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8 17:48

주앞에 무릎 꿇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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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에 살때 미국 교회에서 다양한 직분으로 여러해 섬긴적 있다. 교인의 숫자가 1,500명가량 되니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받는 이멜과 전화가 있다. "회의가 있으니 교회로 모이시오". 모여서 회의하고 또 회의 하고... 마라톤 회의. 세시간 네시간, 그리고 식사후 또 연속 회의... 결국 열띤 토론 하다가 약 5-10분의 기도로 대부분의 모임을 마친다. 결론 다 내어 놓고 잠시 머리 숙이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누구를 통해 전해 들은것이 있다. 미국교회의 전통과 달리 한국교회의 전통은 문제 생길때 무릎꿇는것이란다. 한국에서 신앙생활한적 없는터라 그 전통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참으로 자랑 스러운 귀한 전통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비단 그것이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기독교적 전통이었다는것을 떠나 그것이 성경적인 방법인지라 오늘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때 나는 어떻게 하였는가?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또 주변에 신앙이 좋은 선배나 동료와 만나 상의/상담하며 잔머리 굴리지 않았나 하는 자성이 생겨난다. 나는 문제 앞에 즉각적으로 골방에 들어가 무를꿇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과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을때가 너무 많았다. 왜 그랬을까? 오늘 내 마음속을 잠시 들여다 보고 싶었다.

우선 나의 이성의 능력과 삶의 경험이 문제 해결에 더 손 쉬운 방법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붙잡을때가 많았던것 같다. 나이를 더 먹으면서 이런 일을 저렇게 하였더니 요렇게 되었더라는 데이터 (data)가 그래도 어릴때 보다 더 많이 축척되어 있어, 그같은 이성의 방법을 따르는 경향이 컷던것 같다. 혹 그같은 데이터가 내게 많지 않으면 이를 많이 축척하고 있는 선배 혹은 어른 들을 찾아가 묻기도 하였다. 내 생각에 그렇게 하는 것이 실수도 줄이고 또 문제해결에 지극히 지혜로울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였다. 요즘 말하는 evidence-based decision이라는 말도 바로 그같은 과거 경험의 축척이 데이터가 되어 그것을 바탕으로 내리는 결정 방식인데, 이를 과학적인 방법이라고들 한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것은 건전한 연구방법론을 사용한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하는것 이지만... 

이성의 방법을 의지하는것 이외에 참을성이 없는 조급함도 무릎꿇는것을 방해하였던것 같다. 나의 부친께서 이북에서 월남하셔서 이북사람의 급한 성격을 닮았는지, 아니면 조급히 가야만 하는 한국인의 조급증이 내 삶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나는 가능한한 빨리 결정을 내려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강방관념을 늘 지니고 나녔던것 같았다. 물론 어떤 문제는 재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일지라도 조속한 대응이 왠지 내게 더 매력적으로 생각이 되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릎 꿇은 시간도 없었지만 그렇게 무릎을 꿇는것이 너무 이 바쁜 세상에 기다림의 여유가 없는 내게 고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의 조급증은 기도를 방해하는 중요한 방해 요소였던것 같다.

조금함의 문제도 있지만 주어진 과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의 문제일때는 민주적인 방법을 따라야 된다는 생각이 다수의 무릎꿇음을 막는 요소가 되었던것 같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면 어떤 결과가 잘못되어도 다수가 함께 책임을 질 수 있기에 안전성에 대한 유혹이 주요 동기가 되었다. 이 밖에도 여럿이 모이면 더 지혜로운 생각이 오고 갈 것이며, 비슷한 생각이 모여지면 정말 힘있는, 유효한 의사결정을 유도해 낼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도 무릎을 꿇는것 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다. 

그런데 신앙인으로 문제 앞에 무릎꿇고 기도 해야한다는 것은 성경 공부를 통해서도 많이 배웠고, 또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서도 배운 아주 기본적인 진리였다. 그런데도 무릎을 꿇지 못하고 잔 머리를 굴림을 선택하였던 것는 내가 무릎꿇음을 통해 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맑은 샘물의 맛을 안 사람은, 옆에 있는 흙탕물을 선택하여 마시지 않는것 처럼 나는 기도를 통해 흘러 넘치는 맑은 물 맛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제 신앙생활은 잔머리 굴리는 삶이 아니라고 고백하게 된다. 요사이 기도하는 것이 즐겁고 또 기도의 시간이 점점 늘어 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더욱 체험하게 되었다. 내 결정-->결과에 대한 데이터 보다, 기도-->응답의 데이터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문제가 생길때, 또 어떤 결정을 내려야 될때에 주 앞에 무릎을 꿇어야 된다는것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매일 아침 새벽 미명에 하신 그 모범같이 우리들이 따라야할 길임을 마음으로 받기 시작하였다. 내가 주앞에 무를을 꿇을때 내안에 나의 데이터가, 남의 풍부한 데이터가 사라져감도 체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의 조금함도 사라지며 주앞에 잠잠히 기다려도 문제가 없을것이라는 담대함이 생겨났다. 다수가 싫어해도, 왕따를 당하는 결과가 온다할지라도, 또 그 길이 대로가 아니라 좁을길이라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의 마땅히 걸어갈 길이라며 따라갈 배짱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신앙생활은 무릎을 꿇는 삶이다. 우리가 주인이라고 부르는 주님께 종으로 나아가 나의 생각을 꺽고 가난한 심령으로 주의 뜻을 묻는 것이다.  요즘 미국교회의 일반적 경향이 회의 중심적이라 한다면 우리는 마땅이 한국인의 전통이라고 하는 무릎꿇음의 영성으로 나가야 할것이다. 우리가 밟은곳 마다 다 주의 나라가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다. 우리가 밟은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그곳에 눈물을 뿌릴때 주의 나라가 우리가 밟고 선 그 곳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어제 돌아가신 John Stott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이 세상이 무엇이 잘못 되었냐?"라고 묻지 말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빛과 소금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라고 물으십시오. 이제 주앞에 무릎을 꿇을 때이다. 우리가 무릎을 꿇을때 우리가 소금의 맛을 내고 또 우리 삶에 진리의 빛이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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