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5.04.15 아내가 나를 떠났다
  2. 2015.04.10 슬플때
  3. 2015.04.09 인정받으려는 욕구
  4. 2015.04.08 까만 얼굴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5. 2015.04.08 탁월함
  6. 2015.04.08 무엇이 나의 큰 기쁨인가?
  7. 2015.04.05 아내의 큰 행복
  8. 2015.04.05 어느 군인의 기도
  9. 2015.04.04 나는 성도이다
  10. 2015.04.02 샬롬 메이커
2015.04.15 10:21

아내가 나를 떠났다

아내가 없다. 나를 떠났다. 내가 미워서, 싸움박질 하여 떠난게 아니다. 캘리포니아에 Prayer Summit이라는 콘퍼런스를 갔다. 우리학교 총장도 가고, 우리교회 리이더들도 일부 갔다. 나는 가지 못했다. 집을 봐야 되고, 또 학교를 지켜야 하기에...^^ 


집에서는 늦둥이 영민이와 함께 있다. 엄마가 없는지 조금 심심해 보이긴 하다.  그래서인지 창밖을 오래동안 내다 보기도 한다. 그래도 아빠를 도와 부엌일 돕고, 또 세탁한 옷들 곱게 접어서 자기 옷장에 넣는다. 남자만 둘이 있으니 아주 편하다. 잔소리 없어서 참 좋다. 조용해서 너무 좋다. 그런데 좀 심심하다. 


아내는 집에 없지만 이상하게도 아내의 손이 느껴지고 숨결이 느껴진다. 아내의 옷을 챙이고, 아내가 주로 지키는 부엌에서 가지런히 놓여진 그릇들을 만지고 있으면 아내가 느껴진다. 12가지 곡식이 들어간 빵을 토스트 해서 혼자 먹으면서도 아내가 느껴진다. 그 빵은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빵이다. 올리브 기름에 찍어, 커피와 더불어 먹는다. 테이블 오른편 아내가 앉는 자리가 조용할뿐, 아내가 느껴진다. 늘 그 자리에서 식사하였으니 무의식 중에도 아내의 접시를 그 자리에 놓았고, 커피 잔도 함께 놓았다. 냅킨도 잊지 않고. 아내가 느껴지지만, 조용해서 참 좋다. 잔소리 없어서 너무 좋다. 아내가 돌아와서도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으면 좋겠다. 


미시건의 날씨는 초봄이라서 저녁에는 쌀쌀하다. 그래서인지 침대가 쌀쌀하다. 추우면 몸도 녹일겸 아내에게 달라 붙어 체온을 높일 수 있을텐데, 지금은 싸늘한 베게 밖에는 없다. 아내의 부드러운 살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아내의 향이 베게로 부터 은은히 느껴진다. 


아침에 큐티나눔으로 시작하는데 영민이와 단 둘이서 하니까 금방 끝났다. 둘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니 오래 가지 않아도 된다. 큐티 마친 뒤, 서로 돌아가며 하는 기도 또한 짦다. 아들과 나는 큐티 마치며 올려드리는 기도에서 하나님께 용건만 간단히 말하기를 좋아한다. 둘이서 밝은 미소로 마쳤다. 효율적이다. 그런데 아내의 기도가 그리워 진다. 어떨땐 훌쩍 거렸다가 어떨때 삐쳐서 남편이 무례해서 마음상했다고 하나님께 고자질도 한다. 무서운 순간인 것이다. 오늘 아침 괜히 그런 기도가 그리웠다.


언젠가 내가 먼저 아내를 떠날지 모른다. 어쩌면 아내가 나보다 먼저 떠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서로를 떠날 때가 반드시 올것이다. 그때는 이런 방법으로 서로를 기억할런지도 모른다. 아내의 여행은 나의 여행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내가 없는 이 시간을 아내와 더 잘 보내는 준비를 하는 거다. 언젠가 서로를 떠날 때 감사가 서로 많아졌으면 좋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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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0 23:08

슬플때

슬픈 때

눈물이 마구 흘러내릴 때 

내 안으로 자꾸 들어가면

더 슬프고

더 눈물이 흐르지만


예수께로 다가가면

예수께 더 가까이 가면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고

눈물이 멈추게 되요


슬픔이 기쁨이 되고

탄식이 찬송이 되고

슬픔의 눈물이 환희의 눈물이 되요


지금 예수께 나가고 있습니다.

