아이가 F를 맞을것 같지 않다. 기말고사에서 미끄럼 타지만 않으면 C정도는 받지 않을까 싶다. 쉬운 강의는 아니었기에 리사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그것 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함께 기도한 가족들의 기쁨은 나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지금도 리사를 생각하면 기쁨이 솟는다. 그리고 그아이가 훗날 좋은 치료사로서 아픔을 가진 많은 이들을 섬기는 귀한 사역자로 쓰임을 받으리라 의심 않는다. 이번 학기 가장 보람있었던 일중 하나라 이곳에 적어 보았다.

배운것이 있다. 우리는 기도한 만큼 그 결과를 얻는다는 것. 교수는 입과 머리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무릎으로도 가르쳐야 된다는 진리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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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6 11:32

금년의 첫 크리스마스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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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하러 막 들어 가는데 강의실 책상위에 카드가 놓여져 있었다. 아이들이 얼른 열어보라고 성화였다. 첫 카드라 기뻤다. 뒷면의 글도 읽으라고 한다. 감사의 글이었다. 선생의 맛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것 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사랑을 받을 때 이기도 하다. 나를 대학교 선생되어 이들의 눈물을 닦고, 발을 씻고, 함께 떡을 떼며 교제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내가 우리 칼빈 제자들에게 바라는 한가지가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이 선 그곳에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감으로 자신이 서있는 그곳이 새로워 지는 것이다. 내게 진정한 기쁨을 줄 그어떤것은 카드로 아니요, 학생들이 가끔 가져오는 스타벅스카드도 아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아이들을 놓고 더 기도해야 함에도 내 무릎이 그것을 따르지 못할때 이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이 카드는 내게 이들을 중보하라는 사인으로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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