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6 15:59

칼빈대학에서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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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있던 대학에서도 강의하는것이 참으로 재미있었지만, 칼빈대학에서의 강의는 참 신난다. 학부학생만 가르치지만 학생수가 아주 마음에 든다. 내 전공 분야 과목에는 7명의 학생이 있고, 여가철학 강좌에는 14명의 학생이 있다. 학부생이지만 꼭 대학원 수업같이 많은 토론을 한다.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서도 재미 있지만, 그들을 깊숙히 알아가서 더 재미 있다.



"재미" 혹은 "신난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같은 경험은 강의 중에 주로 있고, 강의를 마친뒤는 큰 보람을 느낀다.  전에 있던 대학에서 못 느끼던 것이다. 즐거움 + 만족 + 소명 + 감사 들이 혼합된 그런 감정이다. 언어가 감정을 따르지 못해 안타까우리 만치 칼빈대학에서의 강의는 너무 좋다.

어떨때 내가 강의 하는지, 혹은 설교를 하고 있는지 착각될때도 있다.  칼빈대학은 학문과 신앙의 통합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지식체계를 창출해 내기를 권유한다. 나를 신나게 하는것은 바로 이같은 학교의 기대감 때문이다. 강의 준비는 꼭 성경공부 같이 느껴지고, 강의는 설교 같이 느껴지는 이 기쁨이란... 

어떤이들은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립대학에서 그같은 것들을 나눌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나에게는 너무 신나는 일이다. 지금 생겨나는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 큰 호수가에 던져진 조그만 돌이 만들어내는 물결같이 미약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통합의 강도가 센것과 약한것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이같은 통합을 시도하기 위해 해야하는 충분한 묵상과 기도가 나를 늘 하나님께 주목 시키기 때문이다. 이같은 통합을 위해 자건거를 타고 학교를 오가며, 걸으며, 쉬며, 음악들으며 계속 묵상을 하게 된다. 

죄가 관영하는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인본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지식체계를 성경의 진리로 조명하는 일은 중요하다. 잘못된 지식체계를 성경의 진리로 분별하는 일 뿐 아니라, 잘못된것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탐색해 보는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다행이 나의 분야는 통합이 다소 쉬운편이다. 장애, 치료, 행복, 성장, 인간관계, 상처 등등의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학, 수학, 통계 등 그 통합이 어려운 분야도 있다. 그러나 그 분야를 가르치는 이곳 칼빈대학 동료교수들의 노고와 그 결과들을 보면 놀라웁다.

여가철학 강의는 예배로 시작된다. 왜냐하면 수업이 아침 8시35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자 마자 아침도 거르고 달려온 학생들과 함께 그때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이들은 어쩌면 하루 종일 방황 할 수도 있기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서로 돌아가며 예배를 인도하자고 했다. 인도자는 수업 10분전에 와서 찬송가나 가스펠송을 틀어 놓고 모두를 위해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한다 (한 학생이 사미먼과 가펑클의 노래를 튼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학생 모두가 (거의 4학년생) 예배인도를 아주 잘 한다는 것이다. 그 지체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기쁜지 모른다. 

모든게 신나고 좋지만 힘든 부분도 있다. 내가 준비한 부분만 강의를 하면 쉽지만,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하실일을 남겨두는 작업이다. 내가 조정하면 만사가 쉽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부분을 기대하며 맡기는 부분은 사실 긴장이 된다. 미리 그날의 강의내용을 철저히 알고 강의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떨때 생각치도 않던 것들이 내 생각에서 뛰쳐 나오고, 내 입으로 토해낼때 비로서 알게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분명 그렇게 하나님께 배운 학문과 신앙의 충돌은 너무 귀한 가르침 이라 적어두려고 애쓰고 있다.  

내것으로 꽉 채우고, 그것을 내가 끝까지 주장하게 되면 내가 만족하는 방식으로만 마쳐진다 (그렇게 마쳐졌을때도 사실 제법 많았다). 그러나 알찬 인사트 (통찰)는 얻지 못한다. 이렇게 설명하자니까 좀 신비주의적으로 들려질까봐 사실 나눔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그분께 철저히 맡겼을때 그분께서 하시는 부분은 감추고 싶지 않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일것이다. 우리의 삶을 신앙과의 통합하여 살아가면 어떨까?  삶의 많은 부분과 영역에서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바라며 살아간다면 최소한 그부분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제사가 아닐까? 그러나 그분의 도구로 이세상에서 그의 나라를 힘차게 바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자세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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