더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너무 슬프고

너무 눈물이 흘러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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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9 16:39

인정받으려는 욕구

83세가 되신 나의 어머니의 기도는 늘 동일하다. 당신의 아들이 남들로 부터, 세상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책을 쓰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그 책이 세상에서 가장 인정 받는 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 하신다. 나의 큰 아들이 이제 치과대학을 졸업한다고 말씀드리면, 세상에서 가장 인정 받는 치과의사가 되게 해 달라고 침을 튀기며 기도 하신다. 그냥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구 조르신다. 어떨때는 너무도 간절히 기도하셔서 하나님의 팔을 비트시는 것 같게도 들린다.^^


누가 말을 하였다. 페북을 움직이는 강력한 기제는 인정욕구라고. 그래서 성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사실 그래서 페북을 내려 놓았다. 전에 고백했던 것처럼 라이크가 몇이나 있고, 또 몇명의 페친이 있느냐를 은근히 생각하는 내가 싫었다. 어느 집회에 초대 받아 말씀을 전하고 오면, 흔히 묻는 질문이 몇명이 모였냐고 묻는다. 모인 숫자에 따라 집회와 강사의 무게가 달라진다. 수천명 앞에서 말씀을 전했다고 하면 탄성과 부러움을 보이고, 열명이 조금 넘었다고 하면 측은히 여기는 듯 하다.  


전에는 남에게 받는 인정이 너무도 중요하였다. 우리 학술분야의 최고 학술지의 편집장도 되고 싶었다. 연구상도 받고 싶었다. 인정이 있으면 기뻤고, 인정이 시원치 않았으면 속이 쓰라렸다. 누가 인정해 주면 내가 잘란 탓이었고, 인정해 주지 못하면  울 어머니의 기도빨이 약하였구나 생각하였다. 부끄럽지만 이자리에서 고백해 본다. 지금도 그생각을 하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


나의 경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뒤에 숨어있는 그 무엇이 하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다. 그러나 은혜로 그 실체를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바로 열등감이었다. 어려서 부터 공부도 잘하지 못하였다. 고등학교입학 시험 (당시에 있었다)에서 가고 싶었던 학교에도 떨어졌다. 중학교에서 중간쯤만 해도 들어가는 고등학교를 떨어졌으니 나는 중간에도 끼지 못하는 저능학생이었다. 대학도 남들이 내놓아라하는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도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대학이 아니었다. 남들로 부터 인정받지 못해 속으로 은밀히 아파하던 것들이 내안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아픔이 자라서 열등감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어렴풋이 깨닫았다. 이 열등감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한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인정도 내게는 만족함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이 열등감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열등감에는 특효약이 없었다. 그래서 이 열등감을 해결해 보려고 남들이 흔히 하듯 나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하였고, 연구활동에도 더 올인하였다. 그래서 내 삶은 늘 피곤하였고, 메말랐고, 또 깊은 만족이 없었다. 그렇게 열등감이라는 넘한테 신나게 당하고 나니까 인생이 아주 파리해 짐을 느꼈다. 겉모습은 좋았다. 좋은 대학의 교수였고, 책도 몇권 쓰고, 상도 받고, 말 그대로 경력이 화려하였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 였다. 내 안에 깊은 만족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인정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열등감을 내 삶에서 완전히 쫓아내어 버릴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한 것에 답이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올바로 깨닫게 된 은혜의 순간 부터이다. 내게 있어서 열등감은 정체감의 혼돈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누구인지를 올바로 깨닫게 되면서 내 안에 있었던 거짓된 열등감은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열등감이 내게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는 사실, 나를 구하기 위해 하늘의 보좌에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과 맞 바꾸었다는 그 사실이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가슴의 지식으로 생겨나니 내 눈이 열리고 내가 나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참모습은 너무 아릅다운 것이다. 너무 고귀한 것이다. 이보다 더 크고 넓고 깊고 무거운 것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내게 전혀 기쁜일이 아니다.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로 인해 인정 받는 것이 훨씬 더 기쁜일이다. 누가 나를 높여주면 불편을 느낀다. 인정의 욕구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것이다. 나는 드러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만이 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욕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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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6:01

까만 얼굴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요것이 드디어 우리 집에 들어왔다. 내가 사랑하는 폴 테멀링 (Paul Tameling) 목사님이 남 아프리카를 방문하셨을 때 사오신 것이다. 그 분 사무실에 걸려 있는 것을 우리집에 옮겨다 놓은 것이다. 훔친것이 아니다.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얼마에 가져왔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가격으로 이 좋은 그림을 더 높게 혹은 낮게 하고 싶지가 않다.


