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2 16:35

매 (Hawk)와 놀던 다람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지난 토요일 오후였다.  창문가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낮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따스한 오후를 그렇게 보내다가 문득 나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창밖의 숲속에서 어떤 물체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어서 나의 눈이 자연스레 그리로 간것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가족에게 주신 집 거실의 창문은 아주 크다. 거실의 큰 창문 밖으로 내 시선을 끈 것은 매 한마리의 조용한 움직임이었고, 다람쥐의 장난스런 분주함 이었다. 매는 천천히 다람쥐 주위를 아주 가까이 돌며 다람쥐를 슬쩍 만지고 지나가는듯 했다. 처음에 왜 채어가지 않고 여러번 같은 일을 되풀이 하는지 궁금했었다. 둘이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인가? 매는 다람쥐를 원래 먹지 않는가? 다람쥐의 머리에 이상이 좀 생겨서 아무것도 모르고 저러고 있나 싶기도 했다. 그들이 놀던 자리 바로 아래는 조그만 개울같은곳이 있고, 그아래는 숨을 만한 구멍도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다람뒤도 도망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노는 모습이 너무 다정해서 한참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와 둘째아이 혜민이를 불러서 함께 즐겼다.

광경이 하도 흥미로워서 iPhone으로 사진을 두어개 찍었다. iPhone에는 줌(Zoom)의 기능이 없어서 가깝게 상황을 포착하지 못했다. 찍고 나서 나중에 보았지만 사진에서는 분주히 뛰어 놀던 다람쥐를 찾아볼 수 없다. 숨바꼭질 하려고 나무 뒤에 숨었을까? 그러나 자세히 보니 매는 보였다. 아래 사진 빨간원에 보이는 조그만 물체가 바로 능청느럽게 다람뒤와 놀아주던 매다.

 

그러나 그렇게 한참을 놀던 매는 천천히 천진스레 놀던 다람쥐를 날카로운 발톱을 사용해서 낚아 채어 유유히 숲속을 나오는것이었다. 그러더니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아이 혜민이와 나는 잎을 벌린채 황당해 하며 말을 잊어 버렸다. 딸아이 왈: "아빠, 도와 줄걸 그랬어!"  나의 대답: "난 노는줄 알았지... 너무 불쌍하구나..."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영적 메세지가 느껴졌다. 악한것과 놀면 절대 안되다는 것이다. 가까이 가서도 안된다는것. 악한것은 처음부터 삼켜 먹지 않고 데리고 놀 수도 있다. 그것에 빠질때 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처음에는 죽을것 같이 무서워 가까이 가서는 안될것 같았지만 죽이지는 않는 그 실체를 신기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혹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를 모색하며 놀이에 푹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두려움이 즐거움이 되어 버린그땐 이미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은 옵션중 하나가 아닐지 모른다. 악한것이 본색을 드러내고 잡아쳐 갈때 그때 깨닫는다. "나는 도망쳤어야 되는데..." 그러나 너무 늦은것을 깨닫을 뿐 날카로운 발톱에 얽혀서 멸망을 기다리는 옵션만 남게 된다.

청년들이여. 유혹이 생기면 유혹과 놀려고 덤비지 말라. 처음에 놀아줄때는 별 문제 없을것 같게 느껴진다. 유혹이 오면 요셉이 그리하였던 그자리를 도망쳐 나와야 한다. 젋은 청년 요셉도 성에대하여 호기심이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의 요염한 놀이의 유혹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냥 도망쳐 나왔다. 유혹의 자리에 머물면 안된다. 혹시 포르노에 탐닉해 있는가? 그것에 빠져있다면 지금 당장 도망쳐 나오라. 그것과 지금 놀면 그것에 먹힘 당한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그것으로인해 넘어졌는가?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10.16 15:59

칼빈대학에서의 강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전에 있던 대학에서도 강의하는것이 참으로 재미있었지만, 칼빈대학에서의 강의는 참 신난다. 학부학생만 가르치지만 학생수가 아주 마음에 든다. 내 전공 분야 과목에는 7명의 학생이 있고, 여가철학 강좌에는 14명의 학생이 있다. 학부생이지만 꼭 대학원 수업같이 많은 토론을 한다.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서도 재미 있지만, 그들을 깊숙히 알아가서 더 재미 있다.



"재미" 혹은 "신난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같은 경험은 강의 중에 주로 있고, 강의를 마친뒤는 큰 보람을 느낀다.  전에 있던 대학에서 못 느끼던 것이다. 즐거움 + 만족 + 소명 + 감사 들이 혼합된 그런 감정이다. 언어가 감정을 따르지 못해 안타까우리 만치 칼빈대학에서의 강의는 너무 좋다.

어떨때 내가 강의 하는지, 혹은 설교를 하고 있는지 착각될때도 있다.  칼빈대학은 학문과 신앙의 통합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지식체계를 창출해 내기를 권유한다. 나를 신나게 하는것은 바로 이같은 학교의 기대감 때문이다. 강의 준비는 꼭 성경공부 같이 느껴지고, 강의는 설교 같이 느껴지는 이 기쁨이란... 

