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5 10:21

아내가 나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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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없다. 나를 떠났다. 내가 미워서, 싸움박질 하여 떠난게 아니다. 캘리포니아에 Prayer Summit이라는 콘퍼런스를 갔다. 우리학교 총장도 가고, 우리교회 리이더들도 일부 갔다. 나는 가지 못했다. 집을 봐야 되고, 또 학교를 지켜야 하기에...^^ 


집에서는 늦둥이 영민이와 함께 있다. 엄마가 없는지 조금 심심해 보이긴 하다.  그래서인지 창밖을 오래동안 내다 보기도 한다. 그래도 아빠를 도와 부엌일 돕고, 또 세탁한 옷들 곱게 접어서 자기 옷장에 넣는다. 남자만 둘이 있으니 아주 편하다. 잔소리 없어서 참 좋다. 조용해서 너무 좋다. 그런데 좀 심심하다. 


아내는 집에 없지만 이상하게도 아내의 손이 느껴지고 숨결이 느껴진다. 아내의 옷을 챙이고, 아내가 주로 지키는 부엌에서 가지런히 놓여진 그릇들을 만지고 있으면 아내가 느껴진다. 12가지 곡식이 들어간 빵을 토스트 해서 혼자 먹으면서도 아내가 느껴진다. 그 빵은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빵이다. 올리브 기름에 찍어, 커피와 더불어 먹는다. 테이블 오른편 아내가 앉는 자리가 조용할뿐, 아내가 느껴진다. 늘 그 자리에서 식사하였으니 무의식 중에도 아내의 접시를 그 자리에 놓았고, 커피 잔도 함께 놓았다. 냅킨도 잊지 않고. 아내가 느껴지지만, 조용해서 참 좋다. 잔소리 없어서 너무 좋다. 아내가 돌아와서도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으면 좋겠다. 


미시건의 날씨는 초봄이라서 저녁에는 쌀쌀하다. 그래서인지 침대가 쌀쌀하다. 추우면 몸도 녹일겸 아내에게 달라 붙어 체온을 높일 수 있을텐데, 지금은 싸늘한 베게 밖에는 없다. 아내의 부드러운 살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아내의 향이 베게로 부터 은은히 느껴진다. 


아침에 큐티나눔으로 시작하는데 영민이와 단 둘이서 하니까 금방 끝났다. 둘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니 오래 가지 않아도 된다. 큐티 마친 뒤, 서로 돌아가며 하는 기도 또한 짦다. 아들과 나는 큐티 마치며 올려드리는 기도에서 하나님께 용건만 간단히 말하기를 좋아한다. 둘이서 밝은 미소로 마쳤다. 효율적이다. 그런데 아내의 기도가 그리워 진다. 어떨땐 훌쩍 거렸다가 어떨때 삐쳐서 남편이 무례해서 마음상했다고 하나님께 고자질도 한다. 무서운 순간인 것이다. 오늘 아침 괜히 그런 기도가 그리웠다.


언젠가 내가 먼저 아내를 떠날지 모른다. 어쩌면 아내가 나보다 먼저 떠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서로를 떠날 때가 반드시 올것이다. 그때는 이런 방법으로 서로를 기억할런지도 모른다. 아내의 여행은 나의 여행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내가 없는 이 시간을 아내와 더 잘 보내는 준비를 하는 거다. 언젠가 서로를 떠날 때 감사가 서로 많아졌으면 좋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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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0 23:08

슬플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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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때

눈물이 마구 흘러내릴 때 

내 안으로 자꾸 들어가면

더 슬프고

더 눈물이 흐르지만


예수께로 다가가면

예수께 더 가까이 가면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고

눈물이 멈추게 되요


슬픔이 기쁨이 되고

탄식이 찬송이 되고

슬픔의 눈물이 환희의 눈물이 되요


지금 예수께 나가고 있습니다.