이 그림에서 내 마음을 푸근케 하는 요소는 까만 얼굴의 예수님과 제자들이다. 백인 중심의 사회인 미국에 살아서 그런지 이 까만색 얼굴을 보면 모든 민족의 주되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너무 선명히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이 너무 좋다. 그리고 예수님도, 또 그 제자들도 모두 앞으로 돌출한 두툼한 입술을 가지고 있다. 문화를 잘 모르겠지만 생각컨데 그것이 남성의 미를 표현하는 문화적 요소이지 않을까 한다. 인간의 살을 뒤집어 쓰시고 오신 예수님이 이들을 까만 피부와 두툼한 입술로 만나주시고 계시는 모습이 내게는 내 마음을 기쁨과 은혜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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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4:38

탁월함

탁월함을 여러 각도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탁월함을 대다수의 사람이 생각지 못하고 또 감히 나서려 하지 않는 생소한 길로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주께서 가르치신 길이 넓은 길이 아니고 좁은 길이고, 남들이 다 가려는 길이 아니고 "오직 그 길" (The Way)이다. 진리의 길이다. 


거짓이 많고 가짜가 많은 이 세상에서의 탁월함이란 손실이 크다 할지라도 이익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옳은 것을 중심으로 선택하는 능력이다. 예수께서 따르라 하신 그 길이 옳은 길, 진리의 길이라 생각하며 걷는 이 걸음에 나 스스로가 탁월함이란 이름을 붙여 보았다. 그냥 내 맘대로... 이것은 내 블로그이고 내 낙서장이니까... ㅍ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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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3:40

무엇이 나의 큰 기쁨인가?

그날이 바로 부활절이었다. 내가 크리스마스보다 더 좋아하는 날이다. 더 기뻐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그날은 몹시 기뻤다. 예배도 좋았고 친교도 좋았다. 친교를 위해 아내가 특별히 음식을 차렸는데 음식이 유난히 맛있었다. 꽃도 꽃병에 담아서 식탁에 놓았다. 참으로아릅다웠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또 주안에서 형제라, 자매라 부르는 귀한 지체들도 함께하여 교제가 매우 좋았다. 


그날 조용히 내게 물었다.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참으로 감동하며 기뻐하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음식일까? 아름다운 화초일까? 고전음악 듣는 것? 아니면 가족?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너무 맛이 있어 울면서 먹어보지 못했다. 나는 화초와 꽃을 참 좋아한다. 내 사무실에도 집에도 여러 종류의 화초/화분을 내 눈이 쉽게 머무는 곳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꽃이 아름답다고 들여다보며 울어보지는 못했다. 나는 고전음악, 특히 오케스트라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 가슴뛰게 좋아한다. 그러나 음악을 들으며 울어보지는 못했다. 


나는 가족을 참으로 좋아한다. 아내를 참 사랑한다. 마음도 아름답고, 50이 넘었지만, 얼굴도 내 눈에는 가장 이뻐 보인다. 내 살이 단단하다. 그러나 아내 살은 참으로 부드러워서 잡고 있으면 너무 좋다. 같이 걸어도 좋고, 같이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다. 큰 아이들은 집을 나가서 살고 막내아들이 하나 함께 살고 있는데 나는 이 녀석이 너무 좋다. 녀석과 대화도 즐겁고 스킨쉽도 즐겁다. 같이 노는 것은 더욱 즐겁다. 그러나 아내와 막내아들이 좋아서 매일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에서 시작하여 가족에까지 이르자 당연히 예수님으로 연결되었다. 나는 찬양하며 기쁨으로 감사로 자주 울곤 한다. 말씀을 읽으며 꺼억거리며 울기도 한다. 기도하며 흐느끼기도 한다.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걸고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국기가 올라오고 애국가가 울려날 때 국기를 바라보며 눈물을 뿌리는 그런 모습과도 같이 나는 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그 순간에 그렇게 울지만, 나는 매 순간 그렇게 깊숙이 감동하며 기뻐한다.


역시 그리스도가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이 아주 간단하며 심오한 진리를 부활절날 잠시 생각해 보며 내 눈을 촉촉이 적셔 보았다.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 이 기쁨보다 더 큰 것이 없다. I love you, Jesus. 


부활절 친교 테이블 준비중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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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20:17

아내의 큰 행복

아내가 가장 행복해 할 때는 

근사한 선물 받았을 때도, 

좋은 곳에 휴가 갔을 때도 아니었다. 


거친 손 살며시 잡고 눈을 바라보며 

당신이 내 아내인 것이 내게 가장 감사한 것이라 고백할 때였다. 