어떤이들은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립대학에서 그같은 것들을 나눌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나에게는 너무 신나는 일이다. 지금 생겨나는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 큰 호수가에 던져진 조그만 돌이 만들어내는 물결같이 미약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통합의 강도가 센것과 약한것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이같은 통합을 시도하기 위해 해야하는 충분한 묵상과 기도가 나를 늘 하나님께 주목 시키기 때문이다. 이같은 통합을 위해 자건거를 타고 학교를 오가며, 걸으며, 쉬며, 음악들으며 계속 묵상을 하게 된다. 

죄가 관영하는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인본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지식체계를 성경의 진리로 조명하는 일은 중요하다. 잘못된 지식체계를 성경의 진리로 분별하는 일 뿐 아니라, 잘못된것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탐색해 보는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다행이 나의 분야는 통합이 다소 쉬운편이다. 장애, 치료, 행복, 성장, 인간관계, 상처 등등의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학, 수학, 통계 등 그 통합이 어려운 분야도 있다. 그러나 그 분야를 가르치는 이곳 칼빈대학 동료교수들의 노고와 그 결과들을 보면 놀라웁다.

여가철학 강의는 예배로 시작된다. 왜냐하면 수업이 아침 8시35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자 마자 아침도 거르고 달려온 학생들과 함께 그때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이들은 어쩌면 하루 종일 방황 할 수도 있기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서로 돌아가며 예배를 인도하자고 했다. 인도자는 수업 10분전에 와서 찬송가나 가스펠송을 틀어 놓고 모두를 위해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한다 (한 학생이 사미먼과 가펑클의 노래를 튼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학생 모두가 (거의 4학년생) 예배인도를 아주 잘 한다는 것이다. 그 지체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기쁜지 모른다. 

모든게 신나고 좋지만 힘든 부분도 있다. 내가 준비한 부분만 강의를 하면 쉽지만,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하실일을 남겨두는 작업이다. 내가 조정하면 만사가 쉽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부분을 기대하며 맡기는 부분은 사실 긴장이 된다. 미리 그날의 강의내용을 철저히 알고 강의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떨때 생각치도 않던 것들이 내 생각에서 뛰쳐 나오고, 내 입으로 토해낼때 비로서 알게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분명 그렇게 하나님께 배운 학문과 신앙의 충돌은 너무 귀한 가르침 이라 적어두려고 애쓰고 있다.  

내것으로 꽉 채우고, 그것을 내가 끝까지 주장하게 되면 내가 만족하는 방식으로만 마쳐진다 (그렇게 마쳐졌을때도 사실 제법 많았다). 그러나 알찬 인사트 (통찰)는 얻지 못한다. 이렇게 설명하자니까 좀 신비주의적으로 들려질까봐 사실 나눔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그분께 철저히 맡겼을때 그분께서 하시는 부분은 감추고 싶지 않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일것이다. 우리의 삶을 신앙과의 통합하여 살아가면 어떨까?  삶의 많은 부분과 영역에서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바라며 살아간다면 최소한 그부분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제사가 아닐까? 그러나 그분의 도구로 이세상에서 그의 나라를 힘차게 바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자세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9.09 20:47

쫓김과 쫓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긴장감도 돈다. 긴 여름 방학을 접어두고 학생들이 캠퍼스로 밀려 들자 한편 흥분도 된다. 인디애나대학을 떠나 조그만 칼빈대학에 와서 처음 맞는 학기라 긴장보다 흥분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것같다.

그런데 전에 있던 인디애나대학에서와 다른 느낌이 하나 있다. 할일은 많은데 참으로 평안한 것이다. 학생들 이름도 외워야 되고, 전에 가르치지 않던 새로운 과목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되고, 연구비 신청을위한 프로포잘도 써야 되며, 내가 섬겼던 과거의 박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쓰고 있는 논문도 여러개되고... 분명 신경이 날카로워야 할터인데... 인디애나에서는 적어도 그랬었다. 그러나 지금은 몹시도 평안하다.

걸으며 조금 생각해 보니 "쫓김과 쫓음"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전에는 몹시 쫓겼다. 일에 쫓기였다. 더 정확이 말하면 나의 욕망에 쫓기었다고 말할 수 있다. 쉼없이 쫓기었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쉬지 않고 끄적거리며 글을 썼고, 강의 준비 했고, 설교도 준비하고, 가정일도 정리하고... 그러나 늘 초초했던것 같다. 무엇을 잊어 버지리 않으려고 "To Do List"를 적어가며 생활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은 다르다. 나는 쫓아가고 있는것 같다. 글도 써야 되고, 연구프로포잘도 만들어야 하지만 마음의 동기가 내 욕심으로 차있지 않아서인지 바삐 지내지만 마쳐야할것을 그져 성실히 수행할 뿐이다. 오늘 안되면 내일이 있다는 안도감과, 오늘의 애씀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배짱도 어디서 생겨 났다. 사람을 만나서 교제해도 웃을 수 있고, 도움을 줄 여유도 생겨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여 그것을 간음하듯 쫓으면 쫓기는 인생으로 살아가는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그분과 동행할 경우 세상일에, 그리고 자신의 욕망에 쫓기지 않는것 같다. 내게 삶의 내용은 차이가 별로 없으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겼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갈증은, 세상을 향한 갈증으로 부터 나를 지켜 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절대 세상으로 부터 쫓기지 않은 다는 진리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