더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너무 슬프고

너무 눈물이 흘러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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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9 16:39

인정받으려는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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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가 되신 나의 어머니의 기도는 늘 동일하다. 당신의 아들이 남들로 부터, 세상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책을 쓰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그 책이 세상에서 가장 인정 받는 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 하신다. 나의 큰 아들이 이제 치과대학을 졸업한다고 말씀드리면, 세상에서 가장 인정 받는 치과의사가 되게 해 달라고 침을 튀기며 기도 하신다. 그냥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구 조르신다. 어떨때는 너무도 간절히 기도하셔서 하나님의 팔을 비트시는 것 같게도 들린다.^^


누가 말을 하였다. 페북을 움직이는 강력한 기제는 인정욕구라고. 그래서 성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사실 그래서 페북을 내려 놓았다. 전에 고백했던 것처럼 라이크가 몇이나 있고, 또 몇명의 페친이 있느냐를 은근히 생각하는 내가 싫었다. 어느 집회에 초대 받아 말씀을 전하고 오면, 흔히 묻는 질문이 몇명이 모였냐고 묻는다. 모인 숫자에 따라 집회와 강사의 무게가 달라진다. 수천명 앞에서 말씀을 전했다고 하면 탄성과 부러움을 보이고, 열명이 조금 넘었다고 하면 측은히 여기는 듯 하다.  


전에는 남에게 받는 인정이 너무도 중요하였다. 우리 학술분야의 최고 학술지의 편집장도 되고 싶었다. 연구상도 받고 싶었다. 인정이 있으면 기뻤고, 인정이 시원치 않았으면 속이 쓰라렸다. 누가 인정해 주면 내가 잘란 탓이었고, 인정해 주지 못하면  울 어머니의 기도빨이 약하였구나 생각하였다. 부끄럽지만 이자리에서 고백해 본다. 지금도 그생각을 하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


나의 경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뒤에 숨어있는 그 무엇이 하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다. 그러나 은혜로 그 실체를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바로 열등감이었다. 어려서 부터 공부도 잘하지 못하였다. 고등학교입학 시험 (당시에 있었다)에서 가고 싶었던 학교에도 떨어졌다. 중학교에서 중간쯤만 해도 들어가는 고등학교를 떨어졌으니 나는 중간에도 끼지 못하는 저능학생이었다. 대학도 남들이 내놓아라하는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도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대학이 아니었다. 남들로 부터 인정받지 못해 속으로 은밀히 아파하던 것들이 내안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아픔이 자라서 열등감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어렴풋이 깨닫았다. 이 열등감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한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인정도 내게는 만족함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이 열등감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열등감에는 특효약이 없었다. 그래서 이 열등감을 해결해 보려고 남들이 흔히 하듯 나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하였고, 연구활동에도 더 올인하였다. 그래서 내 삶은 늘 피곤하였고, 메말랐고, 또 깊은 만족이 없었다. 그렇게 열등감이라는 넘한테 신나게 당하고 나니까 인생이 아주 파리해 짐을 느꼈다. 겉모습은 좋았다. 좋은 대학의 교수였고, 책도 몇권 쓰고, 상도 받고, 말 그대로 경력이 화려하였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 였다. 내 안에 깊은 만족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인정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열등감을 내 삶에서 완전히 쫓아내어 버릴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한 것에 답이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올바로 깨닫게 된 은혜의 순간 부터이다. 내게 있어서 열등감은 정체감의 혼돈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누구인지를 올바로 깨닫게 되면서 내 안에 있었던 거짓된 열등감은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열등감이 내게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는 사실, 나를 구하기 위해 하늘의 보좌에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과 맞 바꾸었다는 그 사실이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가슴의 지식으로 생겨나니 내 눈이 열리고 내가 나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참모습은 너무 아릅다운 것이다. 너무 고귀한 것이다. 이보다 더 크고 넓고 깊고 무거운 것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내게 전혀 기쁜일이 아니다.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로 인해 인정 받는 것이 훨씬 더 기쁜일이다. 누가 나를 높여주면 불편을 느낀다. 인정의 욕구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것이다. 나는 드러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만이 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욕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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