내 손에 선물이 없었어도 장소가 근사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올린 트윗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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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19:15

어느 군인의 기도

오늘 우리 교회 데이브 목사님이 설교중 사용하신 어느 군인의 기도인데 내 마음에 꽃혔다. 이와 똑같은 언어로 기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기도는 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의 기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흔한 기도이지만 이곳에 남겨보려고 한다.


일을 이루기 위해 을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 강을 했더니,
가치있는 일을 하라고 을 주셨습니다.


행복해 지고
싶어 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 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의
칭찬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내지 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누릴 수 있는 삶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하나도 주시지 았지만,
소원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마음
진작표현 못한 기도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이 받는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위장된 축복임이 확실하다. 위장되었다라는 표현이 솔직히 불편하다. 우리들이 당시 깨닫지 못해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의미 없는 고난은 고난중 고난이다. 그러나 고난의 목적과 고난의 유익을 아는 성도의 고난은 축복이다. 부활절날 주께서 주신 고난들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리게 한다. 부활의 신앙으로 고난을 유익으로, 감사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니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고백을 이 군인과 같이 하게 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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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4 12:32

나는 성도이다

미국이라는 이방 나라에 한국인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 30년전에 미국에 왔고, 하나님께서는 또한 아이를 셋이나 주셨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나와 같이 동양인의 얼굴을 가지고 미국에서 살아간다. 며느리도 보았다. 그 아이는 백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동양인의 얼굴로 백인 학교에서만 교수를 약 23년 하였고, 또 은퇴할 때 까지 교수를 하게 될 것이다. 


백인이 다수인 문화권속에 동양인의 얼굴로 살아가며 느끼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감은 매우 중요하다. 모국에 있을때는 굳이 인종 중심의 정체감이 불필요 하였다. 같은 민족끼리 였고 비슷한 얼굴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굴 색깔에 유난히 예민한 이 미국은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생겨나는 폭력과 차별이 매우 심각하다. 전보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내 생각에는 더 약아진 것 일 뿐, 얼굴색깔과 관련된 인간의 죄는 이곳 미국에 항상 팽배해 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감은 세월이 갈수록 달라져 감을 느낀다. 전에는 유학생이는 정체감으로, 이후에는 대학교수라는 정체감이 가는 곳마다 붙어 다녔다. 그러나 교수라는 정체감은 일터와 공적장소에서만 사용될 뿐 가정과 교회에서는 달리 사용되어진다. 정체감에 따라 내가 나를 대하고 또 남이 나를 대하는 게 달라짐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내게 가장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부담이 되는 정체감이 있다. 바로 성도이다. 은혜의 관점에서는 늘 감사하다. 내게 성도라는, 영어로 saint라는 정체감은 내가 내 업적이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가장 고귀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붙여준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것이라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러나 성도라는 정체감은 나로 하여금 생각과 마음, 행동에 있어서 큰 부담감을 가져온다. 그 정체감으로 인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생각하는 방법과 내용도 아주 조심스럽다. 마음에 담아두는 잘못된 동기가 있으면 아주 괴로워 진다. 우리의 생각도 아시고, 우리의 행동도 보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깊숙한 동기를 아시는 그분께서 나를 성도라 부르시기에 정체감이 가져다주는 무게는 참으로 무겁다.


그래서 그 무게에 질식되지 않으려고 늘 생각하는 것이 십자가이다. 예수님의 삽자가의 공로를 기억하지 않고, 나의 책임있는 행동과 생각, 마음으로 성도의 삶을 살아 간다면 나는 금방 번 아웃 (탈진)되고 만다. 내가 죄인중에 괴수로 살아갔을 때 나를 먼저 찾으셨고, 나 대신 죄가 되심으로 돌아사시고 또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내게 의의 옷을 입혀주셨음을 기억하면 힘이 난다. 그 은혜의 기억은 나의 생각, 행동과 마음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른 행위를 함으로 바른 태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는 성도라는 정체감이 너무 좋다. 특히 부활절을 앞두고 이 정체감이 나를 기쁨에 푹 잠기게 한다.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게 한다. 그러나 나를 성도가 되게 하시려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게 험하게 돌아가신 그분의 큰 은혜가 나의 태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값싼 은혜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이해되어 지지 않는 역설적인 그 사랑이 너무도 크기에 내가 감동하게 되고, 아무런 대꾸함 없이 그 분의 큰 사랑아래 내 죄된 의지와 태도가 꺽여버리는 것이다. 나는 성도이다. 누가 무어래도 성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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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17:22

샬롬 메이커

샬롬 회복이라고 이 블로그를 이름하였지만, 

언제고 이름을 바꾸어야 되겠다. 

샬롬 메이커로. 

그냥 나를 위해 여기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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